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코로나19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③
자본의 욕망에 일터를 빼앗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수협은 지난 2012년부터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착수했다. 시장 강제 철거 과정에서 연로한 상인을 끌어내 내동댕이치고 가게 집기들을 바닥에 던지는 무수한 폭력이 반복됐다. 시장은 작년 8월에 완전히 허물어졌다. 이후 상인들은 육교 위에 텐트를 치고 농성장에서 생활하며 투쟁하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수협은 지난 2012년부터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착수했다. 시장 강제 철거 과정에서 연로한 상인을 끌어내 내동댕이치고 가게 집기들을 바닥에 던지는 무수한 폭력이 반복됐다. 시장은 작년 8월에 완전히 허물어졌다. 이후 상인들은 육교 위에 텐트를 치고 농성장에서 생활하며 투쟁하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예전에 재수해서 대학에 간 친구가 그랬다. 노량진역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짠 내가 확 풍기면 “아, 이제 공부해야 하는구나” 했다고. 이젠 노량진역에서 짠 내를 맡을 수 없다. 수협은 지난 2012년부터 현대화 사업에 착수했다. 시장 강제 철거 과정에서 연로한 상인을 끌어내 내동댕이치고 가게 집기들을 바닥에 던지는 무수한 폭력이 반복됐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작년 8월에 완전히 허물어졌다.

평균 연령 60~70대인 상인 80여 명은 노량진역 1, 2번 출구 앞에 생존을 위한 노점상을, 육교 위에는 농성장을 만들었다. 상인들은 장사와 투쟁을 함께 이어갔다. 그러나 채 6개월도 안 돼,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노점상과 농성장이 철거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투쟁도 투쟁이지만 생존이 문제다. 노점상에서 생존에 필요한 돈과 투쟁 기금을 마련하는데, 노점상이 철거되면 상인들에게는 생계 수단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상인들은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조심스럽게 노점상과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새벽에 천 명의 용역과 포크레인이 몰려와 노점상을 부순 건 올해 2월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강조되기 시작했을 때다. 동작구청은 2월 21일 새벽 3시, 사설 용역 400명, 경찰 400명, 구청 직원 100명을 동원해 상인들을 끌어내고 노점상을 부쉈다. 노점상이 있던 자리엔 화분이 놓였다. 화분에는 “이 화분은 도로 미관을 위해 동작구청에서 설치한 화분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동절기 강제 철거 금지 조항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조차 가난한 사람을 쫓아내려는 힘 앞에선 별 소용이 없었다.

시장 개설자이자 관리자인 서울시도, 운영자인 수협도, 관할 지자체인 동작구청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상인들은 코로나19까지 겹쳐 이중 삼중고를 겪으면서, 육교 위에 텐트를 치고 농성장을 마련했다. 줄지은 텐트 농성장을 지나 다리 끝으로 가면 황무지가 된 구시장이 내려다보인다. 상인들은 반 세기 동안 매일 먹고 자고 했던 터전을 바라보며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장 안에는 우산, 옷걸이, 약재, 화장지, 주전자 등 세간 살림이 있다. 농성장 필수품인 파카도 걸려 있다. 비닐로 만들어진 농성장은 쉽게 찢어졌고,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농성장 안에는 우산, 옷걸이, 약재, 화장지, 주전자 등 세간 살림이 있다. 농성장 필수품인 파카도 걸려 있다. 비닐로 만들어진 농성장은 쉽게 찢어졌고,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농성장에 있으면 노량진역 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덜커덩덜커덩 소리가 날 때면 농성장이 있는 육교까지 진동이 전해져 온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바람도 문제다. 비닐을 겹쳐 바람을 막는다고 막아 놨지만, 비닐이 추위까지 막아내긴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집회나 시위를 멈추고 농성장만 지킨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간다. 이런 상황에, 겨울이 오고 있다.

- “노량진역 화장실에서 씻으며 농성장 지키고 있다”

투쟁 중인 상인들은 반 세기가량을 장사하며 노량진이란 지역의 상권과 문화를 형성해온 사람들이다. A수산과 B수산 상인 모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했다. 다른 곳에선 30년 운영했다고 하면 ‘원조’ 소리를 듣지만 노량진에서 30년이면 거의 막내 뻘이다.

A수산 상인 ㄱ 씨가 일하던 가게는 원래 시어머니와 남편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남편 몸이 안 좋아지자 ㄱ 씨는 시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가게 일을 시작했다. 시어머니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후에는 여동생과 함께 A수산을 일궈왔다.

B수산 상인 ㄴ 씨는 당시 남자에게 많이 지어주던 이름을 갖고 있다. 여자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갖게 된 이름이다. ㄴ 씨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가게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지었다. 그곳에서 모시, 바지락, 꼬막 등을 팔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여성 상인들은 현재 조를 나눠 농성장에서 숙식하고 있다. 씻는 건 노량진역 화장실에서 한다.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울시나 수협은 끄떡도 안 한다. 코로나19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다. 농성장에서 확진자 안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후부터 활동을 일절 못 했으니까. 요 근래 좀 풀어져서 그나마 다행인데, 그래도 아직은 활동을 못 하고 있는 현실이 좀 그래요. 일단은 사람이 모이질 못하니까...” (A수산 상인)

“인원이 많으면 안 되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해야 해서 A조랑 B조를 나눠서 이렇게 있었어요. 한 조에는 한 스무 명 정도 있고. 텐트에서 자고, 식사도 여기서 하고. 간단하게 씻는 건 노량진역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그래도 노량진역 화장실이 가까워서 많이 힘든 건 없어요.” (B수산 상인)

“코로나 없을 때는 우리 모두 여기 24시간 살다시피 했지. A조, B조 나뉘어 있으니까 옛날처럼 우리가 잘 안 뭉쳐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있지만 워낙 단결이 잘 돼 있어서 그런 건 없어요.” (A수산 상인)

“근데 장사를 못하는 건 코로나나 아니나 똑같아. 동작구청이나 서울시나 수협이나 끄떡도 안 하는 것도 똑같고. 누구 하나 코로나 걸리면 안 돼서 그게 조심스럽지. 만약 한 사람이라도 여기서 코로나 걸리면 여기 완전 폐쇄되니까. 아직까지는 여기서 한 명도 코로나 안 걸려서 그게 얼마나 다행이야.” (B수산 상인)

농성장에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저 멀리 63빌딩과 LG트윈타워가 보인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농성장에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저 멀리 63빌딩과 LG트윈타워가 보인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 “사회적 거리두기 하라더니”… 용역 천 명 데려와 노점상 철거

상인들은 동작구청의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지난 2월을 기억하기도 어렵다.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농성장에 방문해 강제 철거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서로 보듬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이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며 “말해 뭐 해...”라고 말했다.

농성장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상인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조심하고 있었는데 공권력 천 명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가난한 사람에겐 거리 두기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때 코로나 바이러스라면서 정부에서도 그러고, TV에서도 그러고 난리 났었잖아요. 사람들 모이면 안 된다고 집회도 다 못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는 조심했는데, 자기네는 정작 몇백 명 용역 데리고 오고. 여기 광장, 도로까지 사람들이 몰려서 빈틈이 없었어요. 사람 빼곡하게 있었는데 확진자 나올까 봐 무서운 거야. 여기 상인들 다 어르신들이잖아. 다행히 확진자는 안 나왔지만...” (B수산 상인)

“그 일 있고 나서 우리가 그런 얘기 많이 했어.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하라고 난리를 치면서 정작 동작구청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사람들을 다 붙여 놨으니까. 경찰도 오고 동작구청이 데리고 온 용역들, 구청 직원도 다 왔잖아. 그때 정말... 낮도 아니고 새벽 3시에...” (A수산 상인)

- “투쟁하느라 강산 변해… 서울시는 이제라도 해결해야”

수협은 구시장의 50년 역사를 없애고 월세는 두 배 비싼데 면적은 두 배 좁은 신시장을 지어 놨다. 구시장 상인들은 협의 없이 현대화 사업을 밀어붙인 수협에 저항하며 구시장 땅과 신시장 사이에서 장사하기를 원하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아래 농안법)에 따르면, 서울시는 노량진수산시장의 개설자이자 관리자다. 하지만 시장이 수협 소유라며 이 문제에서 손 놓고 있다. 농안법 위반이자 직무유기다. 상인들은 서울시가 이제라도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개설자가 서울시예요. 개설자가 관리도 하고 감독도 해야 하는데 박원순 시장이 전혀 안 했어요. 우리가 면담 요청해도 만나주지 않았어요.” (B수산 상인)

“지금 만 6년째 투쟁 중이에요. 요즘은 강산이 5년이면 변한다는데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1년이 지났는데 정부도 그렇고 서울시도 그렇고 아무도 나서지 않아요. 이런 큰 도시에서 대규모로 투쟁하고 있는데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수협이 자본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거대한 권력인데 우리 상인들은 다 서민이고 너무 힘이 없으니까, 우리를 이렇게 방치하고 다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지. 견디기 힘들고 많이 분노하고 있어요.” (A수산 상인)

“구시장 일부를 존치해 달라고 주장했는데 시장이 없어졌지... 신시장은 죽어도 못 들어가. 안 들어가. 상인들이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B수산 상인)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그린 내가 일했던 가게 그림. 다양한 생선을 사려고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상인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까르르 웃었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그린 내가 일했던 가게 그림. 다양한 생선을 사려고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상인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까르르 웃었다. 사진 박김형준 작가

상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수십 년을 일한 가게, 지금은 다시 일하고 싶은 자신의 가게를 그렸다. 처음엔 너무 오랜만에 크레파스를 잡다보니 다들 쑥스러워했지만 이내 간판 색깔, 가게 풍경 등을 기억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상인이 줄지어 서 있는 손님을 그렸다. 다른 상인이 그 그림을 보더니 저 집에 손님 엄청 많다며 까르르 웃었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소망은 다른 게 아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가족들 먹여 살리는 것, 땅과 건물을 가진 사람에 의해 별안간 쫓겨나지 않는 것, 노동의 공간이자 생존의 공간인 일터를 지키는 것. 별다른 거 없지만 절실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상인들은 오늘도 육교 위에 있다.

필자 소개
하민지. 옥바라지선교센터 운영위원. 노량진수산시장에 연대하는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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