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소셜믹스 주택 ‘여기가(家)’ 준공 기념 간담회 진행
탈시설장애인 김동림 “아직 3만 명 시설에… 탈시설법 꼭 제정해야”
김정하 프리웰 대표 “누구도 돌봄·주택이 없어서 시설 가는 일 없어야”
우원식 국회의장 “‘여기가(家)’,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
서미화·김예지 국회의원, 복지부·국토부 관계자 등도 참석해
“이곳에 여기가(家)가 생기기 전, 향유의집에서 20여 년을 살았습니다. 2009년에 자립해서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여기 우원식 국회의장님이나 보건복지부, 국회에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LH나 정부에서 이런 특화형 매입임대주택을 많이 만들어주고, ‘탈시설지원법’을 꼭 제정해주십시오. 아직도 전국에 3만여 명이나 장애인이 시설에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그날,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동림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불과 4년 전, ‘향유의집(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라는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이었던 곳. 그곳에 20여 년간 수용됐던 김동림 소장이 시설의 자리를 대신한 ‘여기가(家)’를 둘러본 뒤 울컥하며 말했다. 지금까지의 투쟁이 떠오르며 탈시설 당사자로서의 감격과 미안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었을 것이다.
김동림 소장을 비롯한 장애인 당사자, 탈시설 운동가, 국회의원,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김포시, LH 관계자 등 80여 명이 20일 오전 10시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 있는 ‘여기가(家)’에 모였다. 그곳에서 사회복지법인 프리웰과 한국사회주택협회가 장애·비장애 소셜믹스 특화형 임대주택 ‘여기가(家)’ 준공 기념 간담회를 열었다.
- 장애인 당사자들의 치열한 투쟁으로 이뤄낸 시설 폐지
2021년 4월 30일,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이 ‘폐지’됐다. 시설이 문을 닫는 데는 폐쇄와 폐지, 두 가지가 있다. ‘폐쇄’는 인권침해 문제 등으로 지자체 행정명령에 의한 것이고, ‘폐지’는 시설이 자체적으로 지자체에 신고하여 문을 닫는 것이다.
그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향유의집의 옛 이름인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거주하던 중증장애인 한규선 씨는 TV를 보다가 장애수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시설에 있는 어느 누구도 거주인에게 장애수당이 무엇인지, 그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한 씨가 석암재단의 장애수당 갈취 사실을 복지부에 알리자, 요양원은 발칵 뒤집혔다. 장애수당 횡령, 식자재비 허위 청구 등 거대한 비리와 인권침해 문제가 속속 밝혀졌다.
그리고 2009년 6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모인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장애인 8명은 결심했다. ‘더는 시설에서 살지 않겠다. 노숙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살겠다.’ 일명 ‘마로니에 8인’의 62일간의 노숙 농성이 이어졌다.
탈시설 정책을 거부하던 서울시는 그해 8월 지자체 최초로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수립했다. 이어 서울시가 발표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 1차 계획(2013~2017)’은 전국으로 확대돼 2021년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 로드맵 발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탈시설 정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장애인 당사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9년 석암재단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지난한 투쟁 끝에 비리 책임자를 청산한 뒤 공익이사로 이사진을 전면 교체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프리웰은 탈시설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시설 폐지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며 법인 차원의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시설 폐지 매뉴얼이 부재한 상태에서 탈시설이라는 거대한 전환은 오롯이 법인과 시설의 몫이었다. 2018년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프리웰 대표를 맡으면서 탈시설 추진이 가속화되었다.
마침내 프리웰은 장애 정도와 유형에 관계없이 시설에 있는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이라는 성과를 일궈냈고, 그 결과 향유의집은 3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시설 터에 장애인 자립지원 주택 ‘여기가(家)’ 들어서다
‘향유의집 폐지’ 이후 4년이 흘렀다. 이제는 그 자리에 ‘여기가(家)’라는 이름을 단 멀끔한 건물 3동이 들어서 있다.
여기가(家)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장애인 가구(12가구), 미·비혼아동양육 가구(8가구), 1인 가구(8가구) 총 28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모든 건물에는 휠체어가 여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장애인 가구의 출입문과 방문도 모두 전동휠체어도 넉넉히 진입할 수 있도록 폭이 1.2m로 설계되었다. 이는 보통의 공공임대주택 문 폭인 0.95m에 비해 확연히 넓다. 입구의 단차에는 작은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무리 없이 출입할 수 있다.
집 안은 전 구간이 무단차로 설계됐으며, 넓은 방이 두 개 있다. 각 방에는 채광과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큰 창문이 설치돼 있다. 거실과 방 모두에 스프링클러도 갖춰져 있다.
김정하 프리웰 대표는 “법적으로는 완강기 설치만 의무지만, 중증장애인은 완강기로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현관문을 방화문으로 하고, 방화문이 닫혀있는 동안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도록 설치했다. 그런데 이런 설비는 장애인 가구가 입주하더라도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법인이 돈을 따로 내서 설치한 것”이라며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가구에는 방만큼 널찍한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와상장애인은 샤워를 할 때도 누워서 씻어야 한다. 침대를 이용해 샤워를 할 때 침대의 각도를 편하게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문은 두 개가 설치돼 있다. 하나는 거실로 연결되는 여닫이문, 하나는 방으로 연결되는 슬라이딩 도어(미닫이문)이다.
장애인은 물기를 완전히 말려 옷을 입고 나오기 어려운 점과 프라이버시(사생활) 문제를 고려해, 씻은 후 바로 자신의 방으로 갈 수 있도록 슬라이딩 도어를 추가로 설치한 것이다.
장애인 가구를 둘러본 김동림 소장은 “예전에 여기서 살았을 때는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가 가운데에 있었다. 양쪽에서 하나의 화장실을 쓰는 것”이라며 “한 방에 7명이 살았기 때문에 아침마다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회상했다.
뿐만아니라 1층에는 건강관리실·주민커뮤니티시설·직원사무실이,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올라갈 수 있는 옥상에는 야외 영화제까지 할 수 있는 넓은 벽면과 공간이 마련돼있다.
- 우원식 국회의장 “‘여기가(家)’,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 함께 힘 모으자”
김정하 프리웰 대표는 참석자들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여기가(家)’를 자세히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여기가(家)는 중증장애인과 다양한 가구유형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공유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서로 돌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여기가(家)가 더 ‘특화’된 주택이 되기 위해서는 지원이 따라줘야 한다. 국토부와 복지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되려면 돌봄서비스가 지원되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선 복지부와 김포시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장애인도, 노인도, 누구도 돌봄이 없어서 또는 적절한 주택이 없어서 시설로 가는 일이 없고 지역사회에 포함돼 살기 위함이다. 종국에는 지금의 시설사회를 종식하고 지역사회에 통합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탈시설지원법’과 같은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앞으로 남은 일은 역량과 지혜를 모아서 (자립지원 주택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가(家) 준공은 장애인뿐 아니라 아동, 1인 독거노인 등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을 향해 큰 발을 내딛는 일”이라며 “사회에 취약한 이들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서 나아가자”고 전했다.
서미화·박상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도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국회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