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본회의 통과한 자립지원법 폐지 청원 6만 명 돌파
알고 보니 천주교에서 조직적으로 청원 주도
조규만 천주교 사회복지위원장, 탈시설 왜곡한 입장문 발표
탈시설연대, 명동성당서 면담 요청 위한 기습 시위 벌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지난 6일 오후 2시 30분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지난 6일 오후 2시 30분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소영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러 왔습니다. 천주교는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부정하는 것을 멈춰 주십시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장애인을 감금하고 격리하고 배제하는 차별을 용인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지 않습니까.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가 지난 6일 오후 2시 30분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최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전국의 성당에 공문을 배포하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자립지원법) 폐지 국민동의 청원 동참을 조직적으로 독려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 폐지 운동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아래 거주시설부모회)가 제기한 자립지원법 폐지 청원은 지난 9일 약 6만 4천여 명의 동의로 마감됐다. 청원은 지난달 31일, 참여 인원이 5만 명을 넘기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됐다. 이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청원을 심사해 본회의에 부의(토의에 부침)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지난 6일 오후 2시 30분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지난 6일 오후 2시 30분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시설’도 필요하고 ‘자립’도 필요하다?… 조규만 주교의 탈시설 왜곡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자립지원법은 김예지, 최보윤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이 통합·조정한 대안이다.

이 법은 시설거주장애인과 재가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고 국가와 지자체에 주거전환 및 자립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책무가 있음을 골자로 한다. 특히,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생활은 ‘자립’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3년마다 자립 지원 실태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또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을 위하여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와 지역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해야 하며, 동시에 거주시설의 장은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의 주거 전환을 위하여 협력하여야 한다.

한국카리타스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조규만 주교는 “자립지원법의 문제점 - 장애인에게는 ‘시설’도 필요하고, ‘자립’도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청원 독려 공문과 함께 배포했다.

조 주교는 “자립지원법 제정을 통해 탈시설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법에 인권 유린이 발생할 수 있는 독소 조항들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며 “장애인들이 본인의 상황과 의지에 따라 시설 거주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보완하기 위해 발표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에는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폐지하고, 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해야 하며, 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 시설수용이 장애인의 보호 조치 혹은 ‘선택’으로 고려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 주교의 주장은 국제 기준을 철저히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성당에 걸려있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탈시설하는 민주주의”, “한국 천주교는 탈시설지원법 제정에 동참하라!”라고 적힌 족자들. 사진 김소영
성당에 걸려있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탈시설하는 민주주의”, “한국 천주교는 탈시설지원법 제정에 동참하라!”라고 적힌 족자들. 사진 김소영

- 수많은 시설 운영하는 천주교, 꾸준히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부정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에 따르면 천주교는 전국에 175개의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천주교 측의 지속적인 탈시설권리 왜곡은 시설의 존폐가 자신의 이권과 철저히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2021년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에 적극적으로 반대해 왔다. 신부이자 동시에 시설 원장들인 이들이 앞장서 ‘탈시설’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하고 시설 거주 또한 ‘주거 선택권’이라면서 시설 폐쇄는 주거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2022년 8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거주시설부모회 소속 부모들을 만나 “교회도 탈시설 정책이 갖고 있는 불합리와 미흡함을 공감하고, 여러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하도록 하겠다”면서 “‘시설은 비인격적, 비합리적이고 문제가 많다’는 집단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발언했다.

2023년 10월, 이기수 수원교구 신부(당시 장애인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는 비인간동물의 지능과 발달장애인의 지능을 비교하며 비인간동물과 발달장애인을 비장애인에 비해 ‘무능’한 존재로 표현했다. 이 신부는 이전에도 “발달장애인이 (탈시설을 요구하며) 데모하는 건 못 봤다”라며 장애인 당사자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전적이 있다.

2024년 11월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한국카리타스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이 죽어 나간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2009년에서 2022년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의 탈시설 전수조사를 근거로 삼았다.

천주교계는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체 약 1200명 중 주거 확인이 가능한 대상자는 700명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213명은 전수조사에서 아예 배제됐다. 조사 참여자 487명 중 탈시설을 한 뒤 재가에 있는 사람이 281명이며, 이들 중 136명이 타인에 의해 퇴소당했고 이 때문에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천주교계가 주장한 것처럼 ‘탈시설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내용은 조사 보고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퇴소 전과 후의 건강 상태 변화’를 묻는 문항에서 절반 이상(59.5%)이 좋아졌거나 매우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보건복지부에서 2023년 발표한 보건복지통계연보에 의하면 2022년 ‘1년 동안’에만 서울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망한 장애인이 51명에 달한다. 이는 천주교계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13년간’ 탈시설 후 사망한 장애인 수(24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사망한 장애인은 총 359명으로, 2021년의 226명에서 58.8%나 증가했다.

- ‘성스러운’ 천주교 성지에서 외친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이처럼 천주교계는 지속적으로 신뢰성이 낮은 근거를 반복적으로 내세우며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고 시설의 필요성을 정당화해 왔다. 탈시설연대가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오후 2시 30분, 장애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신도들 앞에서 이 자리에 나서게 된 이유를 이야기한다.

“신도 여러분, 저희가 이렇게 온 이유는 천주교에서 조직적으로 장애인을 시설로 보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조규만 대주교는 탈시설권리를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며 신도들에게 자립지원법 폐지 청원 서명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울산 태연재활원이라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한 달에 890건의 폭행이 있었습니다. 시설에서 일어나는 상습적인 폭행과 시설 비리를 천주교가 옹호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약 10분 뒤, 명동대성당 관계자들이 나와 퇴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탈시설 권리 보장을 외치며 천주교계의 탈시설 왜곡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신도들에게 나눠줬다.

활동가들이 신도들에게 나눠준 유인물.  “장애인도 시민으로 탈시설하는 민주주의. 탈시설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김소영
활동가들이 신도들에게 나눠준 유인물.  “장애인도 시민으로 탈시설하는 민주주의. 탈시설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김소영
민푸름 탈시설연대 활동가가 나창식 신부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민푸름 탈시설연대 활동가가 나창식 신부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성당 관계자들은 그런 활동가들을 방해하고 막아서기 시작했다. 민푸름 탈시설연대 활동가는 분노하며 이야기했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한국 천주교가 꽃동네 운영하시지 않습니까. 여기 앞에 계신 분(기습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 다 꽃동네에서 탈시설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 지금 어떻습니까. 장애인이 탈시설할 수 없다고 얘기하잖아요. 신부들이 앞장서서 발달장애인의 지능을 비인간동물과 비교하며 그런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지역사회에 살 수 있냐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면담을 요청드리러 왔습니다. 불법 점거가 아닙니다. 장애인의 탈시설권리와 관련해서 천주교가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신도들께 알려드리러 온 겁니다.”

명동대성당에서 벌어진 기습 시위 현장. 신도들과 성당 관계자들, 성당 관계자들이 부른 경찰들이 뒤섞여있다. 사진 김소영
명동대성당에서 벌어진 기습 시위 현장. 신도들과 성당 관계자들, 성당 관계자들이 부른 경찰들이 뒤섞여있다. 사진 김소영

신도들은 이들의 행동에 ‘성스러운 곳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항의했다. 성당 인근에서 자립지원법 폐지 서명을 받던 김현아 거주시설부모회 대표도 가세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성당은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스러운 곳이다. 여기는 천주교 성지다. 나가서 하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김 대표는 박경석 대표를 향해 “이분이 하시는 이야기는 하나도 맞지가 않다. 장애인거주시설은 감옥이 아니다. 그만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탈시설연대는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요청서를 전달하겠다고 밝힌 명동성당의 나창식 신부에게 해당 요청서를 전달한 뒤 성당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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