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코로나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④
빚내서 가게 차리고 월세 내지만 결국 쫓겨나는 삶의 굴레, 임차상인

- 코로나 시대, 임차상인에게 집중되는 고통

지난 9월 국민일보 기사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시 내 3만 9천여 가게가 폐업했다. 굳이 기사 내용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주변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일상에서 그리고 SNS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관련 기사 : 코로나 이후 자영업 생존기간 6개월 단축됐다)

60대 중반에 접어든 A씨는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요식업 장사를 해온 임차상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기, 다행히 유흥업이나 PC방과 같이 영업이 금지되는 업종은 아니었고 오랜 기간 장사하여 단골손님이 있었기에, 아직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한 위기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위협이었다.

“구하라 단골집! 지키자 단골집!”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빈곤사회연대
“구하라 단골집! 지키자 단골집!”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빈곤사회연대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꽤 괜찮았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니까, 이게 급감하잖아요. 서서히 안되는 게 아니라 급감이에요. 여기에 우리 식구 셋이 매달려 있거든요. 우리 작은 놈하고 아내하고, 그럼 낼 거 다 내고 한 명당 150만 원 잡고 450은 남아야 돼요. 그런데 특히나 코로나 2.5단계 터지고 나서는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달마다 마이너스 한 200만 원씩 났어요.”

폐업의 도미노 현상, 정부는 임차상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착한 임대인’ 운동과 ‘새희망 지원금’을 실시했다. 미디어는 해당 대책을 엄청난 대책인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임차상인들의 삶을 회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임차상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당연 고정비용, 임대료다. 하지만 ‘착한 임대인’ 운동은 상인들의 생존을 임대인들의 선의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대책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에서 1,0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90% 이상이 ‘착한 임대인 운동은 효과 없다.’고 답했다. 실제 9월 기준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참여한 임대인은 1.4%에 불과했다. A씨 역시 임대인에게 어렵게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

“착한 임대인 그거 내가 얘기를 직접 했어요. 임대료를 깎아주면 50% 혜택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100만 원 깎아주면 50만 원 세금이 감면된다. 이런 거 좀 동참해달라고 설명을 누차 했지만, 뭐 안 돼요.”

A씨의 월 임대료는 400만 원이다.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임대료는 계속 나갔다. “자영업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는 대통령의 말이 기만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희망 지원금’과 같은 일회성 현금 지원 역시 당장 잠깐의 도움은 될지 모르지만, 임차상인들의 삶의 안정은 담보할 수 없다.

“재난지원금(새희망 지원금) 도움은 되죠. 그런데 저는 지금 한 푼도 만져보지 못 해봤어요. 150만 원 나오면 한 달 치도 안 되니까, 월세로 다 들어가야 돼요. 그거 뭐 (임대료의) 3분의 1밖에 안 되잖아요? 그런 고통도 모르면서…”

지난 3월 30일 대구에서 한 자영업자가 분신을 시도했다. 경찰 조사에서 600만 원의 임대료가 밀려 힘들다고 토로한 사실이 알려졌다. 영등포의 한 임차상인은 코로나 시기임에도 기존 보증금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월세 25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인상하는 재계약 내용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시기 다른 곳으로 이주해 장사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A씨 역시 삶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경기가 죽었던 게 살아나려면 1년 걸려요. 똑같아요. 예를 들어서 코로나가 10개월 터졌잖아요? 그럼 다시 원래대로 살아나려면 그게 또 10개월이에요. 임대료를 최소한으로다가 30프로만 깎아줘도 어떻게든 내가 버텨 보겠는데…”

코로나로 인한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두 가지 내용이 담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첫 번째는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료의 증감을 청구할 수 있는 ‘차임증감청구권’ 사유에 코로나를 추가한 것, 두 번째는 월세 체납으로 인한 퇴거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한 것이다. 그러나 ‘차임증감청구권’의 경우 ‘착한 임대인’ 운동과 다를 바 없었다. 법이라는 외피를 걸쳤을 뿐, 임대인이 동의해야 하는 사안이기에 임대인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퇴거유예기간을 늘린 것 또한 보증금을 까먹으며 퇴거기한을 늦추는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임대료에 대한 대책이 필요해요. 그리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좀 더 낫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지금은 기껏 해봐야 5년, 10년 하다가 포기해야 하고, 또 아무 이유 없이 재건축한다고 나가라 하면 나가야 되잖아요. 임대기간이 10년은 아니고 될 수 있으면 여유 있게 길어졌으면 좋겠어요.”

- 임차상인으로 40년, 쫓겨남의 역사

임차상인들의 ‘마음 편히 장사할 권리’는 코로나 이전에도 임대인의 이윤 아래 있었다. 말 한마디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임차상인들의 권리를 부차적으로 취급하며 만들어 온 기존의 시스템이 코로나 시대에 역진적인 고통 분담 시스템으로 나타나며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A씨가 상경해 처음 자리 잡았던 장소는 여의도였다.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 부모님의 장사를 지켜보고 도왔기에 장사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부닥치기 시작했다.

“처음에 여의도에서 시작했을 때, 초기비용으로 수리까지 해서 한 1억 들여서 들어갔는데 2년도 안 돼서 나왔어요. 그냥 까먹었어요, 한 1억5천에서 2억. 왜? 주인이 쓴다니까 나와야지 뭐. 시골에서 와서 서울이 이런 덴가 싶고, 너무 억울했어요. 장사는 자리 잡기가 힘든데, 장사 좀 되고 나니 나오라니까.”

“집에서, 가게에서, 거리에서 쫓겨나지 않을거야!”라는 펼침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진 빈곤사회연대
“집에서, 가게에서, 거리에서 쫓겨나지 않을거야!”라는 펼침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진 빈곤사회연대

80년대 당시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조차 없었기 때문에 임대인의 통보가 법 그 자체였다. 말 한마디에 쫓겨난 경험은 다음을 준비하는데 위축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은 단지 염려에 그치지 않는, 실존하는 위협이었다. 2002년 A씨는 여의도를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쯤, 임차상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이 담긴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임차상인을 쫓아내는 말 한마디는 다양한 방식으로 A씨를 계속 따라다녔다.

“이후에도 여의도 인근에서 장사를 했는데 남는 거 없이 고생만 했어요. 그러다가 2001년인가 2002년인가 동작동으로 가게를 옮기게 됐죠. 그때 그 가게가 원래 나랑 거래하던 사람 가게라서 싸게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게 또 한 5년인가 이제 자리 좀 잡고 될라 하는데, 재건축 뭐 이런 얘기가 돌았어요.”

개발 광풍이 불던 시기, A씨는 재건축에 의해 또다시 억울하게 쫓겨났다.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었지만 임차인의 권리는 여전히 최소한의 보장도 받지 못했고, 그마저도 개발사업 앞에선 휴짓조각에 불과했다.

- 여전히 임차인 보호 못 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계속되는 쫓겨남에도 살길은 장사밖에 없었기에, A씨는 다시 현재의 가게에서 2010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쫓겨남의 위협은 그의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2014년, 계약종료를 일 년 앞둔 시기, 임대인에게서 퇴거하라는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찼고 주변 시세가 너무 올라 다른 곳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년 내용증명을 받으며 버티던 중,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어 계약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법 개정 이전의 계약은 소급 적용되지 않았기에 A씨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임대인에게 매년 내용증명을 받았어요. 나가라고, 비워 달라고. 처음에는 2015년 되면 나가라, 그 당시에는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기 전이었어요. 매년 그렇게 지금까지 10여 통을 받았어요. 스트레스가 심하죠. 보통 사람들은 견디지도 못해요.”

A씨를 더욱 분노하게 했던 일은 계속되는 퇴거 요구를 견디다 못해 신규세입자를 구해 권리금을 회수하려 한 것을 임대인이 차단했던 일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등의 경우, 임차상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권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권리금 회수에 대해서도 건물주가 개입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위와 같은 예외규정을 이용해 권리금 회수를 차단하거나 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에 보면 우리(임차인)가 권리금을 회수할 권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임차인을 구했어요. 권리금 주고 들어올 사람, 그 사람하고 계약을 하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이 집은 3년 뒤에 재건축을 할 테니까 자신 있으며 들어오라.’ 이러는데, 계약할 사람은 황당하잖아요? 들어오면 수리도 해야 되고 벌써 몇천만 원 투자해야 되는데, 누가 2년 3년 하려고 들어오겠어요?”

그러던 중 엎친 데 덮친 격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쫓겨남의 역사 속에서도 미래를 희망할 수 있었던 모든 조건을 변화시켰다. 바이러스 종식의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A씨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UN 인권최고대표 미첼 바첼렛은 “이미 경제적으로 간신히 생존하고 있던 이들은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 채택된 조치에 의해 너무도 쉽게 궁지에 내 몰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이 누구에게 집중되고 있는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상인들의 영업은 제한하는 반면 건물주의 월세 수입은 왜 제한하지 않는가? 코로나로 인한 고통 분담은 서민들이 아니라 이윤을 독식하며 기존 빈곤과 불평등을 만들어내 온 자들이 져야 하는 책임이 아닌가? 현재와 같이 역진적 고통 분담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언제가 마주하게 될 바이러스가 종식된 세상에 약한 사람들이 설 공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 소개

정성철.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기소개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즐거운 날보단 슬프고 화나는 날이 더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활동이 꽤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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