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 ‘깜짝’ 발표 이후 첫 토론회
1인실 최저 주거기준 약 4.2평 “너무 좁다”
서울시, 강제철거 개발은 안 된다는 지적에 “현실 어쩔 수 없어”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과 과제' 토론회 현장. 왼쪽부터 서창호 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조부활 대전쪽방상담소 소장,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김철기 국토교통부 공공택지개발 과장, 구범서 LH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재생사업처 부장, 명노준 서울시 주택건축본부 공공주택과장,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앉아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과 과제' 토론회 현장. 왼쪽부터 서창호 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조부활 대전쪽방상담소 소장,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김철기 국토교통부 공공택지개발 과장, 구범서 LH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재생사업처 부장, 명노준 서울시 주택건축본부 공공주택과장,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앉아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용산참사 11주기였던 지난 1월 20일, 영등포 쪽방촌 공공임대주택 사업이 발표됐다. 주택이 완공되기 전까지 쪽방 거주민을 이주 단지에 임시로 살게 하고, 완공되면 새 주택에 입주해 재정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증금 161만 원에 월세는 3만 2천 원으로 책정됐다.

그동안의 쪽방촌 주거 환경 개선 정책에 비하면 의미있는 발표였다. 과거 쪽방 리모델링 사업은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아 전체 쪽방을 수선할 수 없었고 그나마도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하는 데서 그쳤다. 민간이 주도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은 거주민을 강제로 퇴거시켜 철거민이 되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깜짝’ 발표된 공공주택 사업은 거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형태, 즉 원래 살던 곳에 살되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하는 형태로 발표됐다. 무료 급식과 진료 등 돌봄 서비스도 그대로 거주민과 함께 공공주택 지구 내에 재정착된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개발 사업은 쪽방촌 주민들을 존중하는 최초의 개발”이라며 “강제 철거되거나 쫓겨나는 개발이 아니라 포용하며 함께 잘사는 '따뜻한 개발'로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해 기대를 모았다.

공공주택 사업이 발표된 지 10개월이 지난 18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주최로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과 과제를 점검하는 토론회가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쪽방촌 공공 개발은 거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공익 중심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지만 서울시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공공 개발의 의미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나 영등포 공공주택 사업이 전국 10개 쪽방의 시범 케이스가 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서울시가 지난 18일에 공개한 공공주택 평면 배치도. 15㎡ 1인실은 '본인의 생계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거주자'를 위해 설계했다고 적혀 있다. 15㎡ 1인실은 침실과 욕실, 주방으로 구성돼 있지만 14㎡ 1인실은 주방 없이 침실과 욕실만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서울시가 지난 18일에 공개한 공공주택 평면 배치도. 15㎡ 1인실은 '본인의 생계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거주자'를 위해 설계했다고 적혀 있다. 15㎡ 1인실은 침실과 욕실, 주방으로 구성돼 있지만 14㎡ 1인실은 주방 없이 침실과 욕실만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 주방 없는 1인실… “또 다른 쪽방일 뿐”

토론회가 열리기 3시간 전, 서울시는 영등포 공공주택 평면 배치도를 발표했다. 1인실은 두 가지 형태다. 하나는 주방 없는 14㎡(약 4.2평)다. 이곳에 입주하는 사람은 공유주방을 써야 한다. 15㎡(약 4.5평)에는 주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1월에 사업을 발표하며 주거 면적이 16㎡(약 4.8평)는 될 거라고 말했다. 1인실의 두 가지 형태 모두 당초 발표한 면적보다는 적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특히 14㎡ 1인실에 주방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평면 배치도를 보면서 화가 났다. (주거기본법 상) 최소 면적 기준인 14㎡는 지키겠다는 건데, 여기엔 부엌이 없다. 공유주택의 개념을 반영했다는데 공유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지 물리적으로 강제되는 게 어떻게 공유주택인가. 주방을 왜 공유해야 하나. 이게 집인가. 이걸 가지고 혁신적 계획이라고 하는 건 창피한 것이다. 이러면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또한 “영구임대주택은 앞으로 평생 사는 집이라는 점에서 실제 수요를 바탕으로 면적을 다시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명노준 서울시 주택건축본부 공공주택 과장은 “평면 개발의 기본 원칙은 거주인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 기능, 신체 기능, 자기 효능감 같은 부분을 공간 설계에 반영했다.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부엌은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14㎡ 1인실에도 넣을 수 있다. 당연히 부엌은 어딘가에는 있다. 주신 의견은 반영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김철기 국토교통부 공공택지개발 과장 또한 “구체적인 설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서울시에서는 ‘이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안을 내놓은 것 같다. 모든 지구마다 개별 면담해서 그분들 의견 반영할 것이다. 확정된 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토론회 현장에서는 쪽방 당사자의 비판이 쇄도했다. 이들은 “최소 20㎡는 돼야 생활할 수 있다”, “쪽방은 사적 공간의 개념을 무시한 주거 형식이지만, 공공주택은 사적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 공용주방이면 쪽방이랑 다를 게 뭔가. 쪽방에서 쪽방으로 가는 거다. 실망스럽다. 14㎡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한번 살아봐라”, “14㎡ 같은 게 나오는 건 엉터리다. 제대로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왼쪽부터 이원호 책임연구원, 이동현 상임활동가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왼쪽부터 이원호 책임연구원, 이동현 상임활동가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 서울시 “공공주택 사업성↓, 민간사업 병행할 수밖에”

이날 토론회에서는 민간 주도의 개발로 쪽방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서울시 중구 양동지구를 예로 들며 “페이퍼 컴퍼니(실체가 없이 서류 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가 양동 정비지구의 건물 6개를 다 사고 거주민을 계속 내보내면서 막대한 개발 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서울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국 10대 쪽방 모두 공공주택 사업지구로 지정해 달라. 단, (시급성에 따라) 현재 개발로 내몰림 당하는 지역부터 지정했으면 좋겠다. 동자 4구역은 쪽방 거주민 다 쫓아내고 엄청나게 큰 주상복합 네 동이 지어졌다. 이런 개발은 더 이상 안 하겠다는 게 공공주택 사업의 특징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원호 책임연구원도 쪽방의 민간 개발을 우려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쪽방촌이 지하철역이나 기차역 주변 등 대중교통이 원활한 곳 주변에 밀집돼 있다 보니 민간 개발이나 상업화의 압박을 많이 받는다. (쪽방 거주민) 당사자 입장에선 ‘우리 지역도 빨리 (공공 개발을) 하지 않으면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닥쳐온다”고 강조했다.

이에 명노준 과장은 “쪽방촌 개선 사업을 공공이 다 하면 좋겠지만 녹록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항상 사업성이 문제다. 돈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 법이나 제도가 바뀌고 예산이 충분해서 공익사업을 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지역은 결국 민간사업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활동가가 지적한 내몰림 문제 방지를 위해서는 “(민간 정비 사업 시) 서울시의 역할은 쪽방 (주민을 강제로 내쫓지 않는) 대책을 의무화하거나 그걸 유도하기 위해 (민간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 정도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철기 과장과 명노준 과장이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왼쪽부터 김철기 과장과 명노준 과장이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 홈리스 등 주거 취약 계층 포함한 대책 마련돼야

보건복지부는 쪽방을 전국 10개소 ‘쪽방 상담소’가 운영하고 관리하는 곳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영구임대주택 입주도 쪽방 상담소에 등록된 거주민만 할 수 있다.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입주 대상자를 선정할 때 쪽방 주민이 아니라 ‘쪽방 등 주거 취약 계층’을 포함해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거주자나 홈리스도 공공주택 입주자로 선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현 활동가 또한 “영등포 (공공주택) 개발 지역 안에 노숙인 생활 시설이 있다. 정원이 79명 정도 되는데 이분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언급이 없다. 쪽방 주민보다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 전입 신고도 하고 주민으로 살고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도 (입주 대상자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기 과장은 “쪽방촌 사업 특성을 고려해서 입주자 자격을 개정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입주자 자격 개정이) 완료된다고 알고 있다. 이 지역에서 살고 계시는 분은 공공주택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우선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명노준 과장도 “쪽방 사업의 목표는 당연히 100% 재정착이다. 입주 대상자가 안 맞으면 법을 바꾸든 기준을 바꾸든 해서 맞추면 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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