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수많은 보고서가 장애인과 동행할 수 있는 적절한 구조와 방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기여를 환영하고 참여를 촉진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 자체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장애인을 외면해 온 방식을 모방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누구와 어디에서 살지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 […] 학대 등의 차별은 장애인을 거부하는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런 문화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가치가 낮다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1)
제가 나눠봤어요. 아이큐 30, (앵무새) 장애 1급 정도 됩니다. (아이큐) 50에서 55, 이건 강아지, 의학적인 수치입니다. 3급은 아까 220만원 받는다는 친구, 이 친구가 70에서 80 코끼리 정도…2)
많은 장애인들이 “소속감 없이 참여하지 못한 채 (덩그러니)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완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들을 돌보는 것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교회 공동체에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점차 각 개인을 독특하고 고유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양심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3)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비참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국가가 장애인을 사회적 실험 대상으로 여겨 자기 결정권과 생명을 짓밟는 데 있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이러한 정책은 반인권적 행위이고, ‘전체주의적 탈시설 정책’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4)
종교는 자금이나 인프라에 앞서 마음의 평안과 의식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있어 교회는 세상을 인도해 왔다. 10년 전 교황은 꽃동네를 찾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자선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 확대돼야 한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 교회는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장애인을 낙인찍고 비인간화하는 문화를 앞장서 만들고 있으며, 탈시설이라는 ‘새로운 사태’5)를 ‘비참한 사태’로 인식하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2021년 대안 제시가 불충분하다며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에 대해 우려 성명을 발표한 것을 넘어, 이제는 탈시설화를 국가에 의한 “전체주의적인 정책”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교회에 의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서울시의 시설 퇴소 장애인 전수조사,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사회적 참사가 의도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약 기구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정식 해석과는 달리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시설에서 살 선택권”을 찾는가 하면, “탈시설은 시설 폐쇄가 아니라 시설 개선을 말하는 것”이라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서울시 조사에서 13년(2009~2022년) 동안 사망한 시설 퇴소 장애인의 수가 24명이라는 점을 부각하여 그 원인이 ‘시설을 나왔기 때문’이라는 조사되지 않은 내용을 퍼뜨리고 있기도 하다. 사망자 단순 집계만 따지자면, 주지하듯 천주교재단에서 운영한 대구시립희망원 1곳에서만 6년 7개월(2010~2016년) 동안 30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희망원 시설 정원의 26.9%에 해당하며, 부산 형제복지원의 연평균 사망자보다도 그 수가 많다.
탈시설화로 인해 장애인의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서울시 조사에서 다루는 범위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장애인과 가족의 사회적 참사는 지역사회의 지원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돌봄 부담이 가중되어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지역사회 정책을 확대하는 방법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교회는 시설이 부족해 발생하는 문제처럼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교회가 근거로 삼은 서울시 조사를 따르더라도 시설 퇴소 장애인들은 입소 후 평균 17.1년 동안 수용되어 있었으나, 본인이 입소를 결정한 경우는 16.7%에 불과했다.
정작 교황은 메시지와 회칙을 통해 장애인의 분리 보호가 아닌 통합과 포용을 위해서 교회가 나설 것을 지속적으로 주문해 왔다. 특히 2021년 12월 바티칸시국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아동의 취약성에 대한 총체적인 대응을 요청하며, 고아원과 같은 시설로의 분리 수용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가톨릭 자선 사업의 사례로 ‘우리가 돌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Changing the Way We Care) 캠페인을 소개했다. 이 캠페인은 시설화가 아동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면서, 구호가 필요한 국가에 고아원을 지어 수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의 방향을 전적으로 전환하자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교회 단체에는 기존의 고아원 시설을 지역사회 내의 주간돌봄 기관이나 기타 사회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할 것을 독려했다.6)
장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방식이 변화되는 가운데 그 중요한 주체라 할 수 있는 종교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교회를 포함한 한국 종교의 사회 기여 방식이 대부분 과거의 수용시설 형태에 고착되어 있다는 데 있다. 사회학자 정수남은 1960년대 이후 부랑인의 발생 원인과 담론 형성 과정을 분석하면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치 방식과 연결된 종교 문제를 짚은 바 있다.
‘사회정화’, ‘명랑사회’라는 국가의 통치 전략에서 부랑인에 대한 강제 수용 관행은 공식적으로 권장되었고 이후로도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다. 이들에 대한 관리는 일차적으로는 치안권력이 직접 개입한 물리적인 강제 수용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민간 영역, 특히 종교단체 중심의 복지시설이 이를 떠맡는 방식이었다. 국가와 종교 간의 견고한 ‘복지동맹’의 형성이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장애인, 노숙인, 정신장애인 등 수용시설을 관장하는 개별법이 분화되며 시설의 이름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감금과 보호라는 모호한 경계에 꽂힌 십자가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이번 탈시설 정책만이 아니라 시설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움직임에 종교계는 늘 반발해 왔다. 예를 들어, 도가니 사태로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2011년에는 공익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자는 요구에 대해 종교계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결사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2018년에는 공공재원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종사자와 입소자에 대한 종교행위 강요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되자 “종교의 자유 침해”라며 법안을 좌초시켰다. 탈시설화를 “전체주의적 정책”으로 부르는 신부들의 뒤에는 시설의 역사가 그림자처럼 떠나지 않는다.
이 땅 오천 육백의 신부 중 단 한 명의 신부에게라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교회의 시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한 번만 만나 달라. 아무런 편견 없이 한 번만 그 삶을 들어 달라. 희망원을 나온 이후에도 매주 꼬박꼬박 성당을 찾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 그 곁을 지키며 함께 ‘지난한 고행’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달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있는 장애인과 가족을 두고 떠나지 마시라. 다시 여기로 돌아오시라.
1) 프란치스코 교황, 세계장애인의 날 맞이 메시지, 2022. 12. 3.
2) 이기수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장애인 주거복지정책의 방향성 모색 토론회’ 발표 중, 2023. 10. 26.
3) 프린치스코 교황, 새 회칙 「모든 형제자매들」(Fratelli Tutti), 2020.
4)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보도자료, 「국가의 ‘전체주의적 탈시설 정책’으로 잊힌 ‘익명의 장애인들’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한국카리타스협회 입장문」, 2024. 11. 8.
5) 19세기 노동력 착취와 계급 갈등을 외면한 세속화된 교부들의 독단적인 교리 해석이 마치 하느님의 가르침처럼 통용되어 교회의 가르침과 인간 사회의 보편적 윤리가 동떨어져가는 상황을 인식한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했다. 여기서 교황은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잘못이라 지적하고,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교회가 노동자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후부터 반포되기 시작한 사회 교리는 교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들의 성찰과 판단의 기준, 행동 지침을 담은 사회적 가르침이 되고 있다.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
관련기사
- 천주교계는 ‘탈시설 왜곡’, 서울시는 “탈시설조례 폐지, 행정부 의지” 망언
- 탈시설 반대파, 토론회 열고 대책위 꾸려 ‘로드맵 폐지’ 한목소리
- 이윤복과 정인택의 희망원 / 전근배
- 탈시설 가이드라인 2주년, 국회서 다큐 상영회 열려
- IL센터 강화를 위한 자립생활권리보장법 연내 통과돼야 / 전근배
- 학대와 돌봄 관계에 대하여 / 전근배
- 꿈꾸는 자는 희망하고, 희망하는 자는 꿈꾸라 / 전근배
- 오월을 ‘돌봄의 달’로 / 전근배
- 언어로서의 시설, 말썽으로서의 탈시설 / 전근배
- 권성동, 탈시설운동가 강제퇴거시키며 “현행범 체포해”
- 세 번째 겨울, 세 번째 시민 / 전근배
- 볼모들의 대화, 민주주의 / 전근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