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철학, 카프카의 경우 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빨간 페터가 낮에는 인간으로 밤에는 동물로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장면은 카프카의 이중생활을, 즉 낮에는 회사에서 인간적 노동에 종사하고 밤에는 글쓰기를 통해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카프카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이런 이중생활을 하게 된 과정을 문학적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그 과정을 “슬그머니 달아나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그것은 저를 우리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었고, 이 특별한 탈출구를, 인간 탈출구를 제게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물론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슬그머니 달아나라’라는 멋진 독일어 표현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달아났습니다.1)
이 구절은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선 카프카는 결혼을 통해 분가하는 방식으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합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약혼과 파혼 끝에 카프카는 결국 결혼을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결혼 역시 아버지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일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가장이 되는 것은 결국 아버지의 가치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가부장 역할을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만큼 잘해 낼 자신이 없으며, 그럼 또다시 아버지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원숭이가 자신의 우리를 빠져나와 다른 우리, 구렁이의 우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 앉은 자리에서 탈주하기
소설에 나온 또 다른 탈출 방법인 뱃전에서 뛰어내려 대양으로 도망가는 것은 어떤 걸까요? 카프카는 프라하를 떠나 시온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무렵 다수 민족 안에서 차별받고 게토(ghetto)에 배제되어 살아온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의 집단 이주를 통해 자유를 성취하려 했습니다. 카프카도 그런 시오니즘에 열광한 친구 막스 브로트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카프카는 결국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주는 시골의 게토에서 대도시 프라하로 이주한 아버지의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에 살아온 다른 민족을 쫓아내고 유대민족의 국가를 세우는 민족주의에 동참하는 일로, 카프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카프카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면 그는 바다에 빠진 원숭이처럼 허우적거리다가 민족주의의 대양에 빠져 숨 막혀 죽었을 겁니다.
물리적으로 도주하는 대신 카프카는 글쓰기, 특히 소설 쓰기를 통해 집 안에 앉아서 탈주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결혼과 이주는 아버지가 잘 알고 아버지의 손이 미치는 세계인 반면, 글쓰기는 아버지가 모르고 아버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세계입니다. 카프카에게 소설은 퇴근 후 밤에 쓴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동물적 감각과 무의식적 사유에 몸을 맡긴다는 점에서도 비인간의 세계, 밤에 속하는 활동입니다. 카프카는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을 아버지의 인간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동물로 느낍니다.
글쓰기 일과 아버지께서는 모르시는 그와 연관된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혐오가 비교적 합당했습니다. 그 일을 할 때 저는 아버지한테서 벗어나 실제로 어느 정도의 독립을 누릴 수 있었지요. 비록 꼬리 부분이 발에 짓밟힌 채 몸을 빼내려고 머리 부분으로 용을 쓰다가 간신히 조금 옆으로 몸을 옮길 수 있게 된 벌레의 모습이 연상되긴 했지만 말입니다.2)
소설 『변신』은 바로 이 지점, 글쓰기를 통해 아버지의 세계에서 탈출할 때 일어나는 변신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카프카는 “아버지한테서 벗어나” “간신히 조금 옆으로 몸을 옮길 수 있게 된 벌레”로 변신합니다. 또한 『변신』은 꼬리 부분이 아버지의 발에 짓밟힌 채 몸을 빼내려고 머리 부분으로 용을 쓰는 벌레의 비참한 최후를 그립니다. 탈출에 실패한 거죠. 왜 실패했을까요? 그건 어머니의 애정에 얽매여 인간적 과거에 미련을 가졌기 때문에, 그로 인해 동물적 세계의 탐색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명학 형이 말한 대로 집을 나와서 자기와 같은 동물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변신은 개체가 속한 ‘세계’의 변화를 통해 이뤄집니다. 『변신』의 그레고르는 인간의 세계에서는 벗어났지만, 함께할 동물의 세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빨간 페터가 탈주에 성공한 것은 동물 우리에서 벗어나 인간 세계로 변신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간 페터는 낮에는 인간 세계의 일원으로, 밤에는 아내 곁에서 “원숭이 식으로 편안함을 취하며” 삽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인간으로, 밤에는 글 쓰는 동물로 이중생활을 한 카프카처럼.
- 여성에게 드리는 이중생활의 보고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카프카 자신의 이중생활에 대한 보고입니다. 그는 이 보고서를 통해 ‘내가 지금 이렇게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그럴듯하게 살고 있지만, 실은 나는 본성이 동물이다. 인간 사회에서 동물은 우리 안에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으로 변신했다. 그렇게 해서 낮에는 인간으로, 밤에는 동물로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라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문학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카프카는 연인 펠리체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주 자신을 비인간 동물로 표현합니다.
한때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없는 것을 급작스러운 파멸을 예고하는 중대한 징조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급작스러운 파멸을 항상 확신했지요. 그런 식으로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은 수많은 징조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점점 인간공동체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3)
상대방이 친척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함께 방에 있을 때 그것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 나는 사람들과의 공동생활을 참을 수 없습니다.4)
숲속의 짐승인 나는 그 당시 거의 숲속에서 거주하지 않고, 어느 더러운 구덩이에 누워 있었습니다. (물론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곳이 더러워졌지요) 그때 바깥 자유로운 세상에 있는 당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근본에 있어서 나는 한낱 짐승에 지나지 않았고 숲속의 존재였을 뿐입니다. 이 광활한 자유의 대지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당신의 자비 덕택이었습니다.5)
펠리체는 카프카가 두 번 약혼했다가 두 번 파혼한 여성이고, 밀레나는 카프카의 글을 체코어로 번역하면서 만난 기혼 여성이었습니다. 카프카는 두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인간 동물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소수적(minor) 본성을 고백하고 이해를 구합니다. 자신은 인간 사회에 들어온 비인간 동물인데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펠리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지 못했고, 밀레나와의 밀회는 카프카로 하여금 아버지가 잘 아는 ‘더러운’ 성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혼 상대든 성욕의 상대든 여성은 아버지의 전공 분야임을 깨달은 카프카는 여성과의 결합을 회피합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빨간 페터가 아내에게서 조련된 동물 특유의 정신착란을 발견하고 낮에는 차마 아내를 볼 수 없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카프카의 이런 여성관을 반영한 겁니다.
- 인간의 자유와 소수자의 출구
빨간 페터는 소설 말미에 “저는 인간의 판단은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으로 변신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인간의 가치 척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수 인간과 다른 카프카 특유의 소수적(minor) 관점을 웅변합니다. 빨간 페터가 지닌 소수적 관점은 ‘자유’와 ‘출구’의 차이에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납니다.
우리에 갇혔을 때 빨간 페터는 출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출구가 없이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탈시설 구호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가 생각나지 않나요? 그런데 ‘자유’ 대신 ‘출구’라고 한 데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방으로 열려진 자유의 저 위대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였을 때 아마도 저는 그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자유를 동경하는 인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자유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외로 말씀드린다면, 인간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자주 자유라는 말로써 기만당하고 있습니다.6)
그는 버라이어티 쇼가 진행될 때 그네 위에서 공중 곡예를 하는 인간을 보며 그게 “자유라는 숭고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하무인격인 동작”에는 “성스러운 자연을 우롱”하는 기만이 내포되어 있다고 비판합니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는 특정한 장소 안에서 일정하게 운동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 제약을 벗어나 다른 장소로 빠져나오는 출구가 많거나 적을 수는 있지만, 아무런 막힘없이 사방으로 열린 곳에 생명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자연상태를 초월하여 아무런 제약 없이 “사방으로 열려진” 자유에 대한 감정을 갖습니다. 그건 인간이 초월자(신)에 대한 관념을 만들고, 그 초월자의 자유를 다시 인간 안에서 찾으면서 형성된 감정입니다.
근대 이성주의 철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신(혹은 자연 또는 본성)으로부터 ‘이성’이라는 영적 능력을 부여받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자연의 인과 사슬을 벗어나 어떤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은 이성이 결핍된 동물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태도로 귀결됩니다. 하겐벡 사냥 원정대가 황금 해안에서 원숭이들을 잡아다 궤짝 같은 우리 안에 가둘 때, 그들은 원숭이에게는 이성이 없기에 자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인간 동물뿐 아니라 비서구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70년대에 칼 하겐벡은 라플란드인, 수단인, 스리랑카인, 에스키모, 아프리카 흑인들을 사냥하듯 잡아 와 울타리 안에 가둬 놓고 유럽인들에게 구경시켰습니다. 그때 하겐벡은 그 비서구 원주민들은 이성이 결핍되어 있으며, 따라서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구 백인에게는 있고 비서구 유색인종에겐 없다는 그 ‘이성’이라는 게 대체 뭘까요? 이성이란 사실 그것의 유무를 판별하는 사람들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정의된 지혜로운 정신일 뿐입니다. 하겐벡 같은 근대 서구인들은 자신들과 의사소통이 되고, 자기가 만든 지식 체계의 기준에 부합한 지능을 갖고, 자기네의 풍습과 도덕의식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성이 있고, 그렇지 못한 동물이나 사람들은 이성이 없다고 함부로 재단했습니다. 자기네의 경험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지혜의 기준을 마치 초월적인 것처럼, 모든 경험적 조건을 초월한 자유의 원천인 양 숭고화한 것에 기만이 숨어 있는 거죠.
- 자유로운 선택의 기만
자유의 기만은 비이성적인 존재를 우리에 가둘 때뿐 아니라 그들을 풀어줄 때도 나타납니다. 만약 하겐벡 증기선의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혹은 자유라는 숭고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가 무작정 우리를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다른 우리 속의 구렁이에게 잡아먹히거나 시퍼런 바닷물에 빠져 죽었을 겁니다. 칼 하겐벡의 사냥 원정대가 잡아 와서 울타리 안에 전시했던 비서구 원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신기해서 구경 온 유럽인들도 차츰 하겐벡의 인종 전시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 안에 전시된 비서구인들이 야생동물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 생각한 거죠. 결국 하겐벡은 인종 전시장을 폐쇄했고, 갇힌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자, 당신들도 인간이니 자유를 준다. 울타리는 철거되고 이제 사방으로 열려 있으니, 어디로 가든 뭘 선택하든 자유다.’ 어때요? 가슴이 웅장해지나요? 과연 그들은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됐을까요?
왜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맞아요. 그들은 이미 원래 살던 삶의 조건을 뺏긴 채 낯설고 무서운 유럽 사회에 무작정 내던져졌기 때문입니다. 소년 시절 선감학원에 잡혀갔다가 목숨을 걸고 바다를 헤엄쳐 탈출한 사람들, 혹은 선감학원이 폐쇄되어서 풀려난 사람 중에는 길거리를 떠돌다가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시설에 다시 잡혀간 사람도 있습니다. 1987년에 수용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세상에 알려져 형제복지원이 폐쇄되고 난 후, 거기서 풀려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무조건 잡혀 온 사람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무조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길거리를 떠돌 자유, 굶어 죽을 자유,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장애인 시설이나 정신요양원에 들어갈 자유였습니다.
그때는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자립할 여건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노들야학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앞장서 투쟁한 결과 탈시설의 기본 조건이 얼추 마련됐습니다.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 등 교통편의가 갖춰지고,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자립지원금과 자립생활주택도 생겼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서명함으로써 모든 장애인이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삶을 영위하도록 지원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시설수용 정책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회피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놀랍게도 ‘자유’입니다. 정부는 학대와 비리 사건으로 폐쇄 명령을 받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 조사’를 했습니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가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아니면 시설에서 살고 싶은지 자유의사를 확인하여 그에 따라 처분하겠다는 겁니다. 또한 정부는 탈시설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은 그들의 자유에 반하는 인권침해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한데 왠지 기분 나쁜 이유는 뭘까요? 시설에 입소시킬 때는 결코 묻지 않았던 자유의사를 출소 상황에서만 꼬치꼬치 캐묻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요? 네, 정부가 내세운 ‘자유로운 선택’에는 심오한 기만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이 있기에 자유롭다는 철학적 명제는 오직 이성을 가진 인간만 자유롭다는 정치적 편견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의사 표현을 통해서만 자유를 판별할 수 있다는 사법적 편견을 낳습니다. 10년 넘게 시설에 거주해 온 장애인에게 ‘시설에서 살지 나가서 살지’ 선택하라고 할 때, 그 선택은 과연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운 걸까요? 장기간의 시설 생활에서 형성된 관성, 그로 인한 무기력과 의존성, 시설 밖 자립생활에 대한 경험과 정보의 부족이라는 엄연한 경험적 조건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자유의사를 표하라는 게 과연 합당할까요? 이런 경험의 비대칭을 조정하려면 적어도 수 개월간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체험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성적 형태의 의사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발달장애인의 욕구 조사는 충분한 시간과 친밀한 관계 형성 속에서 개별적 특성에 맞는 경험적 소통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다짜고짜 설문지를 들이대거나 ‘손들어 보라’는 식으로 자유의사를 묻는 건 기만을 넘어 사기에 가깝습니다.
- 시설 사회의 출구를 찾아
빨간 페터가 자신은 자유가 아니라 출구를 원한다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럼, 출구는 뭘까요? 자유와 출구는 어떻게 다를까요? 출구는 단지 벽 사이의 물리적 틈 같은 게 아닙니다. 빨간 페터는 우리의 틈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언어에서 출구를 찾거든요. 자유가 경험의 조건과 중력을 초월한 무제한성으로 정의되는 데 반해, 출구는 경험의 장에 내재하는 운동의 변수들, 다른 경험의 가능성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그것을 자유도(degree of freedom)라고 부릅니다. 관념론이 자유를 이성에 의한 경험 세계의 질적 초월로 정의하는 데 반해, 경험론은 자유를 경험 장의 배치에 따라 양적으로 변화하는 운동 변수와 변이 가능성, 자유도로 정의합니다. 빨간 페터는 인간을 흉내 내며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살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자유, 인간의 관념론, 인간의 가치 척도와 거리를 둔 소수자의 경험론을 지니고 삽니다.
장애인의 탈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탈시설을 자유의 획득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많은 장애인이 시설을 나가면 뭐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감금 상태가 만들어낸 환영입니다. 시설을 나왔다고 자유를 누릴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시설을 나올 때 변하는 것은 장애인을 억누르는 차별과 배제의 중력입니다. 시설 안에서보다 지역사회에서 가해지는 차별의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더 많은 운동의 변수, 더 많은 행위 가능성, 더 많은 출구가 생기는 것뿐입니다. 시설 밖 지역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차별하는 중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 차별과 배제의 중력이 커지면 시설도 커집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설을 요구하는 지역사회의 중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은 시설을 요구하는 사회, 즉 ‘시설 사회’에 출구를 내는 운동,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중력을 약화시키는 운동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중력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빨간 페터가 자유를 추구했다면 그를 잡아 가둔 인간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를 탈출하거나 배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반대로 그는 바다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출구를 찾았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비상하는 게 아니라 중력을 만든 인간 세계 안으로 파고 들어간 것입니다.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하늘을 나는 새 종류는 찾아볼 수 없고, 지하로 굴을 파는 두더지(「굴」), 지하실에 사는 쥐(「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바퀴벌레(『변신』)가 등장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카프카에게 동물은 인간 세계 안에서 지하로 구멍을 내고 들어가 지상과는 다른 통로와 서식지를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 세계의 지층에 균열이 생기고 지각 변동이 발생합니다.
탈시설은 시설사회의 지각 변동을 통해 중력을 바꾸는 운동입니다. 때로는 중력을 거슬러 자유를 향해 비상하는 새의 날갯짓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필요도 있지만, 그걸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시설사회의 중력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설사회 안으로, 지하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설을 필요로 하는 시설사회의 지층에 구멍을 내고 지하에 소수적(minor) 경험의 통로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시설사회의 지층을 무너뜨림으로써 시설화(institutionalization)의 중력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 탈시설 장애인의 변신과 시민의 변신
빨간 페터가 인간을 흉내 내면서도 인간의 가치 체계와 거리를 둔 태도는 탈시설 장애인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시설을 벗어나기 위해 장애인은 시설 바깥을 활보하는 인간들을 흉내 내야 합니다.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독주를 마시고, 인사를 하고, 외식을 하고, 모임을 갖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직장을 다니고,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해서 자식도 낳는 소위 ‘정상적’인 삶을 흉내 내야 합니다. 그러나 빨간 페터가 말하듯, 그것은 정상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설사회의 출구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빨간 페터의 이중생활처럼 탈시설 장애인은 한편으로 정상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활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인간의 판단은 원치” 않는 소수자의 감각으로 사회의 지층에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소수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흉내 내는 것과 정상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중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카프카는 이 동시성을 빨간 페터가 미친 듯이 인간을 흉내 낼 때 그를 가르친 선생이 원숭이처럼 변하는 현상으로 표현합니다.
원숭이의 본성은 저로부터 미친 듯이, 전도되면서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제 첫 번째 선생 자신이 거의 원숭이처럼 되었고, 곧 수업을 포기하고 요양소에 보내져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곧 거기서 나왔습니다.7)
동물의 인간 되기와 인간의 동물 되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이 흥미로운 현상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근대 휴머니즘 속에서 인간은 동물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편견 속에서 동물을 무자비하게 학대했습니다. 동물을 우리에 가둬 집단 수용하고, 공장에 밀어 넣어 생명을 착취하고, 대량 학살도 거리낌 없이 자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인간들이 동물처럼 집단 수용되고, 공장에서 생명력을 착취당하고, 대량 학살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애인이 대표적으로 동물처럼 변한 인간입니다.
탈시설은 그런 근대 사회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운동입니다. 탈시설은 단순히 장애인을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정상화’하는 게 아닙니다. 장애인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변신도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동안 장애인을 배제하면서 정의된 ‘시민’의 형상이 장애를 포함하는 형상으로 변신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지하철 역사가 변신하고, 버스의 모양이 저상형으로 변신하고, 지면의 모든 문턱들이 경사면으로 변신하고, 대중 매체가 베리어 프리(barrier free)하게 변신하고, 장애인을 배제해 온 시민사회의 제도와 법이 변신합니다.
1) 프란츠 카프카, 『변신(단편전집)』, 이주동 옮김, 솔, 1997, 268쪽.
2) 프란츠 카프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이재황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9, 111쪽.
3)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편지: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변난수·권세훈 옮김, 솔, 2002, 349쪽.
4)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편지: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변난수·권세훈 옮김, 솔, 2002. 563쪽.
5) 프란츠 카프카,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박환덕 옮김, 범우사, 2003, 310쪽.
6) 프란츠 카프카, 『변신(단편전집)』, 이주동 옮김, 솔, 1997, 261쪽.
7) 프란츠 카프카, 『변신(단편전집)』, 이주동 옮김, 솔, 1997, 267쪽.
필자 소개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자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2020년에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썼고, 2024년 1월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장애학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비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노들야학 영화반에서 학생들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다가 1년 만에 철학 수업으로 돌아왔다. lizo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