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으로부터 약 25m, 건물 10층 높이 그 위에 사람이 있다. 박초현, 민푸름, 이학인. 이 세 사람은 지난 18일 오후 4시,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올랐다.
그들의 동지, 이규식도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성당 본당 1층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종탑 옥상에 오를 수 없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있다. 성당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고공농성에 나선 박초현은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민푸름과 이학인은 비장애인 탈시설 운동가다. 난간도, 지붕도, 화장실도 없는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왜 그들은 올라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곳까지 오르게 만들었을까.
그 답을 대신해, 부활절 하루 전날인 19일 오후 7시에 진행된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도 탈시설은 권리다’ 고공농성 연대문화제에서의 발언들 중 일부를 전한다. 고공농성자들의 절실한 마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우고자 하는 동지들의 외침이 많은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우리가 왜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저 높은 종탑에 올랐는지, 그리고 명동성당이 아닌 왜 혜화동성당에서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반대해 왔습니다. ‘어떤 장애인은 시설에서 수십 년 살다가 죽어도 관계없다’, ‘시설이 최선이다’라고 말하는 게 바로 저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했습니다. 근데 이 조례 폐지 서명 누가 주도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천주교입니다. 이곳 혜화동성당을 다니는 신자 한 분이 저희에게 제보를 주신 것도 있습니다. ‘혜화동성당에서 지금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조직하는 서명이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자 분들이 그냥 다 합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무슨 조례인지 모른 채로 이 서명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지난여름 탈시설지원조례는 폐지됐습니다.
천주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제공하는 ‘장애인자립지원법’이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이 자립지원법이 통과하자마자 한국 천주교는 이 또한 폐지돼야 한다면서 국회에 폐지 청원을 올렸습니다. 이 폐지 청원이요, 6만 명을 넘었습니다. 7만 명 가까이 다다릅니다.
저희는 이런 천주교에 문제를 제기하고 ‘더 이상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폄훼하지 마십시오. 도와달라고도 안 하겠습니다. 반대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지수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활동가
“여러분, 시설이 주님의 사업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정말 너무나 비겁한 말이지 않습니까. 신의 뜻이 아니라 돈의 뜻이겠지요. 주님의 사업이 아니라, 돈줄들의 사업이겠지요. 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오히려 신이라는 튼튼하고 성스러운 이름을 감히 포장지로 전락시킨 채 이권 사업을 지키기 위해 감히 신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겠지요. 정말 너무 비겁합니다.
감히 신을 앞세워 자신의 비겁함을 숨기고 자신의 돈벌이를 지켜내려 한 겁쟁이들과 욕심쟁이들이 더 이상 신의 이름 뒤에 숨지 못하도록, 우리 더 크게 그리고 더 강하게 종탑에 오른 동지들과 연대합시다. 저 십자가에 묶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의 깃발을 똑똑히 기억하고 저 깃발의 의미를 우리가 종탑에 오른 동지들과 함께 만들 세계를 계속해서 외칩시다.
저는 한국 최초의 가톨릭 추기경, 고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일화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도시빈민들의 곁에 늘 함께하고자 했던 그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정부와 대기업 또는 어떤 개인일지라도 이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호화주택을 짓거나 가질 권리가 없다.’
돈 없고 집 없다고 그 땅 위에 살아 숨 쉬고 있던 사람들과 생명들을 함부로 쫓아내고 밀어내고 도려내던 자본과 바로 그 자본에 얽혀 있던 겁쟁이들과 욕심쟁이들에게 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리 말한 겁니다.
저는 그의 말을 빌려,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천주교 성도들, 형제자매님들, 신부님들에게 말 건네고 싶습니다. 그 어떤 천주교인들일지라도 이 세상에 지역사회에서 안전히 돌봄을 주고받을 수 없고 교육받을 수 없고 이동할 수 없고 일할 수 없고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있는 한, 주님의 이름으로 시설을 옹호할 권리는 없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의 천주교가 탈시설 반대를 주장하며 고수하려고 하는 세계는 무엇입니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홀로 생존할 수 없는 사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마음껏 교육받지 못하고 마음껏 이동하지 못하고, 원하는 독립과 자립을 꿈꿀 수조차 없게 하고, 동네를 오가는 것도 하물며 일터를 오가는 것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사회. 이게 바로 시설 거주 장애인의 생존권과 선택의 자유를 운운하며 지키고 싶은 진짜 욕심들 아닙니까.
바로 그런 사회에서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장애인들이 먹고 자고 존재해야 한다고, 바로 그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정착하여 사는 사회 따위 상상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감히 신의 이름을 걸고 말입니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없어서 왔고 여기 계신 많은 동지분들이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달려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곧 신도분들이 이 자리를 지나가실 텐데요. 이 부활절 예배드리면서 어떤 기도를 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저의 동지들은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면서 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텐데 그들을 머리 위에 이고서 신도들은 어떤 기도를 드리셨을까. 당신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을까.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을까 너무 궁금합니다.
신도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 이곳이 탈시설 당사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리고 그 마음에 연대하는 동지들이 함께 올라간 투쟁의 현장이라는 것을 잘 깨닫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그 걸음걸음이 정말 무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동지들이 저 위에 있습니다. 저희가 같이 밥을 먹고 웃음을 나눌 때 그 동지는 마음속으로 아마 저 위에 올라갈 무거운 마음을 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더 많이 나누지 못해서 사실 이 자리에 와있습니다.
저는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은 자본주의에 깊이 뿌리내린 종교의 탐욕, 그리고 권력에 휘둘려서 모든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시각들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탈시설이 지금 종교개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탈시설이 종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초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
“고공농성에 연대하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사실 탈시설은 장애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탈시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탈시설을 했습니다. 탈시설을 하고 나서 저의 삶이 많이 변했는데요. 우선 친구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가장 기본적인, 제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하든 어느 누구한테도 허락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시설은 거주지의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설도 거주지의 하나이다. 시설에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시설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모두가 평등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시설을 좋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 말 그만하세요. 저희는 시설 필요 없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탈시설을 너무 싫어합니다. 탈시설을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시설에 지원하는 예산을 그대로 탈시설하는 데에 쓰면 되는데, 돈 없다고 하면서 왜 시설은 더 좋게 만들려고 합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탈시설은 선택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입니다.”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저는 사실 무섭더라고요. 보이시는 거랑 똑같거든요. 생각보다 넓지 않고요.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왔습니다. 바닥도 되게 거칠고 피뢰침이 있어서 번개 떨어지면 어떡하나 별별 걱정이 다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걱정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오니까 많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지적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잖아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저희 아버지가 시설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많은 분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밑에서 함께 농성하고 있는 이규식 대표님도 함께 있어 주셔서 든든합니다. 이규식 대표님이 계셔서 이 농성 함께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민푸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이렇게 많이 모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동지들을 믿었던 것 같아요. 일단 올라가서 판을 깔면 누구든 사람이 모이지 않을까, 농성장이 펼쳐진다고, 집회가 열린다고 하면 온 마음을 다해서 열 일을 제쳐두고 모여드는 동지들이 있는데 우리도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면 동지들이 모일 것이고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몇 달을 눈 질끈 감고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 혹은 신뢰감으로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믿음이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진짜로 가능한 일이었다고 이렇게 증명해 주셔서 동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당당하게 탈시설 권리를 외치면서 내려가는 그날까지 탈시설운동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운동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의 운동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동지들 믿으면서 여기서 힘내어서 잘 버티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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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잘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치유하신 자를 가두지 않으시고 세상으로 그가 살던 곳으로 보내셨잖아요.. 이 기사를 보며 예수님이 왜 그러하셨을까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