[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옛날 센터 같지 않다’, ‘사회복지사들의 공간 같다’, ‘복지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IL센터가 일반 사회복지기관이랑은 결이 다르잖아요, 태생부터가. 근데 오래 활동하다보니까 사단법인으로 바뀌고 난 뒤에 점점 일반적인 기관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 활동가들 중에 장애인 수도 점점 적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구요.1)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지성)

우리의 전문성은 장애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기반으로 상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배제된 이들과 함께 권리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자, 인권은 다양한 차별과 억압,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정치적 행위다. 국가가 IL센터와 협력적인 관계에서 대안을 가지고 토론하지 않은 채 몰아붙인 법 개정은 IL센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더욱 더 명백히 드러났다.2)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이 복지시설 개정에 있어 우리 센터의 가장 큰 고민은 “발달장애인을 이용자로 두는 구조를 갖는다”는 것입니다.3)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박현철)

22일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장애인복지법 4장’ 개정안)을 공동대표발의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자협
22일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장애인복지법 4장’ 개정안)을 공동대표발의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자협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미화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은 장애인복지법 제4장(자립생활의 지원)을 강화하는 개정안(아래 자립생활권리보장법) 발의를 발표했다. 이는 2024년 1월 장애인복지법 개정(장애인복지시설의 한 종류로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 신설)을 보완하는 것으로, 현행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가 각각의 설립 목적 및 여건에 따라 제54조에 따른 IL센터 또는 제58조에 따른 장애인복지시설로 기능 전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의 장애인 시민권 운동이 확산되자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은 IL센터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이유로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의 한 종류로 전환하는 법률을 2023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당시만 하더라도 법 개정이 열악한 지위에 있는 IL센터의 운영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일부 존재했으나, 이 같은 바람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보건복지부가 하위 법령 정비를 위해 관련 단체와 협의를 시작하자 “사실상 변하는 것 없이 족쇄만 더 생기는 꼴”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등 자립생활 관련 협의체를 만나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정비에 대한 안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장애인복지시설로 포함됨으로써 자립생활지원사업(IL사업)을 수행하는 인력의 경력이 인정된다는 것 외에 IL센터의 인력 기준(4명)은 변함이 없었으며, 법적 권한이나 지원 수준 역시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해당 사항들은 법률 차원의 문제이거나 예산 문제로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것이 정부 입장의 전부였다.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 운영 기준 개발 연구 보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입장은 단순했다. 현재 IL센터 운영의 근거가 되고 있는 제54조는 사문화할 것이기에 이 조항에 따른 IL센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제58조에 따른 장애인복지시설로 신고한 IL센터만이 자립생활지원시설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 신고하지 않은 IL센터는 미신고시설로 간주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센터의 ‘시설 신고의무’가 국가의 ‘지원의무’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고하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전국 몇 개의 센터에 얼마의 예산을 지원할지는 기획재정부의 사안이며, 대부분의 장애인복지시설이 지방 이양되어 자립생활지원시설 역시 국비가 아닌 지방비로 모두 변경될 수 있으나 최대한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보겠다는 것(하지만 이 역시 보건복지부의 소관은 아니란 것) 정도를 안내했다.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실시한 IL센터 운영 실태조사에 의하면, IL센터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에 집중되어 있으며 농어촌지역의 센터는 8%에 불과했다. 여전히 국비나 지방비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활동하는 IL센터가 존재했으며,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국비 지원 예산은 변함이 없었고, 지방비 지원은 지자체의 의지에 맡겨져 있어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국비나 지방비로 예산을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IL센터는 기본 인건비조차 해당 예산을 통해 충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IL센터들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기본적인 시설편의 및 개조, 차량 운행, 임대료, 운영비, 인건비 모두 과반 이상을 국비나 지방비 지원으로 충당하지 못하고 활동지원서비스 등의 제공에 따른 사업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공무원이나 연구자들은 간편하게 ‘IL센터가 본래의 이념을 잃고 다른 사업들을 많이 한다’, ‘서비스를 많이 해서 장애인 당사자 중심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IL센터가 복지관과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평가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사업을 펼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내몰린 IL센터의 생존 조건이 있었다.

애초 IL센터에는 ‘사업이냐, 운동이냐’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경영 측면에서만 본다면 ‘생존하기 위한 사업’을 펼침으로써 그나마 하고자 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리만 있었다. 이 생리를 조금이라도 낯설게 느끼고자 경계한 IL센터, 이 생리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남고자 노력한 IL센터, 이 생리에 저항하기 위해 모순적이게도 더 깊게 사업에 잠식되어야 했던 IL센터가 있었을 뿐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조직하고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나서는 IL센터들을 순치하기 위해 정부, 여당, 서울시가 IL센터의 고유 사업 외에 추가 사업(대표적으로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사업권을 박탈하고, 고유 사업(대표적으로 권익옹호)의 기능은 강제적으로라도 복지시설의 테두리 안에 두려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법 개정이 순수하게 IL센터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감독하기 위해서였다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복지시설 편입이 아니었다. IL센터에 대한 국비 지원을 확대하고 다른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당사자 친화적 여건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를 위한 예산 수립과 행정조치 계획을 법 개정 이전에 먼저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 모두가 생략된 가운데 ‘시설의 틀 내로 들어와서 하던 거 그대로 하라는 것이다’, ‘시설이 되면 복지사 처우가 더 나아지는데 왜 안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정부와 여당의 논리는 궁색할 뿐만 아니라 IL센터들 내부의 분열을 다분히 의도한다. 정확히 하자. IL센터의 역사적 ‘경력 인정’은 정부와 여당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2022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부는 동료 지원, 자기 옹호, 지원 서클 및 기타 지원 네트워크(장애인 단체, 특히 시설 수용 생존자 단체 포함)와 자립생활센터에 투자해야 한다”(70항)고 각국에 주문했다. 동료 중심의 지원 네트워크 구축을 장려하고, 재정적 지원을 하며, 인권의 옹호와 위기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및 자립생활지원시설 운영기준 연구」에서 현재의 IL센터를 “장애인이 주체적‧자주적으로 일상생활 및 사회참여를 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른 자립생활 전반 조건의 유지 및 개선, 장애인의 기본권 향상 등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동료 간 자조 및 옹호 단체”로 정의하고, ▲장애인의 주체성‧자주성 강화 활동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 및 관련 제도‧서비스 이용자 모니터링 ▲시설 수용 장애인 교육 및 상담 ▲중증장애인 맞춤형 노동 기회 제공 ▲장애인 기본권 향상을 위한 상담 및 교육 ▲기타 장애인 동료 간의 자조 및 옹호 활동 등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최소 7명 이상의 인력을 갖추도록 육성‧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더불어 장애인복지시설인 자립생활지원시설을 “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의 시도 및 영위를 지원하기 위하여 주거서비스 및 각종 적합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최소 13명 이상의 인력을 갖추어 지역사회 내 주거지원 서비스 제공 및 개인별 지원을 중심으로 IL센터의 고유 사업 수행 경험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IL센터가 장애인의 집단적 역량을 통해 자립생활 기반을 창출하고 모니터링하는 주체라면, 자립생활지원시설은 장애인 개인의 안정적인 자립생활 영위를 지원하는 개인별 지원의 거점이다. 현행 수준에서는 당장 위 기준으로 운영할 수 있는 IL센터 및 자립생활지원시설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위 방향으로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이 수반되어야 한다. IL센터의 선택에 따른 육성 및 전환 지원계획을 포함하여, 정부와 지자체는 IL센터와 자립생활지원시설의 권한 있는 직접 참여를 통해 자립생활보장계획을 정기적으로 수립하고 이 거버넌스를 활용하여 이행을 점검해야 한다.

지난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2025년 7월부터 시행된다. 기대와 달리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에 서미화 의원과 김선민 의원이 대표발의하는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이 연내 통과되지 못한다면, 물리적 시간상 IL센터는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한 채 장애인복지시설로 신고하거나 폐업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장애인복지시설로 신고하더라도 인력 및 예산의 실질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며, 지방 이양에 따른 지역 내 IL센터 간의 극심한 경쟁에 마음 졸여야 할 것이다. 장애인복지시설 일반의 업무, 속도, 문화가 이식됨으로써 IL센터 내 중증장애인 소외 현상은 지금보다 두드러질 것이며, 시설 신고요건을 갖추기 힘든 열악한 지역에는 더 이상 IL센터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하나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의 자립생활운동이 기대어 왔던 역사적 장소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7월 1일, 국회 앞 ‘한국판 T4 농성장’에서 열린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총궐기대회에서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 7월 1일, 국회 앞 ‘한국판 T4 농성장’에서 열린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총궐기대회에서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 7월 1일, 전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자립생활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집결했다. 사진 강혜민
지난 7월 1일, 전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자립생활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집결했다. 사진 강혜민

 

1)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람, 그리고 사람』 26호, 2023, 11쪽.

2) 진은선, 「〈이슈〉 장애인복지법 개악으로 IL운동의 역사를 지우지 말라!」, 장애여성공감 7·8월 웹소식지, 2024. 8. 16.

3) 박현철,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실현 인프라 강화!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장애인복지법 제4장 강화 개정) 발의 기자회견〉 발언문, 2024. 8. 22.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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