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탈시설연대, 천주교 탈시설권리 왜곡에 맞서 농성 돌입
탈시설 당사자 포함 활동가 3명 혜화동성당 종탑 올라
시설 10곳 중 1곳 운영하는 천주교, 꾸준히 탈시설권리 부정
천주교가 시설 옹호하는 사이 죽어가는 장애인들
“탈시설권리 보장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가 18일 오후 4시께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올랐다.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시설 밖 자유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왜곡하고 폄훼해 온 천주교가 탈시설권리를 보장할 때까지 무기한 고공농성할 것을 선언했다.
현재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인 박초현 탈시설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와 민푸름·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종탑에 올라 투쟁하고 있다.
- 장애인거주시설 10곳 중 1곳은 천주교가 운영하는 시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에 따르면 천주교는 전국에 175개에 달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4 장애인복지시설 일람표’를 통해 2023년 기준 전국에 총 1529개의 장애인거주시설이 있다고 밝혔다. 그중 천주교가 운영하는 시설이 11.4%를 차지한다. 즉 우리나라 시설 10곳 중 1곳은 천주교가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천주교 측의 지속적인 탈시설권리 왜곡은 시설의 존폐가 자신의 이권과 철저히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전국의 성당에 공문을 배포하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자립지원법) 폐지 국민동의 청원 동참을 조직적으로 독려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자립지원법이 ‘장애인을 위험과 고립으로 내몰아 생존권을 위협하는 획일적 정책을 반영한 법률’이고 ‘장애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한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자립지원법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생활은 ‘자립’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에 따르면 거주시설의 장은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의 주거 전환을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는 이러한 규정이 “탈시설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법에는 인권 유린이 발생할 수 있는 독소 조항들이 담겨 있다”며 “장애인들이 본인의 상황과 의지에 따라 시설 거주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발표했던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명백히 위반하는 주장이다. 탈시설가이드라인에서는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폐지하고, 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해야 하며, 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 시설수용이 장애인의 보호 조치 혹은 ‘선택’으로 고려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 꾸준히 탈시설권리 부정해 온 신부들, ‘시설 원장’이기도
천주교의 탈시설권리 부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2021년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에 적극적으로 반대해 왔다. 신부이자 동시에 ‘시설 원장’들인 이들이 앞장서 ‘탈시설’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하고 시설 거주 또한 ‘주거 선택권’이라면서 시설 폐쇄는 주거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2022년 8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거주시설부모회 소속 부모들을 만나 “교회도 탈시설 정책이 갖고 있는 불합리와 미흡함을 공감하고, 여러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하도록 하겠다”면서 “‘시설은 비인격적, 비합리적이고 문제가 많다’는 집단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발언했다.
2023년 10월, 이기수 수원교구 신부(당시 장애인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는 비인간동물의 지능과 발달장애인의 지능을 비교하며 비인간동물과 발달장애인을 비장애인에 비해 ‘무능’한 존재로 표현했다.
이 신부는 ‘앵무새와 까마귀는 지적장애 1급, 호랑이와 고양이는 지적장애 2급에 해당한다’며 ‘강아지 지능부터 장애인 보호작업장 근무가 가능하고 코끼리 지능부터 자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증발달장애인의 자립 가능성을 전면 부정했다.
2024년 11월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한국카리타스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이 죽어 나간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2009년에서 2022년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의 탈시설 전수조사를 근거로 삼았다.
천주교계는 “전수조사에 따르면 탈시설 때문에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천주교계가 주장한 것처럼 ‘탈시설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내용은 조사 보고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퇴소 전과 후의 건강 상태 변화’를 묻는 문항에서 절반 이상(59.5%)이 좋아졌거나 매우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보건복지부에서 2023년 발표한 보건복지통계연보에 의하면 2022년 ‘1년 동안’에만 서울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망한 장애인이 51명에 달한다. 이는 천주교계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13년간’ 탈시설 후 사망한 장애인 수(24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사망한 장애인은 총 359명으로, 2021년의 226명에서 58.8%나 증가했다.
- 천주교가 탈시설권리 왜곡하는 동안 죽어간 장애인들
이처럼 천주교계는 신뢰성이 낮은 근거를 반복적으로 내세우며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고 시설의 필요성을 정당화해 왔다.
그렇게 천주교가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동안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죽어 나가고 있었다.
지난 2월, 울산시 북구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 ‘태연재활원’(사회복지법인 태연학원, 거주인 185명, 직원 83명) 장애인 학대 사태가 언론에 알려졌다.
1988년에 개원한 태연재활원은 40년 가까이 수십억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지자체의 지도·점검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학대 사실이 적발된 적 없었다. 지난해 10월, 골절 진료를 받은 장애인 가족이 항의하면서 참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울산북부경찰서가 지난해 10월 7일부터 한 달간 CCTV(폐쇄회로텔레비전)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생활지도원 등 가해자 21명은 장애인 29명에게 매일 상습적인 학대를 일삼았다. CCTV를 통해 단 한 달간 확인된 폭행만 890건에 이른다.
가해자들은 장애인들의 머리를 때리고 발을 세게 찼다. 짐짝처럼 질질 끌고 방안에 들여다 놓았다.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거나 따귀를 왕복으로 내려치기도 했다. 울산북부경찰서는 가해자 21명 전원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 중 4명은 구속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태연재활원에서 지난 5년(2020년 1월∼2025년 2월)간 사망한 장애인이 16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한 거주인들은 모두 폐렴, 위막성 장염, 영양결핍, 심폐기능 정지, 고나트륨혈증 등 질병으로 인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시설의 의료 및 건강 관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종탑에 오른 탈시설 당사자 박초현 대표 “이 싸움 멈추지 않을 것”
전장연과 탈시설연대는 지난 6일에는 명동대성당, 13일에는 혜화동성당을 찾아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 및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의 공식 면담을 요구했다.
이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17일 ‘탈시설 정책 및 중증장애인 생명권 관련 협의 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탈시설연대에 발송했다.
해당 공문에는 탈시설권리 왜곡에 대한 인정 및 사과가 아닌 ‘탈시설은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탈시설을 강요하지 말라’는 취지의 내용이 적혀있다. 천주교계는 다시 한번 탈시설이 장애인의 권리임을 철저히 부정했다.
탈시설 당사자인 박초현 탈시설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는 종탑 아래에 있는 동료 활동가와의 전화를 통해 고공농성에 나서게 된 이유를 발언했다.
“고공농성을 결의한 이유는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은 없기 때문이고,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은 없는데 천주교가 175개의 거주시설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울산 태연재활원에서 말도 안 되는 ‘인권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천주교는 장애인은 시설에서 죽어 나가고 있는데 시설이 거주지 중 하나라고 신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립지원법 폐지 청원에 동참한 것은 ‘모든 장애인들이 시설에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천주교가 탈시설권리 부정을 멈출 때까지 이 행동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전장연과 탈시설연대가 천주교에 탈시설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음을 알리자 70여 명의 시민이 혜화동성당을 찾았다.
전장연과 탈시설연대는 △조규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은 면담에 나설 것 △천주교는 탈시설 권리를 보장할 것 △천주교는 자립지원법 통과를 수용할 것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울산 태연재활원 참사에 대해 즉각 대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요구안이 관철될 때까지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의 고공농성을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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