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코로나19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①

 

지난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못 보는가 안 보는가 코로나 속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적힌 투명 대형 걸개 뒤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지난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17 빈곤철폐의 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못 보는가 안 보는가 코로나 속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적힌 투명 대형 걸개 뒤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코로나19 이후 사람들, 심지어 정부는 ‘바이러스에 맞선 내전’이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사용했다. 오늘이 바이러스에 맞선 내전이라면 내전을 맞이한 이 땅의 전사들은 모두 잘 싸우고 있는 것일까.

전사들의 상황은 모두 천차만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거리의 레스토랑과 가게들은 고사하고 있지만 인터넷 거래는 호황을 맞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누군가는 홈 오피스를 비롯한 새로운 인테리어와 더 넓은 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감염병 예방을 위해 학교가 폐쇄된 시간 동안 온라인 강의를 들을 곳이 없어 카페를 전전해야만 하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등록금-월세-카페비라는 삼중의 지출에 허덕였다.

코로나19 이후 일자리 감소는 불안정한 고용층에서 더 많이 일어났다. 올해 8월 취업자는 상용직에서 40만 명(2.9%) 늘었지만, 임시직은 58만 명(12%) 감소, 일용직은 18만 5천 명(13.7%) 감소했다. 20대 이하 실업급여 수급자가 지난해보다 25% 증가했고, 2분기 실직 41만 명 중 여성이 25만 명, 남성이 16만 명으로 연령으로는 젊은 층, 성별로는 여성이 더 많이 해고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책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2차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상인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선정 기준은 엉뚱하게도 지난해 매출이었고, 예술인이나 프리랜서 등에 대한 지원 절차는 소득하락 입증을 요구해 입증을 할 수 없거나 꺼리는 경우 (사업자와의 껄끄러운 관계, 귀찮은 요청이라는 태도, 성노동자와 같이 업종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 등) 지원을 포기하게 하였다. 그 결과인지 지난 7월에 비해 8월에 카드 대출이나 지불연장, 보험금 대출과 같은 소액 대출이 2조 원 증가했다. 필요만큼 자원이 나뉘지 않으니 각 개인이 빚을 지고 있다. 내전이라지만 생존을 위해 무기는 각자 공수하는 양상이다.

- 비대면이 외면한 삶의 자리

올여름은 선크림을 사지 않고 났다는 한 활동가의 말을 듣고 이번 여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졌다. 올해는 집회를 하기 힘들었다. 더운 날엔 땡볕에, 장마엔 빗속에, 겨울이면 추위와 함께 거리에서 구르는 삶이 일상인 우리였는데 올 한해는 기자회견 몇 번과 작은 집회 몇 번으로 밍숭맹숭하게 지나간 기분이다. 물론 그 중간에도 크고 작은 집회와 농성을 멈추지 않았지만 평소에 비한다면 ‘아주 순한 맛’ 정도였달까.

그렇다고 일상이 간소해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줌이나 구글밋이니 하는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했던 한편, ‘전대미문의 상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어나는 전대미문의 일들에 대응해야 했다. 감염 예방을 위한 조치라며 노숙인 지원시설에서 ‘노숙인 등’에 해당하는 쪽방, 고시원 주민들의 이용을 제한하는가 하면 요양병원이나 생활시설 등은 몇 개월째 문이 닫힌 채 외출, 면회가 제한되고 있다. 사회서비스가 중단된 장애인과 가족들은 생존의 고비를 줄타기하고, 자가격리에 돌입해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은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집회신고도 되지 않는데 강제집행은 계속되었고, 방역 지침으로 장사를 중단한 노점상의 마차마저 빼앗아가자 ‘동냥은커녕 쪽박마저 깨버린’ 구청에 대한 분함이 올랐다. 평소 집회신고를 내놓고 차량을 세워두고 선전전 하던 자리에서 집회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홀로 일인시위를 하는데 십오분에 한 번씩 차량에 대해 주차 딱지를 발행하더라는 한 철거민의 토로는 방역이 싸우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좋은 수단이 된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지난 9월, 코로나로 인해 장사 중단을 협의한 뒤 노점상들의 마차를 강제집달해 간 마포구청 앞에서 노점상들이 상복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지난 9월, 코로나로 인해 장사 중단을 협의한 뒤 노점상들의 마차를 강제집달해 간 마포구청 앞에서 노점상들이 상복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더욱 문제인 것은 이 전대미문의 상황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모여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희박해져 버리는 사람들에게 더욱 심각한 위협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거리에 서는 이유는 함께 소리치기 위함이었다. 함께 소리친다는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갈구하는 해방에 가장 가까운 현실이었다. 아직 해방을 만나지 못한 이들은 집회라는 파열구에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드러내고, 우리를 제외한 채 그럭저럭 흘러가는 세상에 균열을 바랐다. 집회를 할 수 없는 시절은 다 쓰지 못한 선크림 한 통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가 아니면 해방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잊히는 가혹한 시절이기도 했다.

-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을, 비대면 시대 모두에게 안녕을!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서울에서 집회는 전면 금지되고 기자회견은 9인까지 가능했다. 구청 직원들은 기자회견장을 감시하다가 잠시라도 10인이 되면 방역에 위반한다는 경고를 보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공공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방역 지침을 존중하는 것과 나의 생존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립하는 상황에 혼란을 느꼈다. 집회는 금지되는데 강제철거는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 철거 용역은 철거민에게 침을 뱉으며 ‘너도 코로나 줄까’ 협박했다. 생존의 최후 보루를 넘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최후 공간,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없는데, 이들이 주거를 요구하는 행동은 불법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 안전할 수 있는가.

 

지난 5월,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철거지역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한 용역들이 모이고 있다. “투쟁으로 투쟁으로 생존권을 쟁취하자. 밀어내고 쫓아내도 물러설 수 없다 절대!!”, “죽고 싶은 놈만 들어와라. 박살 내주마”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그 앞에는 포크레인 등 철거를 위한 중장비가 있다. 사진 전국철거민연합
지난 5월,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철거지역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한 용역들이 모이고 있다. “투쟁으로 투쟁으로 생존권을 쟁취하자. 밀어내고 쫓아내도 물러설 수 없다 절대!!”, “죽고 싶은 놈만 들어와라. 박살 내주마”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그 앞에는 포크레인 등 철거를 위한 중장비가 있다. 사진 전국철거민연합

 

그래서 우리는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방역’이 생존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마지막 자리마저 앗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다. 우리는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을 원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면, 아무리 부유한 국가라 할지라도 사회 방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년 10월 17일은 UN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다. 우리는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원조는 빈곤을 없앨 수 없고, 빈곤을 양산하는 세계와 이에 공조하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며 이날을 ‘빈곤 철폐의 날’로 명명하고 투쟁해왔다. 빈곤에 맞선 싸움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연대하는 것은 빈곤철폐의 중요한 단서다. 빈곤을 발생시키는 이 세계와 함께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시작하는 연속 인터뷰 ‘코로나19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에서 만날 수 있는 ‘싸우는 사람들’은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임차상인, 장애인, 청소노동자다. 특별히 이번 연재에서 글을 작성하는 사람들은 이들 주변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들이라 뜻깊다. 가장 가까이에서 고락을 함께해온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마땅한 화답이 있기를 바란다.

* 이번 기획은 ‘2020년 1017빈곤철폐의날 투쟁 조직위원회’와 함께합니다.

필자소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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