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 명의로 사실 왜곡하는 천주교
알고 보니 ‘탈시설 반대’ 전제한 서울시 조사 인용
탈시설 ‘때문에’ 사망? 근거 없는 오류
서울시 조사 받아쓰는 조선일보·국민의힘
[편집자 주]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자유를 선언하여라.” - 이사야서 61장 1절
천주교가 운영하는 170여 개 장애인거주시설에 약 3천 명의 장애인이 갇혀 있다. 그래서일까. 천주교는 지난 2021년부터 4년 넘게 탈시설을 왜곡하고 있다.
전국 각지 성당에서 탈시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중증발달장애인을 ‘무능’한 존재로 폄하하며 탈시설이 불가능한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이에 비마이너는 천주교의 왜곡을 바로잡고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연속 보도한다.
① “탈시설장애인 24명 사망” 주장, 사실일까?
② ‘탈시설 할 수 없는 장애인’은 없다
③ 자립지원법이 장애인 생존 위협? ‘거짓’
④-1 [집담회] 시설을 벗어나, ‘나’로 살아가다
④-2 [집담회] 할 수 없다? 우리는 ‘하고 있다’
“서울시의 탈시설 전수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약 1,200명 중 주거 확인이 가능한 대상자는 겨우 700명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213명은 전수 조사에서 아예 배제되었습니다. 조사 참여자 487명 중 탈시설을 한 뒤 재가에 있는 사람이 281명이며, 이들 중 136명이 타인에 의하여 퇴소당하였고, 이 때문에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2024년 11월 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및 한국카리타스협회 입장문
“서울시의 탈시설 전수 조사 내용을 보면, 전체 약 1,200명의 탈시설 장애인 가운데 주거 확인이 가능한 이들은 겨우 700명 정도였고, 조사 참여자 487명 가운데 탈시설을 한 뒤 재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281명이고, 타인에 의하여 퇴소당한 이들이 136명이었으며, 무려 24명이 탈시설 후 4년 안에 목숨을 잃었다.”
- 2025년 3월 3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이자 한국카리타스협회 이사장인 조규만 주교 입장문
탈시설장애인 700명 중 24명 사망. 이 통계는 천주교가 주교 명의의 입장문에서까지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많은 언론이 받아쓰면서 기정사실화 됐다.
‘700명 중 24명 사망’이라는 통계의 실체를 추적했다. 이 통계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카르텔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보수정치 -> 보수언론 -> 천주교’로 이어지는 카르텔이다.
- 오세훈 시장이 만든 보고서, 그리고 권성동과 조선일보
이 통계를 가장 먼저 알린 곳은 조선일보다. 김경필 조선일보 기자는 지난해 10월 7일, ‘[단독] 서울 ‘탈시설’ 장애인 700명 중 24명 사망’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권성동 의원이 서울시와 권익위에 요구해서 받은 자료로 기사를 썼다는 뜻이다.
권성동 의원은 탈시설 반대에 앞장선 보수정치인 중 하나다. 권 의원은 2022년 9월 14일, 논평을 내고 “전장연이 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처벌밖에 없다”며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했다. 지난해 11월 28일에는 탈시설 반대 토론회를 열어 “내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친구고 사법연수원 동기다. 잘못된 탈시설은 내가 오 시장과 함께 바로잡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권 의원이 받은 자료의 제목은 ‘2023년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 퇴소장애인 자립실태 조사 보고서’다. 서울계약마당 대금지급정보에 따르면 서울시 복지실 장애인복지과는 2023년 8월, 넥스트퍼블릭 주식회사에 6,700만 원을 주고 해당 조사를 의뢰했다. 서울 시민의 혈세 6,700만 원이 투입된 보고서다.
문제는 해당 조사가 처음부터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겨냥한 조사였다는 것이다.
2022년 한 해,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벌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자 이준석 국민의힘 당시 대표가 별안간 ‘탈시설 때리기’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2022년 3월, 자신의 SNS에 혐오발언을 잇달아 게재하는가 하면 보수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탈시설에 제동을 걸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배턴은 오세훈 시장이 이어받았다. 2023년이 되자마자 ‘탈시설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 오 시장은 국내 장애인거주시설에 방문해 “(시설을 포함해) 선택지가 많으면 좋다”고 하는 등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었다. 이에 장애계는 “전수조사가 아니라 표적조사”라고 크게 반발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탈시설 전수조사 문항에서 시설 재입소를 유도하는 내용이 포착됐다.
“시설에 재입소를 원할 경우 이유는 무엇인가요?(중복선택 가능)”, “향후 시설 환경이 개선(1인실 사용, 특화서비스 제공 등)된다면 다시 이용할 의향이 있습니까?” 등의 문항에 장애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당시 서울시는 탈시설 찬반 양측의 의견을 수렴해 조사 문항을 꾸렸다고 했지만 사실상 반대 측의 의견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다.
문제의 보고서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서울시가 기획하고 권성동 의원실에 제출했다. 권성동 의원실이 조선일보에 제출하고 조선일보가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천주교는 보도 내용으로 주교 명의의 입장문을 썼다.
보수정치, 보수언론, 천주교로 이어지는 정보전달 과정에서 동일한 왜곡이 반복·강화되며 진실인 것처럼 굳어진 셈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보고서 내용을 살펴본다. 24명은 정말 탈시설 때문에 사망한 걸까.
- 전수조사 모집단 700명… 정체불명
보고서 내용을 보기 전에 짚고 가야 할 게 있다. 보고서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서울시 장애인복지과는 지난달 27일, ‘정보 부존재’라며 다음과 같이 통지했다.
“조사 당시 ‘개인정보 수집 안내 및 이용제공에 대한 동의서’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간 보유 이후 파기되었으며 또한 서울시에서 생산·보유하고 있는 문서가 아니므로 공개할 대상 정보가 존재하지 않음.”
이에 따라 보고서 내용 중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알 수 없다”고 표기했다.
보고서 4쪽에 따르면 조사대상자는 2009년부터 2022년에 시설에서 퇴소해 서울시에 거주하는 탈시설장애인 700명이다.
보통 ‘탈시설’이라고 하면 단순히 거주시설에서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원주택 등 주거를 마련하고, 활동지원서비스 등 일상생활 지원을 마련하고, 생계급여와 일자리 등 소득 수단을 마련한 다음에 지역사회로 나가는 걸 ‘탈시설’이라고 한다.
보고서만 봐서는 700명이 앞서 설명한 의미의 탈시설을 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거주시설에서 퇴소한 건지 알 수 없다.
- 잘못된 조사 ‘거절’한 건데 ‘배제’됐다니
천주교는 700명 중 “213명은 전수 조사에서 아예 배제되었”다고 호도한다.
보고서 5쪽에 따르면 조사제외자 213명 중 조사를 거절한 사람이 79명(본인 72명, 보호자 7명), 무응답한 사람이 61명이다. 총 140명이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조사 당시 장애계에서는 ‘조사 거부 운동’을 하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해당 조사 자체가 탈시설 반대를 전제로 하고 진행됐기 때문에 편협한 조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전출자는 7명, ‘기타’라고 표기된 조사제외자는 42명이다. ‘기타’는 병원입원, 시설입소, 거주불명, 대상자 중복 인원을 분류한 항목이다.
모집단인 700명이 정확한 의미의 ‘탈시설장애인’인지 알 수 없으므로 ‘기타’ 42명 또한 탈시설운동 혹은 정책으로 인해 병원입원, 거주불명 등의 상태에 놓였다고 할 수 없다.
- 탈시설 후 24명 사망? ‘선후 인과의 오류’
그리고 사망자 24명이 조사에서 제외됐다. 보고서 내 사망자 데이터는 “평균 사망시점 나이 56세, 평균 4년 지역 거주”뿐이다. 이 외에 사인, 거주 형태 등 어떤 데이터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천주교는 “탈시설 때문에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왜곡한다. 이 같은 오류는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 중 ‘선후 인과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후에 일어났으니 그로 인해 일어났다’는 잘못된 인과추론을 일컫는 말이다.
‘선후 인과의 오류’의 대표적 폐해는 혐오를 조장하고 정치적 선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니 강력범죄가 늘었다”는 문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사형제도 폐지 후에 강력범죄율이 늘어날 순 있으나 두 사건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탈시설 또한 그렇다. 탈시설 ‘후에’ 사망했다고 해서 탈시설 ‘때문에’ 사망했다고 결론짓는 건 오류다. 탈시설과 사망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천주교 주장에서 ‘선택적 통계 오류’와 ‘서사적 오류’도 발견할 수 있다. 사망자 수 24명만 강조해 사람들에게 ‘탈시설은 위험하다’는 감정적 설득을 시도하는 것이다.
위 자료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다.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최근 5년간 시설 입소장애인의 주요 사인에 대한 통계가 나와 있다. 이 자료로 천주교가 일삼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만들 수 있다.
“복지부의 최근 5년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장애인거주시설 때문에 무려 1,44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서울행정법원 “무연고 중증장애인 탈시설, 인권침해 아니다” 판결
거주 유형을 ‘재가’라고 응답한 사람이 281명인 것은 맞지만 돌봄이 가족에게 오롯이 맡겨져 있다는 건지, 가족과 한집에서 살되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이 대목은 장애인 가족에게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문제다. 장애인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가족의 돌봄을 가중하는 건 제대로 된 탈시설이 아니다. 그러나 보수정치와 조선일보, 천주교는 당리당략과 정치적 의도를 앞세우기 위해 장애인 가족의 두려움을 거침없이 건드린다.
“136명이 타인에 의해 퇴소당했다”는 데이터는 보고서 내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와 별개로, 법원은 무연고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이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지난해 11월 14일, 박대성 씨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장애인인권침해 기각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쉽게 설명하면, 박대성 씨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 거주장애인을 일방적으로 퇴소시켜 인권을 침해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는데 인권위가 기각했다. 이에 불복한 박 씨가 인권위의 기각 결정을 취소시켜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인권위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가 및 서울시가 추진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정책은 단순히 거주시설에서 장애인들을 퇴소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지원주택으로 장애인들의 거처를 옮겨 다른 형태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하고 그들의 자립 실현 및 지역사회로의 편입을 돕고자 하는 것”
“이런 정책을 따른 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퇴소 조치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지원주택에서 거주하는 중증 장애인들의 인권이 시설에서 거주하는 경우보다 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자신이나 보호자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퇴소를 강요받았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