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철학, 카프카의 경우 ⑦]
카프카의 소설 「어느 단식 광대」의 원제는 ‘Ein Hungerkünstler’로 ‘단식 예술가’라고 번역하는 게 원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단식 광대’라고 번역해온 건 그의 단식 공연이 서커스와 프릭쇼의 맥락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죠. 이번 시간에 집중해서 살펴볼 지점은 그의 공연이 지닌 예술적 측면입니다. 단식은 어떻게 예술이 된 걸까요?
- 채식주의자의 단식 예술
19세기 프릭쇼의 맥락에서 그의 단식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경탄을 받았습니다. 수십 년 흥행이 한순간 거품처럼 꺼져버리고, 그는 서커스단 마구간 옆 동물 우리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무기한 단식에 들어갑니다. 40일의 기한을 훌쩍 넘어 다시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감독관이 우리 속 말라비틀어진 그를 발견했습니다. 감독관이 아직까지 단식을 하고 있느냐,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자, 단식 예술가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모두들 나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뜬금없이 뭘 용서해 달라는 걸까요?
“언제나 저는 여러분이 제 단식을 경탄하기를 바랐습니다”라고 단식 광대는 말했다. “우리는 벌써 경탄하고 있네”라고 그 감독관은 말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경탄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단식 광대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경탄하지 않겠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건가?”라고 감독관이 말했다. “왜냐하면 저는 단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렇게밖에는 달리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단식 광대가 말했다. “누가 한 사람 와서 봐”하고 감독관이 말했다. “왜 달리는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왜냐하면, 저는” 하고 단식 광대는 작은 머리를 약간 쳐들고는, 마치 입맞춤을 하려고 내민 듯이 입술을 감독관의 귀에 바싹 내밀어 아무 말도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말했다. “왜냐하면 저는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찾아냈다면, 저는 결코 세인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을 테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배가 부르게 먹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1)
지금까지 단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탄을 자아낸 것은 어떤 의미에서 관객을 기만한 것이기에 용서해 달라는 겁니다. 자기가 다른 누구보다 단식을 잘한 것은, 아니 쉽게 한 것은, 아니 무한정 계속하고 싶었던 것은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단식은 관객들이 예상하듯이 타인의 경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식욕을 억제하며 한 게 아닙니다. 그의 단식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입맛, 다수 사람들의 식성과 달라 입에 맞는 음식이 없는 소수적인(minor) 본성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카프카 자신이 그랬습니다. 그는 채식주의자였으며, 어머니가 항상 걱정할 정도로 음식을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았습니다. 1914년 결핵이 발병한 후 이 소설을 쓴 1922년 2월 무렵, 카프카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요양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카프카의 몸은 나날이 메말라 갔으며, 1924년 6월 어떠한 음식도 넘기지 못한 채 죽어갔습니다.
단식은 본성에 따른 것이라는 단식 예술가의 마지막 말은 삶과 예술의 관계를 성찰케 합니다. 그에게 단식은 자신의 소수적 본성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다수자의 눈에 그의 단식은 인간의 본성(식욕)을 초극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신기하고 경탄스러운 것이 됩니다. 소수자의 본성이 다수자에게 놀라운 볼거리가 된다는 점은 프릭쇼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프릭쇼에 출연한 당사자에게는 본성적인 특징이 다수자에게는 충격과 경탄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같죠. 그러면서도 단식 예술가의 단식 공연이 프릭쇼와 다른 점은 단식이 지닌 평범성 때문입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은 기간이 짧든 길든, 이유가 무엇이든, 다수 사람들이 잘 알고 경험해본 것입니다. 단식 예술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한 국면이 경탄을 자아내는 예술 행위가 되는 특이한 국면을 보여줍니다. 삶과 예술의 관계와 관련된 이 특이한 국면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24년 죽기 전 카프카가 쓴 마지막 소설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이 그것입니다.
- 평범한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가수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은 요제피네라는 이름을 가진, 쥐 종족의 여가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카프카는 개 종족에 관한 「어느 개의 연구」, 두더지 종족에 관한 「굴」 등 비인간 동물 종족을 등장시킨 소설을 여러 편 썼는데, 이 소설도 그중 하나입니다. 쥐 종족의 무리적 특징은 생존을 위한 노동에 찌들어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존 투쟁에 도움이 되는 “어떤 확실하고 실제적인 영리함”을 최대 장점으로 여기는 반면, “평상시 생활과 너무 거리가 먼 것들”, 가령 “음악을 사랑하고, 또 그것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요제피네는 예외적으로 “음악에서 생겨날 수도 있는 행복감에 대한 욕구”를 갖고 쥐 종족 특유의 휘파람 소리로 음악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쥐들에게 전달합니다.
음악을 들을 능력이 없는 쥐 종족에게 노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요제피네, 참 대단하죠?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기에 그럴까요? 놀랍게도 요제피네의 노래는 특별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특별한 기교는 물론 성악적 형식도 갖추지 못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휘파람 소리입니다.
찍찍거리는 휘파람이야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종족의 원래의 기교, 또는 기교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징적인 삶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휘파람을 불지만, 물론 아무도 그것을 예술로서 창조해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휘파람을 불면서도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휘파람을 분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다.2)
쥐 종족의 이런 무리적 특성과 대비되는, 요제피네의 휘파람에 대한 특이한 주의와 관심에서 음악과 예술이 발생합니다. 특이하게도 오직 요제피네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삶의 표현인 휘파람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노래로 만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그렇게 각별한 주의와 정성을 다한 요제피네의 휘파람은 결과적으로 성악적 완성도나 특별한 기교가 전혀 없는 “기껏해야 부드러움과 연약함으로 약간 두드러진, 평범한 휘파람”입니다. 다른 점은 완성도가 아니라 태도에 있습니다. 휘파람을 노래, 음악,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은 순전히 휘파람에 대한 요제피네의 특별한 (음악적, 예술적) 태도입니다. 단지 듣기만 해서는 그 음악적 태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 작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은 높은 곳을 향하고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려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자세”를 봄으로써, 휘파람에 대한 요제피네의 특별한 태도, 그 음악적 태도를 봄으로써 음악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요제피네의 음악적 태도는 다른 쥐 무리에 전해져서 공명해야 합니다. “요제피네가 노래를 부르려 한다는 소식은 금세 널리 퍼지고, 머지않아 긴 행렬이 이어지고” 그렇게 해서 노래 공연을 위한 시간과 장소, 가수와 관객이 형성됨으로써, 그리고 요제피네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 엄격히 요구되는 침묵과 고요, 무대 위에서 요제피네가 취하는 엄격한 격식, 그런 태도와 격식 속에서 비로소 요제피네의 노래가 만들어지고 쥐 종족에게 전해집니다.
- 평범한 것을 예술로 만드는 현대예술
그게 뭐냐고요? 이해가 안 된다고요? 음, 가령 이런 겁니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라는 프랑스의 예술가가 미술 전시회에 철물점에서 산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품했습니다. 철물점에서 파는 평범한 소변기가 무슨 예술 작품이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 작품은 현대 미술의 예술 정신을 대변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완성된 작품의 형식미에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관점과 익숙한 감각을 벗어나 인간의 삶을 낯설게,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태도’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현대 예술의 정신입니다. 화장실에 있는 소변기와 전시회에 있는 소변기의 형태는 같지만,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다릅니다. 화장실의 소변기는 생존에 필요한 ‘쓸모’(유용성)의 태도로 대면하지만, 예술가가 주의를 기울여 선택해서 전시회의 시공간 속에 전시할 때 관객들은 새로운 관점으로 소변기를 마주합니다. 유용성에서 벗어나 낯선 감각과 관점에서 삶을 관조하는 경험 자체에 예술의 본질과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제피네의 음악과 좀 더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까요? 1952년 미국의 예술가 존 케이지는 「4분 33초」라는 제목의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의 악보에는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연주하지 말고 쉬어라)라는 악상만 쓰여 있습니다. 이 곡은 1952년 8월 29일, 뉴욕주 우드스탁에서 데이비드 투도르에 의해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가 몇 분 뒤 뚜껑을 닫고, 다시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사기라고요? 음, 존 케이지의 생각은 음악을 기대하고 연주회에 온 관객들의 귀에 들린 4분 33초 동안의 새소리, 바람 소리, 혹은 자신의 숨소리나 마음속에 떠올린 소리가 바로 음악이라는 겁니다. 이 사례도 음악이란 완성된 음의 형식미에 있는 게 아니며, 평범한 소리라도 실용의 관점에서 벗어나 낯선 관점에서 주의를 기울일 때 음악이 될 수 있다는 현대 예술의 정신을 웅변합니다.
- 노동의 가치와 예술의 가치
아름다운 선율도 없고 멋진 기교도 없는 이 황당한 연주를 왜 듣고 있냐, 이 연주회를 통해 얻는 심미적 쾌감이나 정서적 가치가 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요제피네의 경우 어린 청소년들은 가수로서의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가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과 귀여운 앞니들 사이로 숨을 내쉬는 모습,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감탄하며 숨을 끊는 모습”을 놀라워하며 바라보지만, 대다수 군중들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삶의 투쟁 중에 꼭 필요한 여기 이 휴식 시간에 군중들은 꿈을 꾸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각자의 사지를 편하게 풀어주는 일, 그 각각의 불안한 자가 종족의 크고 따스한 침대에서 자기 마음대로 몸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켜도 되는 일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 꿈속에서는 때때로 요제피네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3)
예술의 가치는 관객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잠시 꿈과 같은 ‘무용함’의 시간을 향유하는 거죠. 그 시간은 얼핏 쓸모없어 보이지만, 생존 투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줄 수 있고, 그 여유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휘파람에 대해, 한데 모인 종족의 무리성에 대해, 단합과 평화에 대해 새로운 감각과 성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옷과 밥과 집을 구하기 위한 노동만이 아니라 그것을 벗어난 예술적 경험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요?
그들은 유명한 예술가니까 그런 황당한 짓을 해도 예술로 믿어 주는 거라고요? 글쎄요. 처음부터 유명한 예술가는 없고, 예술가 스스로의 믿음이 없다면 결코 관객의 믿음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요제피네의 음악에 대한 관객의 믿음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요제피네의 진실하고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확신을 제외하면 요제피네는 사실 존경할 만한 게 없습니다. 요제피네의 연약한 몸과 히스테릭한 성격은 쥐 종족이 중시하는 노동력에 비춰서는 무능한, 즉 장애화된(disabled) 소질입니다.
- 장애화된 소질의 예술가들
요제피네만이 아니라 현대 예술가 중에는 요제피네처럼 장애화된 소질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알죠?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고흐도 노동에 적합한 정신력과는 거리가 먼 광기의 소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숙집 딸에게 품은 애정을 거부당하자 램프 불에 손을 갖다 대며 이 동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물감을 빨아 먹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고, 밤마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모자에 초를 매단 채 돌아다니는 등 정신의학자에게 ‘정신이상’ 소견을 듣는 행동을 했습니다. 급기야 1889년에는 격분한 상태에서 자신의 귀를 잘라 일 년간 생 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었습니다.
이런 정신장애가 고흐의 예술과 무관한 걸까요? 고흐는 이런 정신장애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그림을 그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고흐는 정신장애 상태의 특이한 감각과 관점으로 평범함 속에 갇힌 자연을 해방시켜, 그렇게 해방된 자연의 색채와 형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태양 속에 불타는 듯한 색채, i자와 쉼표 모양의 붓 자국을 통해 평범하게 굳은 표상의 덩어리 이면에서 알갱이 하나하나 분자들의 유성이 폭발하는 모습으로 자연을 묘사할 때 고흐는 자연의 리듬을 표현하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성과 문명의 관점에서 해방된 화풍을 일컫는 말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화가로 사랑받는 장 드뷔페는 정신질환자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원시 인류가 동굴벽화에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자유롭게 낙서한 것 같기도 하고, 정신분열증자가 환각 상태에서 보고 느낀 듯한 세계를 그리며, 그것을 ‘아르 브뤼’(Art Brut)―‘야생의 예술’이라는 뜻―라고 불렀습니다. 장 드뷔페를 계기로 오늘날 많은 정신장애인들과 발달장애인들이 자기가 보고 느낀 그대로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아르 브뤼’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예술의 가치와 시민 공동체
요제피네의 노래가 지닌 예술성은 미적 형식이나 기교에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요제피네의 휘파람 소리는 지극히 평범하며 다른 쥐들이 내는 휘파람 소리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요제피네의 예술성은 요제피네가 지닌 음악에 대한 진실한 욕망과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되며, 쥐 종족의 다수가 그 욕망과 믿음을 인정하고, 그녀의 휘파람을 들으며 자기 안에서 음악에 대한 느낌과 욕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실현된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휘파람을 위대한 음악으로 만든 것은 순전히 요제피네와 쥐 종족 사이에 형성된 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요제피네가 노래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노동을 면제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 믿음의 공동체는 깨질 위기에 처합니다. 노동을 신성시하는 쥐 종족은 요제피네의 요구를 조용히 거절합니다. 말 같지도 않다는 듯이, 그 요구를 듣지 못했다는 듯이 묵살한 겁니다. 이 거부는 너무 완강해서 요제피네까지도 깜짝 놀라 멈칫하게 합니다. 요제피네는 양보를 한듯 열심히 노동도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래도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새로운 힘으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요제피네가 노동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의 요구가 허락된 후에도 예전과 다르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녀가 원한 것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공공연하고 확실한 인정, 시대를 넘어 지속되는 인정,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것을 훨씬 능가하는 인정일 뿐”입니다.
요제피네의 요구 사항은 사실 카프카의 것입니다. 결핵으로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카프카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한밤중에만 글을 썼습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직장인 노동자상해보험공사의 일을 싫어하지 않았고 잘하기도 했지만, 항상 노동의 피로에 시달리고 제한된 시간에만 글을 쓰는 게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어느 단식 광대」의 단식 예술가가 40일이라는 제한을 넘어 더 많은 시간 단식 예술을 하고 싶다는 부분, 「첫 번째 시련」의 곡예사가 하나의 그네에 만족하지 않고 둘 혹은 그 이상의 그네를 요구하며 더 많은 시간 공중 곡예를 하고 싶다는 부분,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의 가수가 다른 노동을 면제받고 더 많은 시간 노래에 전념하고 싶다는 부분은 카프카의 더 많은 시간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을 투영한 것입니다.
밤새 글쓰기를 하고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지면서 카프카의 몸은 날로 쇠약해졌습니다. 물론 당시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 활동을 전업으로 하며 다른 생계 노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카프카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가 받는 원고료와 출판 수입이 그리 많지 않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글쓰기로 돈을 벌기 위해서 쓰고 싶지 않은 글까지 써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다른 노동을 면제해 달라는 요제피네의 요구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늘날 우리 사회라면 어땠을까요? 뭔가 대단한 특권을 요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요구한 건 사실 자신의 음악이 지닌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받은 사람을 전업 가수라고 부르죠. 노래 외에 다른 노동을 면제받은 가수는 노래를 노동으로 인정받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란 사회적으로 다른 노동과 교환 가능하다고 인정받은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쥐 종족은 요제피네의 음악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노동을 면제해줄 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요제피네의 하찮은 노래를 들어준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순진하고 어여삐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열의를 칭찬하는 어른의 태도로 요제피네의 노래를 들어준 겁니다. 그래서 요제피네의 요구를 거절하는 방식도 어른이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을 묵살하듯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간단하게 확고한 거절” 의사를 “고상한 방법”으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제피네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분간 “콜로라투라(아리아의 한 장식음)을 단축시키려 한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쥐 종족은 대부분 콜로라투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요제피네의 노래에 콜로라투라가 나왔다는 것조차 알아챈 적이 없습니다. 요제피네는 콜로라투라를 단축시켜 노래를 했지만, 대중들은 콜로라투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언제나처럼 노래를 들었고, 요제피네의 요구에 대한 처우 또한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요제피네는 콜로라투라에 대한 자신의 결정이 대중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음에는 콜로라투라를 다시 완벽하게 노래하겠노라고 자비롭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음악회가 끝난 후 그녀는 또다시 화가 난 듯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콜로라투라를 결코 부르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래도 대중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쥐 종족은 요제피네의 노래를 들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음악에 매혹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카프카의 유고집에 실린 「사이렌의 침묵」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여가수들로, 사이렌이 바닷가 바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에 매혹된 선원들이 그쪽으로 배를 몰다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바닷가를 지날 때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아 노래를 못 듣게 함으로써 사이렌의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듣고 싶어서 밀랍 대신 밧줄을 사용했습니다. 사이렌의 노래를 듣지만 이에 홀려서 노를 저어 다가가지 못하게 자기 몸을 돛대에 밧줄로 묶은 겁니다. 카프카는 이 전설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입니다.
사이렌의 노래는 무엇이든 다 뚫고 들어가니 유혹당한 자들의 격정은 사슬이나 돛대보다 더한 것이라도 깨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도 그 점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 줌의 밀랍과 한 다발의 사슬을 완벽하게 믿었고, 작은 도구에 대한 순진한 기쁨에 차서 사이렌을 마주 향하여 나아갔던 것이다.4)
카프카가 전설에 덧붙여 강조한 지점은 사이렌의 음악이 지닌 힘과 그것에 맞서는 오디세우스의 도구에 대한 믿음입니다. 카프카는 이 전설에서 예술과 노동, 예술적 충동과 도구적 이성, 음악의 매혹하는 힘과 도구에 대한 믿음 사이의 대결을 봅니다. 전설은 도구적 이성을 확신하는 오디세우스가 사슬과 밀랍을 사용해서 노래의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고 전하지만, 카프카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이렌의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예술적 충동을 고작 밀랍 한 줌과 한 다발의 사슬로 극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무사할 수 있었던 건 그들 앞에서 사이렌이 노래를 멈추고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사이렌은 밀랍과 사슬에 대한 오디세우스의 믿음, 그런 지혜를 냈다는 것에 대한 순진한 기쁨, “자신의 힘으로 그녀들을 이겼다는 느낌, 거기에서 오는, 모든 것을 쓸어낼 수 있다는 자만심”을 보고, 그 “자만심에는 이 지상의 그 무엇도 맞설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래를 멈추고 침묵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왔을 때 사이렌들은 침묵했지만, 오디세우스는 “그들의 침묵을 듣지 않고,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는 있지만 그가 단지 그것을 듣는 것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들의 고개 돌림, 깊은 호흡, 눈물이 가득 찬 눈, 반쯤 열린 입을 보았는데” 그것이 자기 주위를 감돌며 사라지는 노래의 일부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이렌들은 오디세우스의 단호함 앞에서 사라져버렸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도구적 이성의 항해를 이어갔습니다.
요제피네의 유혹에 마주해 쥐 종족은 오디세우스와 같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들은 노동과 도구적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속에서 음악의 유혹에 귀를 닫았습니다. 그런 단호함 앞에서 요제피네는 결국 노래를 멈췄습니다. 일을 하다 다친 다리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 뒤 요제피네는 사라졌습니다. 쥐 종족을 떠나 영원한 침묵 속에 숨어 버린 겁니다. 매혹적인 여가수를 잃게 된 쥐 종족은 실망의 빛을 보이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노동과 도구적 삶을 이어갔습니다.
- 장판의 요제피네, 탈시설 장애인 예술가
노들야학에도 요제피네 같은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시설에서 나온 최중증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예술팀 ‘탈탈탈’은 요제피네처럼 노래를 부릅니다. 그 팀이 부르는 노래는 ‘만수’의 지원하에 그들이 직접 작사하고 작곡한 것입니다. 뮤지션이자 작곡가인 만수가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매주 한 곡씩 노래를 만드는 모습은 정말 놀랍습니다. 먼저 어떤 주제의 노래를 만들지 의논해서 정합니다. 그런 후 제목에 대해 생각나는 걸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마음에 드는 문구가 정해지면 칠판에 적습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당최 집중을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는 한 발달장애인이 “재미없어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다른 장애인이 “저는 재밌는데요?” 하고, 만수가 “뭐가 재밌어요?” 묻자 “사는 게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는 게 재밌다’는 제목의 노랫말이 만들어집니다.
학교 교육은 고사하고 또박또박 분절된 언어 구사도 잘 안 되는 발달장애인들이 만들어 낸 노랫말은 뜻밖에 놀라운 시적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선생님한테 진달래꽃 줄 거예요. 어머나 어머나 깜짝 놀랐네. […] 미안해 미안해 사과 줄게요”(「봄, 여름」). “사랑은 7월에도 아름답지, 사랑은 언제라도 아름답지. […]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줄게요. 마음을 다 주면 그 사람도 알겠죠”(「사랑의 마음」). “미안해 친구야, 용서해줘 친구야,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사랑한다 친구야, 잘 살아라 친구야, 건강해 친구야, 시간이 빨리 가, 시간이 빨리 가”(「미안해 친구야」). 물론 발달장애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이 한 말 중에서 좋은 말을 고르고 다듬어 칠판에 적는 만수가 없었다면 이런 멋진 가사로 완성되지는 못했겠지만, 발달장애인 없이 만수 혼자였다면, 발달장애인의 삶과 영혼이 없었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노랫말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가사는 그렇다 치고, 작곡은 어떻게 할까요? 놀랍게도 작곡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만수가 “이 구절은 어떻게 노래로 부를까요?”라고 문의하면 발달장애인들이 제각각 기분과 느낌에 따라 곡조를 넣어 부르고, 만수가 그 중 적당한 곡조를 골라 칠판에 악보로 옮기고 다 같이 불러 봅니다. 화성법도 모르고 가창력도 없는 발달장애인의 흥얼거림에서 곡조를 뽑아 음표로 옮겨놓는 만수의 실력도 놀랍지만, 스스로 못한다는 선입견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곡조를 떠올려 내어 중독성 있는 곡을 만드는 발달장애인의 음악성이 놀랍습니다.
‘탈탈탈’ 팀은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문화제 무대에서 부르거나 음반으로 만들어 집회에서 들려줍니다. 발음이 또박또박하지 않아 가사가 잘 전달되지 않고 성악적 형태와 대중성은 찾기 힘든 곡조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노래에 감동합니다. 요제피네의 노래처럼 먼 거리에서 듣기만 한다면 그게 ‘노래’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제피네의 관객들처럼 가까이 다가가 어떤 발달장애인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쳐들고, 어떤 이는 손을 귀에 대고 머리를 흔들고, 어떤 이는 펄쩍펄쩍 뛰고, 어떤 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노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부르는 걸 볼 때, 비로소 ‘탈탈탈’ 팀의 음악이 들리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들의 음악은 만수와 발달장애인들, 그리고 관객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만 없어도 미완인, 실로 완벽한 공동 창작물이죠.
‘탈탈탈’ 예술팀은 춤 공연도 합니다. 노래에서 만수가 하는 역할을 춤에서는 엠마누엘이 합니다. 아프리카 춤 전문가인 엠마누엘 사누와 동료 권금이 발달장애인의 몸에서 춤을 찾아 출 수 있게 도와줍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엠마누엘은 서아프리카 전통춤인 만딩고를 기반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안무가들과 함께 현대 무용을 수련했습니다. 엠마누엘은 춤추기 부끄러워하는 이들을 만나면 ‘우리 모두는 매일 춤추고 있다’고 항상 말합니다.
춤은 저기 멀리 있는 어떤 TV 스타의 현란한 동작이 아니라, 내 몸 아주 가까이 있는 움직임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리고 당신이 ‘춤출 수 있다’는 말은 당신이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움직임으로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며, 이 몸의 표현은 국적과 문화, 언어를 뛰어넘어 ‘느낌’으로 통한다.5)
엠마누엘의 춤에 대한 이런 생각은 ‘탈탈탈’ 팀의 중증 발달장애인을 통해 완벽하게 입증됩니다. 탈탈탈 팀이 추는 춤은 요제피네의 노래처럼 현란한 동작이나 무용의 형식미가 없습니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뒤뚱뒤뚱 걷는 걸음, 몸을 좌우로 크게 휘저으며 하는 점프,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분을 표현하는 손동작 등 발달장애인의 몸에 익숙한 움직임 자체가 춤이 됩니다. 이들의 춤 공연은 교실, 공원, 광장에 모여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시작됩니다. 공연의 형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춤추고 싶은 사람은 원 안으로 들어와 원하는 만큼 춤춘다. 다른 사람이 원 안에 들어오면 그와 함께 춤추고, 젬베의 신호에 맞춰 춤을 마친다. 춤추다 중간에 멈춰도 괜찮고, 리듬과 달리 움직여도 괜찮다. 춤을 멈춘다면 같이 춤추던 이도 함께 멈출 것이고, 갑자기 느리게 움직인다면 연주하던 이들도 함께 느린 리듬을 연주할 것이다.6)
비장애인 조력자들과 쌍을 이뤄 상대방의 몸짓을 모방하고, 조심스럽게 변형하고, 그 변형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며 이끄는 듀엣 공연은 자폐인에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의사소통과 협상을 춤으로 입증해 보입니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합니다. ‘저들은 중증 발달장애인이 틀림없고, 저들의 몸짓은 춤이라기엔 아무런 기교와 형식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점점 춤과 춤 아닌 것 간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아무런 쑥스러움도 느끼지 않고, 자신의 몸짓과 음악에 정성스런 주의를 기울이며 움직인다. 혹시 저런 것도 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점점 자신도 커다란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때요? 이런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이미 가장 성공적인 춤 공연이 아닐까요?
노래와 춤도 좋아하지만 ‘탈탈탈’의 발달장애인들은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종이와 물감만 있으면 그들은 정해진 시간을 넘어 무한정 계속할 수 있을 것처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합니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드뷔페가 말한 ‘아르 브뤼’ 자체입니다. 어떤 격식과 선입견에도 갇히지 않고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로 자신과 세계를 날것의 느낌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의 아르 브뤼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경탄을 자아내며 노들야학 복도나 마로니에공원에 전시되고, 노들야학의 각종 행사 기념 티셔츠 도안으로도 활용됩니다.
- 장애인 예술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해 주세요
‘탈탈탈’ 팀의 노래, 춤, 그림 제작은 처음에는 노들야학의 ‘낮 수업’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러다 2020년에 서울시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이 시행되면서 이들의 예술 활동은 ‘노동’이 되었습니다. 즉 이들은 법정 최저임금으로 월 60~80시간 노동하며 근로지원인의 지원을 받고,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휴수당과 휴가를 쓰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는 예술 노동자가 된 것입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한 장애인 인식 개선 캠페인을 공무원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의 노동으로 수행하도록 한 사업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하는 교육, 예술, 권익옹호 활동만큼 장애인의 존재와 권리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장애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정부는 장애인 인식 개선 사업을 하고, 대중들은 장애인의 존재와 권리를 알게 되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2024년 1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해고되었습니다. 202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세훈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못마땅해하더니 결국 2024년부터 이 사업을 전면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요제피네의 요구를 거절한 쥐 종족의 대중처럼 중증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중증장애인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건 취미생활일 수는 있지만 다른 노동과 동등한 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요제피네처럼 자신의 노동을 인정해 달라고 간청도 하고 시위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며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시민은 유일한 여가수인 요제피네를 잃어버린 쥐 종족처럼 최초의 중증장애인 예술 노동자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증장애인 해고 노동자들은 요제피네처럼 전설로 남지 않기 위해 원직 복직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관심 가져 주시고 힘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필자 소개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자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2020년에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썼고, 2024년 1월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장애학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비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노들야학 영화반에서 학생들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다가 1년 만에 철학 수업으로 돌아왔다. lizo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