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철학, 카프카의 경우 ⑥]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가 얻은 문학적 명성과 ‘상징적’ 해석 때문에 오히려 이 작품이 지닌 ‘역사성’에 대해서는 덜 말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역사성을 파악하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하겐벡’입니다. 이 소설은 서아프리카의 “황금 해안”(기니만 연안 해변)의 원숭이가 “하겐벡 사냥 원정대”에 의해 포획되어 “함부르크”로 실려 와 버라이어티 쇼 극단에서 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카프카 소설에서는 드물게 하겐벡이라는 인물이 아프리카에서 동물과 흑인을 납치해 전시한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한 이야기로, ‘프릭쇼’(freak show)와 관련된 장애인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 하겐벡의 인종 전시
1844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칼 하겐벡은 자신의 이름을 딴 ‘하겐벡 사냥 원정대’를 꾸려, 아프리카 등 오지의 야생동물을 포획해 동물원, 서커스단, 박물관에 전시용으로 파는 사업을 했습니다. 1866년에서 1886년 사이에 그가 포획한 야생동물은 표범 약 700마리, 사자 1,000마리, 호랑이 400마리, 곰 1,000마리, 하이에나 800마리, 코끼리 300마리, 코뿔소 70마리, 낙타 300마리, 기린 150마리, 영양 600마리, 원숭이 수만 마리, 악어와 뱀 수천 마리, 여러 종류의 새 수십만 마리로 알려져 있으며, 포획 과정에서 잔인하게 죽인 동물과 수개월의 험한 여정에서 죽어 간 절반가량의 동물까지 합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에 이릅니다.1) 하겐벡은 스스로 동물원을 운영하고 동물들을 조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물원 사업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그는 라플란드인, 에스키모인, 흑인, 베두인, 누비안 종족의 사람들을 잡아 와 동물원 한쪽에 울타리를 치고 ‘원시인’이라며 전시했습니다.
하겐벡은 당시 유럽인들의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 안에 문명 이전의 원시인에 대한 관심이 존재함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래서 라플란드인이 야생동물과 함께 지내는 일상생활을 전시하면서 문명인으로 진화하기 전 초기 인류의 모습이라고 홍보합니다. 그렇게 납치되어 온 이들 대부분은 천연두나 결핵 등의 전염병으로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비용 때문에 혹은 고향이 식민화되고 파괴되어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하겐벡이 유별났던 게 아니라, 당시 서구 사회에서는 식민주의와 진화론이 뒤섞여 식민지 원주민을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진화 고리라고 홍보하는 인종 전시가 유행했습니다.
- 사르키 바트만의 프릭쇼
남아프리카의 코이코이족 여성 중 유럽에 끌려가 전시된 사르키 바트만(1789~1815)이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10대 후반 혼례 날 백인 정찰대에게 납치되어 케이프타운으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영국으로 팔려간 바트만은 ‘프릭쇼’의 중심지인 피카디리에서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춤을 추었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머리가 둘인 사람, 거인, 난쟁이, 인어, 해골인간, 개코원숭이 여인, 통나무 인간 등 상상 속 ‘괴물’과 생물학적 ‘기형’ 사이에 존재하는 이들을 전시하는 프릭쇼가 유행했습니다. 19세기 프릭쇼의 유행은 휴머니즘의 득세와 연관된 현상입니다. 근대 휴머니즘은 신과 인간의 차이, 동물과 인간의 차이 속에서 인간의 고유한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근대 ‘인간학’(human science)에 의해 인간은 이성을 통해 말을 하고, 노동을 통해 문명적으로 진화한 생명체라는 인간성의 관념이 형성되었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본질, 즉 인간성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정상성’을 설정하도록 했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의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구체화 되고, 정상 인간의 특성을 도출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인간의 형상이 비교 대상으로 연구되었습니다. 프릭쇼는 ‘저것도 인간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괴물 혹은 기형의 인간을 전시함으로써 인간의 정상성에 대한 물음을 대중에게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르키 바트만은 ‘괴물’도 아니고 ‘기형’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코이코이족 여성의 일반적인 신체적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코이코이족 여성들은 엉덩이가 거대해지는 둔부지방경화증(steatopygia)이라는 유전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바트만도 그랬습니다. 코이코이족에겐 평범한 특성이 서구 백인 남성의 눈에는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변종(freak)처럼 보였습니다. 바트만은 ‘호텐토트2)의 비너스’라고 불리며 피카디리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녀를 태운 마차가 지나가면 길거리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비너스’를 보기 위해 앞다퉈 몰려들었습니다. 1811년 5월 런던에서의 쇼는 막을 내렸고, 바트만 일행은 영국의 지방을 돌며 박물관, 전시회, 극장, 선술집 등에서 계속 쇼를 이어갔습니다.
영국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소진되자 바트만은 파리의 동물 조련사에게 팔려갔습니다. 동물 조련사는 바트만을 코뿔소 새끼와 같은 우리에서 거의 알몸으로 전시했으며, 가만히 있지 말고 여러 가지 포즈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관람객은 추가 금액을 내면 바트만을 만지거나 지팡이 또는 손가락으로 찔러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트만은 부자들의 파티나 사교모임에 흥을 돋우기 위해 대여되었으며, 홍보를 위해 파리 시내의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녔습니다. 조르주 퀴비에 등의 저명한 비교해부학자, 동물학자들은 바트만을 대여해 파리 자연사박물관에서 3일 동안 ‘기형적인’ 엉덩이와 ‘진화가 덜 된’ 음순을 관찰했습니다. 이후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들자 바트만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성병까지 얻어 26세 전후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죽은 뒤에도 인종 전시는 이어졌습니다. 사망 후 바트만의 시신은 조르주 퀴비에에 의해 해부되어 뇌, 둔부, 음순 등 ‘동물에 가까운’ 기관은 별도로 보관되고, 전신 석고상은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 어느 단식 광대의 프릭쇼
카프카의 소설 「어느 단식 광대」는 사르키 바트만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린 단식 광대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우리 안에서 단식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전시하는 공연을 하는 ‘단식 광대’입니다. 단식이 무슨 볼거리가 되냐고요? 온몸에 문신을 하거나 피어싱을 하는 것처럼 단식도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프릭쇼가 될 수 있고, 실제로 단식 쇼가 이뤄진 적도 있다고 합니다. 소설의 화자에 따르면 단식 공연이 한창 흥행할 때는 한 도시에서 수천 명의 관객을 모은 적도 있습니다. “단식하는 날짜가 지날수록 관심은 고조되고, 누구나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단식 광대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주인공은 누구보다 단식을 잘 해서 무한정 계속 단식할 수 있다고 했지만, 흥행주(promoter)는 단식의 최장기간을 40일로 정해 놓았습니다. 경험에 따르면 40일 정도가 한 도시에서 관심을 점차 고조시켜 최대치로 끌어올리기에 적당하고, 40일이 지나면 오히려 관객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단식 공연의 흥행이 어느 해부터인지 현저히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흥행주는 단식 광대를 데리고 다시 한번 유럽을 돌아다녔지만 “마치 어떤 비밀스런 합의에 의한 것인 양” 대중들의 관심은 사그라들었습니다. 단식 광대는 흥행주와 이별하고 한 서커스단에 고용되었습니다. 서커스단에서의 단식 공연은 본 무대가 아니라 동물들이 머무는 마구간 옆 작은 우리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휴식 시간에 관객들이 동물을 구경하려고 마구간으로 몰려오는 길에 그의 단식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동물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 단식 광대는 지나쳐 갔습니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아무도 단식 날짜를 세는 팻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단식 광대는 40일을 훌쩍 넘어 무기한 단식하다 말라비틀어져 죽습니다. 단식 광대가 있던 우리에는 왕성한 식욕을 가진 표범 한 마리가 대신 들어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단식 광대는 프릭쇼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다 시들해지자 서커스단의 동물 조련사에게 팔려가 우리 안에서 동물과 가까운 삶을 살다 죽었다는 점에서 바트만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왠지 둘의 느낌이 다르다고요? 바트만은 강제로 끌려와 프릭쇼를 했지만, 단식 광대는 자발적으로 공연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말씀이죠? 네, 분명 그런 측면이 있어요. 이 소설의 원제목도 ‘단식 예술가’(Ein Hungerkünstler)이고, 소설 내용도 주인공이 자신의 단식 예술에 자부심을 갖고 완전하게 해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가령 그는 세 명의 고정 감시인을 고용해 밤새 자신의 단식을 감시하게 하고 아침엔 사비로 훌륭한 식사까지 제공했으며, 흥행주가 정한 40일의 최장 기한에 불만을 토로하며 그 이상 계속 단식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 프릭쇼의 주체화 계기
사르키 바트만의 프릭쇼에도 자발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노예 매매가 불법인 영국에서 바트만이 한 프릭쇼는 민속 의상을 입고, 코이코이족 전통춤을 추고, 민요를 부르는 공연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자신은 노예가 아니며 자발적으로 공연했다는 바트만의 진술은 흥행주의 ‘가스라이팅’에 영향 받은 게 아닐까 의심스럽지만, 자의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프릭쇼에 출연한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직업의식을 갖고 공연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버라이어티 쇼에서 흥행을 이끌며 자수성가한 장애인도 있었고, 영아살해를 당하거나 버려졌을 ‘기형아’들이 프릭쇼를 통해 사회적 생존의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가난한 집에서 프릭쇼에 출연할 만큼 기형인 아이가 태어날 때 “가족의 경사”3)라며 기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버라이어티 쇼나 서커스 막간의 사이드 쇼는 단지 기형을 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기예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공연 예술의 형태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가령 팔다리 없이 태어나 ‘통나무 예술가’라고 불린 니콜라이 코벨코프는 “무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체조를 하고 권총을 쏘고, 술을 마시며 바늘에 실을 꿰고, 병마개를 열고, 자기 이름을 서명하는”4) 퍼포먼스로 유명세와 부를 얻었습니다. 코벨코프와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대접을 받은 장애여성이 있습니다. ‘가재 여인’(Le Femme Homard)이라는 별명을 지닌 밀 브리종은 일부 손가락이 붙은 장애를 갖고 무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자수를 놓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겨우 손가락 모양이 가재 발과 닮았다고 반인반수의 괴물로 불리다니 참 웃기고 황당하죠? 하지만 브리종의 퍼포먼스는 공연 예술로 인정받지 못해 행정 당국에 의해 기소되었습니다. 1906년에 특별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축제나 카니발에서 기형을 전시하는 걸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입니다.5)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도 1860년대부터 ‘흉측하게 생긴’ 사람들이 특정한 공공장소에 있는 것 자체를 불법화한 공공미화법(ugly laws)에 의해 프릭쇼를 통제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프릭쇼는 점차 서구 사회의 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느 단식 광대」의 “지난 수십 년간 단식 광대에 대한 흥미는 줄어들었다”는 첫 문장은 프릭쇼의 급격한 쇠퇴를 말해줍니다. “마치 어떤 비밀스런 합의에 의한 것처럼” 프릭쇼의 흥행이 사그라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장애의 스펙터클과 장애의 시설화
프릭쇼가 쇠퇴한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식을 이끈 것은 생물학의 대중화입니다. 생물학적 인식은 반인반수의 괴물을 ‘인간’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의 타자성은 이제 겉으로 드러난 ‘괴물성’이 아니라 인간의 발생학적 ‘기형’이나 진화론적 ‘퇴행’의 결과로 이해됩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동류의식이 그들을 전시 대상에서 해방시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등한 시민으로 포함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비정상성이 다루어지는 장소와 타자화 방식입니다. 프릭쇼에서 비정상성은 지역 축제나 카니발, 광장, 거리의 유랑극단 등 공개된 장소에서 대중적 스펙터클(대단한 볼거리)로 상연되었습니다. 반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포착된 ‘기형’이나 ‘퇴행’은 통제된 시설 안에서 해부·관찰되고, 교정·치료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이런 변화에 조응하여 정부는 거리와 광장의 프릭쇼를 단속했습니다. 그때 내세운 명분은 불쌍한 장애인을 괴물로 전시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막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도시의 무질서, 혼란, 비위생, 상스러움을 일소하고 대중에 대한 통제 권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 사회정의와 질서 확립을 표방하며 거리의 부랑자와 장애인을 단속해 시설로 강제 수용하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유랑 서커스단과 시골 장터의 약장사들, 그들이 데리고 다니던 원숭이와 ‘난쟁이’들도 모습을 감추었죠. 프릭쇼에서 볼거리로 삼는 것과 시설에 수용하여 훈육(discipline)하는 것 중 어떤 쪽이 인도적인 처우일까요? 개별 상황마다 달라서 어느 쪽이 더 인도적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장애의 스펙터클이 금지되면서 장애인은 더욱 대상화되고, 그에 대한 통제 권력은 더욱 커지면서 장애인의 자유도가 더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 프릭쇼에서 퀴어 퍼레이드로
프릭쇼의 스펙터클에서 장애인은 괴물로 대상화되는 측면과 함께 관객에게 경탄을 자아내며 자신을 드러내는 주체화의 계기를 동시에 가집니다. 프릭쇼를 통해 장애인은 대중에게 자신의 몸과 존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사회적 주체로 참여할 기회를 얻습니다. 인간주의의 시야를 벗어나서 보면 반인반수의 존재로 관객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저것도 인간이야?’라는 의구심은 언제든 ‘저런 인간도 있구나!’라는 경외심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최소한 시설에 갇혀 무가치한 존재로 훈육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스펙터클의 장에서는 이처럼 묘한 권력관계의 역전이 발생합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권력관계가 역전되어 보이는 자가 오히려 과시의 주체가 되고 보는 자가 수동적 관객으로 전락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에 따라 가치의 전도가 일어나 멸시받는 특성이 과시되는 특성으로 변하는 일도 생깁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서구의 형벌 제도가 왕권의 스펙터클이 펼쳐지던 공개 처형으로부터 감금 시설에서 규율(discipline)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왕권을 과시하는 공개 처형의 스펙터클에는 죄인이 왕권에 굴복하지 않고 관객이 죄인을 영웅시하면서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항의 위험을 원천 봉쇄하고 통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죄인을 감금 시설에 가두고 규율을 부과하는 처벌 방식으로 바꾼 거죠. 도시 정비 사업을 통해 질서를 확립하고, 프릭쇼, 지역 축제, 카니발 같은 비정상의 스펙터클을 금지한 것도 이런 규율사회와 시설사회의 수립을 위한 것입니다.
서커스에 프릭쇼를 도입해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이야기를 가공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본 적 있나요? 이 영화를 보면 프릭쇼에서 괴물로 멸시받던 사람들이 “이게 나(This is me)”라면서 자신에 대한 긍지를 드러내며 춤을 추는 장면이 있습니다. 19세기 프릭쇼에서 과연 이런 드라마틱한 가치 전도가 일어났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영화적 현실은 19세기의 프릭쇼를 1970년대 ‘퀴어 퍼레이드’와 연결할 때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1970년대에 서구에서 확산된 퀴어 퍼레이드는 20세기 초에 금지된 프릭쇼의 역사를 전도된 형태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성구유 괴물과 ‘털북숭이 여인’ 등 프릭쇼에 등장했던 트랜스젠더들이 시설과 술집에서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의 ‘기괴함’(queer)을 뽐낸 것입니다. 뒤를 이어 정신병원에 수용된 미치광이들이 “그래, 나는 미쳤다. 그게 뭐?”라며 매드 프라이드를 주장하면서 퍼레이드를 하고, 그 뒤를 이어 중증장애인들이 “그래, 나는 불구다. 그게 뭐?”라며 디스어빌리티 프라이드 행진을 했습니다. ‘괴물’로 간주된 이들이 인간주의적 정상성에 도전하는 자신의 존재와 몸을 과시하며 체제 전복의 괴물로 재등장한 것입니다.
1)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이마즈 유리 옮김, 오월의 봄, 2020, 198쪽.
2) 호텐토트(Hottentot)는 남아프리카의 비(非)반투족 목축민족인 코이코이족과 코이산족을 가리키던 말이다. 오늘날에는 인종주의적 차별어로 여겨진다.
3) 다이내나 스니구로비치, 「기형의 딜레마: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파리에서의 비정상 인간에 대한 경찰통제와 기형학」, 『푸코와 장애의 통치』, 박정수 옮김, 그린비, 2020, 230쪽.
4) 같은 책, 232쪽.
5) 같은 책, 229쪽.
필자 소개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자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2020년에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썼고, 2024년 1월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장애학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비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노들야학 영화반에서 학생들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다가 1년 만에 철학 수업으로 돌아왔다. lizo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