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출근길에 지하철 안 타겠다”
“22대 국회, 1년 내 장애인권리법안 완수하라” 요구

134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전 8시, 전장연이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옆으로 비어 있는 휠체어들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134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다이인 행동은 시위 참가자들이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행동으로 전 세계에서 반전, 인권, 인종차별, 기후위기 등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전장연은 이를 비장애중심사회의 억압과 고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로 차용했다. 이들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노동이 아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권리 생산’을 위한 노동을 요구했다.

“오늘은 노동절입니다. 자본의 압력에 빨려들지 말고, 노동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장애를 입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듭시다. 시민 여러분,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저상버스가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었듯 우리 모두를 위한 이 투쟁에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4년(22대 국회 기간)은 너무 깁니다. 1년만 기다리겠습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차가운 승강장 바닥에 누운 채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마이크를 쥐고 외쳤다. 그와 함께 바닥에 누워 다이인 행동을 벌이는 백여 명의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쳤다. 그 주변을 더 많은 수의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둘러싸고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이날도 전장연을 “특정 장애인단체”라고 호명하며 강제퇴거를 명하는 방송을 지속해서 내보냈다. 노동절이라 평일임에도 광화문역 승강장은 제법 한산했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폐지,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 총 505명 해고.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승강장 바닥에 누워 ‘다이인 행동’을 하고 있다. 그의 머리 위로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방패가 보인다. 사진 강혜민
134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전 8시, 전장연이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사진 강혜민

- “22대 국회, 1년 내 장애인권리법안 완수하라” 요구

전장연은 2021년 12월 3일부터 2024년 4월 8일까지 61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벌였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부터는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 대신 다이인 행동을 하고 있다. 다이인 행동은 이날로 두 번째다.

현재 전장연은 오는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 1년 내로 장애인권리법안들을 입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권리법안은 네 가지로 21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계류되어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복지법을 대체할 기본법안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법안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로 규정하고, 장애를 의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억압과 배제, 차별의 현상으로 정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머지 세 법안(탈시설지원법, 장애인평생교육법,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은 중증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교육받고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의 권리를 법으로 명시하고, 관련 예산을 정부가 보장하도록 했다.

134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전 8시, 전장연이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사진 강혜민

박지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광화문역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1842일 동안 외친 곳이다. 그때는 광화문역 투쟁을 몰라서 야학에서 공부만 했는데, 그때의 내 모습이 부끄럽다”면서 “그러나 지금 저는 동지들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혜화역 출근길 선전전을 함께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400명 해고자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서울시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400명을 전원 해고한 것뿐만 아니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조례, 서울학생인권조례 등을 폐지하고, 탈시설조례 폐지를 시도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박 활동가는 “현재 서울시는 약자를 죽이는 정책을 하고 있다”면서 “매일 아침 혜화역에서 불법 퇴거를 당해도 굴하지 않고 계속 나와 이렇게 목소리를 내겠다”고 외쳤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올해 초 경기도에서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했던 중증장애인 노동자 45명이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수행 기관에서 지난해까지 사업을 수행하던 일부 기관이 탈락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한다’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취지에 맞지 않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기관이 선정되는 등 선정 기준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일도 벌어졌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당시 경기도는 ‘이 좋은 일자리를 많은 장애인들이 골고루 혜택 봐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아직도 장애인 일자리를 시혜와 동정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렇게 쉽게 장애인을 해고하면 가깝게는 경기도, 멀게는 전국에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김지혜 플랫폼씨 활동가는 “최근 뉴진스 소속사인 하이브 민희진과 방시혁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 일로 하이브 주가 총액이 8천억 원 이상 증발했다고 하는데, 하이브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이 3일 만에 무려 700억 원을 날려 먹었다고 한다”면서 “돈 없다더니 주식 투자할 돈은 있었던 건가. 이 손해는 대체 누가 책임지나. 투자한 관료들은 쏙 빠지고, 또 국민들 연금 보험료 올려서 갚아야 하나”라고 규탄했다.

김 활동가는 “국가는 사람 죽이는 무기 만들고 판매하는 데는 수조 원씩 투자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고 한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줄 돈이 없는 것 아닌가”라면서 “이윤이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차별받고 배제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면 이 체제를 바꿀 수 있다”고 외쳤다.

전장연은 134주년 노동절을 맞아 이날 오후 1시에는 시청역(1‧2호선 환승통로)에서 제3회 장애인노동절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3시부터는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세계노동절 대회에 참여한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다이인 행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 발밑으로 서울교통공사의 방패가 보인다. 사진 강혜민

* 바로 잡습니다. 5월 13일 오후 5시경, 아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습니다. 
(기존) 다이인 행동은 기후운동에서 시작한 퍼포먼스로 기후위기로 인해 세계가 멸종하는 상황을 표현한다.
→(수정) 다이인 행동은 시위 참가자들이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행동으로 전 세계에서 반전, 인권, 인종차별, 기후위기 등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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