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코로나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⑥

쪽방의 모습. 사진 홈리스행동
쪽방의 모습. 사진 홈리스행동

- 코로나19 거점병원이 된 공공병원, 갈 곳 잃은 쪽방 주민들

한 평 남짓 작은 방들이 모여 11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TV와 계절에 따라 필요한 옷들, 작은 냉장고나 서랍장이라도 있으면 방다운 모습이 갖춰진다. 여기에 방 한구석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가스버너와 냄비를 비롯한 취사도구들을 두고 나면 비어 있는 좁은 공간에 몸을 눕힐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쪽방 주민은 어디 사느냐고 물을 때 ‘집’ 대신 ‘방’으로 자신의 거처를 표현한다. ‘집’이 어디냐고 묻지 않고 ‘방’이 어디냐고 묻는다. 대답 또한 그렇다. 이것은 집다운 집에 살고 있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주거환경을 비롯한 일상이 재난인 쪽방촌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부터 또 다른 재난을 맞았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 없이 쪽방 주민을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

“병원 옮겨야겠어.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코로나19 상황에서 쪽방촌 주민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병원을 이용하는 문제이다. 가난한 쪽방 주민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에 의존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올해 초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주민 안일훈(가명) 님은 병원을 옮겨야겠다며 치료비에 대해 하소연을 하셨다. 지난 2월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하자 정부는 공공의료기관들을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거점병원으로 지정했고 이 과정에서 입원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안일훈 님 또한 그 조치로 인해 서대문에 있는 한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가 부담스럽다고 한 치료비는 13만 원 정도. 수술 후 한 달에 두 번 정도를 4일간 입원하며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니 한 달이면 26만 원 정도의 병원비를 지출하게 된다. 치료를 위해 옮겼던 병원은 입원비와 식대부터 차이가 났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립의료원으로 다시 옮기고 싶어도 받아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녀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안 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말한 거’라고 하신다. 그냥 담아 놓기에는 답답하니 하소연으로 무거운 마음이라도 덜어 보고자 하셨던 것이다. 큰 병 치료하면서 이 정도의 금액은 누군가는 가볍게 낼 수 있는 금액일 수도 있지만 당시 의료급여 2급에 수입이 없던 안일훈 님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비 걱정에 다른 병이 생기는 듯했다.

- 만 원 한 장도 겨우 쓰는데 10만 원 가까운 병원비를…? “못 내요”

“열이 나니 받아 줄 수 없다고 해서 다시 왔어요. 다리에 염증이 생겨 세균 감염이 걱정돼서 응급실을 간 건데 치료를 안 해준다니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당뇨합병증에 의한 두 다리 절단 후, 후유증으로 치료받고 계시는 윤석영(가명) 님은 어느 날 응급실을 찾아야만 했다. 며칠 전부터 보통 때와 다르게 아파오던 절단 부위에 염증이 생겼고 미열까지 느껴졌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열이 난다는 것은 세균감염이 의심되는 상황. 더 나빠지기 전에 병원 치료가 필요했다. 그는 119를 타고 평소 진료받던 서울의료원으로 향했으나 병원은 ‘코로나19 거점병원’이 되어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인근의 다른 3차 의료기관을 수소문해 그곳으로 가야 했다.

윤석영 님은 병원에 도착한 후 코로나19 검사를 의무로 받아야 했다. 그런데 체온이 37.5도가 나오자 ‘진료를 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럴 거면 8만 원이나 되는 코로나19 검사는 왜 하라고 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응급 치료를 포기하고 밤새 살을 자르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내일 주치의 선생님 진료에 맞춰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염증 초기라는 결과에 안심할 수 있었지만 응급 상황에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었다.

“여기 사람 대부분이 병원비 때문이라도 국립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을 이용하는데 지금 같은 시기에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큰일이에요. 새로운 병원에 가면 자료가 없으니 검사를 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진료비가 얼마가 나올지 몰라 불안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하니 시간이 지체되면서 치료가 늦어지는 거예요. 아프면 큰일인 거예요.”

서울의료원에서는 1,500원이면 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른 3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게 되면 12만 4,000원의 의료비를 지출한다고 하신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만 원짜리 한 장 지출도 몇 번을 생각해야 하는데 십만 원이 넘는 진료비는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 되다 보니 아파도 진료비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게 된다고 하신다.

응급실을 갈 때면 의무인 코로나19 검사 비용을 수급자에게는 50% 지원해 주지만 그럼에도 8만 원이 넘는 검사 비용은 큰 부담이다. 또한 진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는 주치의가 코로나19로 자리를 비워 전공의에게 진료받아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주치의가 없어 정확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아 기존 처방을 유지한 채 돌아와야 하니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질병마저 가지고 있는데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큰일이죠. 지금 이렇게 의료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는 거에요.”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19에 집중하다 보니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던 병원들은 폐쇄된 듯하다. 윤석영 님은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염치없지만 가난한 이들이 병든 몸이라도 살피며 살아갈 수 있는 체계는 공공의료만이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은 공공의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흑백 처리된 뿌연 병원 병실 모습. 사진 언스플래시
흑백 처리된 뿌연 병원 병실 모습. 사진 언스플래시

- 쪽방에서 자가격리를 하라고요?

지난 9월 말경 한 주민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속에 주민들은 초조해했다. 이전에도 종종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문들이 돌며 쪽방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으나, 그때마다 ‘확진자가 나올 경우 방역과 함께 건물은 격리조치가 이뤄져 모를 수 없다’고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우리가 맞은 코로나19 감염 상황은 예상과는 달리 너무 조용하여 ‘과연 이것이 맞느냐’는 또 다른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확진자가 나오면 뉴스에서처럼 삼엄함 속에 긴박한 조치가 이뤄질 거로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해당 건물은 확진 받은 주민과 밀접접촉자가 없어 폐쇄되지 않았으며, 밀접접촉자가 없으니 그 건물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하라’는 권고 조치만 내려졌을 뿐이다. 방역 당국은 완화된 방역수칙으로 ‘밀접접촉자가 없다면 이러한 조치가 내려진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자가격리하라’는 지침이 과연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고 내린 조치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쪽방은 빈틈없이 다닥다닥 밀집되어있는 건물구조로 태생부터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다. 여기에 화장실과 샤워실, 취사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어 감염 위험을 높인다. 대부분의 쪽방은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간격에다 화장실이라도 가기 위해서는 방을 나와야 하니 전혀 자가격리를 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이런 환경 탓에 확진자가 나왔던 건물의 주민들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를 권고받았지만 방에만 머물 수 없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나와야 했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와야 했고,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니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방을 나와야 했다. 해당 건물의 주민이 나와서 다니는 모습을 보며 인근의 주민들은 불안해했지만 방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뭐라고 큰소리 낼 수도 없었다. 조사를 맡았던 담당 조사관들은 쪽방의 이러한 열악한 주거조건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을까?

정부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집에 머물라고 할수록 주민들은 두려워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 코로나19의 확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여기는 누구 한 사람 걸리면 다 죽어.”라는 말이 걱정과 두려움의 탄식 속에 묻어 나왔다.

위기 앞에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기를 겪으며 세상은 이 시기를 기준으로 달라질 거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별다른 변화 없이 여전히 소외된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새롭게 대처해야 할 순간에 매번 소외될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획일적 조치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맞춘 조치를 취하는 것, 즉 ‘가난한 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세계 최고라는 K방역이 지향해야 할 방향 아닐까.

필자 소개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사랑방 문턱이 닳게 하기 위해 열심히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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