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지원하는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 명칭에 ‘탈시설’ 뺀 복지부
시설 수용의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자립생활 정책 변질될 우려 있어
한자협·한자연 “중앙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 명문화하라” 한목소리

2일 오후 2시, 한자협과 한자연은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보건복지부에 중앙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 명문화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자들이 ‘장애인단체와 소통없는 장애인개발원장 사퇴하라!’, ‘자립생활센터와 논의없는 자립생활정책 필요없다! 장애인개발원을 개혁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2일 오후 2시, 한자협과 한자연은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보건복지부에 중앙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 명문화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자들이 ‘장애인단체와 소통없는 장애인개발원장 사퇴하라!’, ‘자립생활센터와 논의없는 자립생활정책 필요없다! 장애인개발원을 개혁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가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중앙 센터 명칭으로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발표하자, 장애계가 ‘탈시설’이라는 단어를 교묘히 뺀 복지부를 규탄하며 ‘중앙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라고 정확히 명문화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3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제22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지원에 대한 국가·지자체 책임을 명문화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발표했다. 그러면서 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전환 모델 개발 및 지자체 컨설팅 등 지원을 총괄하는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오는 7월 신규설치하고, 한국장애인개발원(아래 개발원)이 위탁운영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의 자립지원을 총괄하는 센터명에 ‘탈시설’이 빠진 것을 두고 정부가 탈시설 용어를 교묘히 기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30일에 국회에서 열린 ‘탈시설의 법적 근거’ 토론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탈시설은 지금까지 시설중심 정책으로 시민들을 정책적으로 차별해왔다는 반성의 의미가 담겨있다. 반성 없이 나아가기 어려우며 (탈시설 용어를 뺄 경우) 정책이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탈시설·재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탈시설 용어를 기피하는 정부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2일 오후 2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아래 한자연)는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보건복지부에 중앙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 명문화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정부는 제22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올해 안에 탈시설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마침내 올해 탈시설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를 운영하는 기관이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다. 탈시설을 원한다는 정부가 탈시설은 빼놓은 센터를 만들겠다고 한다”라며 “복지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아니다. 그런데 탈시설을 탈시설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주시설의 눈치를 보고 있다”라며 정부에 ‘탈시설’을 명문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최 회장은 “작년 12월 10일 탈시설지원법이 국회의원 68명의 공동발의로 발의되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의 힘이 중요하지만, 복지부가 반대하면 법안이 통과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내세운 탈시설을 공론화하고, 탈시설지원법이 제정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권달주 한자협 부회장은 2019년 오산 성심동원 인권학대 사건이 드러나자, 수원역에서 시설 폐쇄를 요구하며 잠시 도로교통을 막았다. 이로 인해 과도한 벌금이 부과되어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택해 구치소를 다녀왔다. 권 부회장은 “‘시설이 감옥 같다’고 표현하면, 누군가 ‘당신이 직접 감옥에 가봤냐’고 따지더라.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직접 가봤는데, 감옥에서는 (장애인 거주시설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권 부회장은 “이미 전국에는 250여 개의 IL(Independent Living)센터들이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4년 전 탈시설지원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을 뒤로하고 꽁무니 빼고 있다”라며 “여기 이룸센터를 운영하는 개발원은 연구개발에 진정한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고 있다. 학계를 비롯해 한국의 복지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제발 당사자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먼저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은 중구길벗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은 “한자연과 한자협이 몇 년 만에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 그만큼 자립생활이 위기에 있다. 우리 IL센터들이 지난 20년간 투쟁을 통해 일궈온 탈시설 자립생활의 성과는 어디로 가는가”라며 “개발원이 중앙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개발원을 비롯한 복지전문가들이 수십 년간 해온 시설 수용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 단언한다. 탈시설 하는 척 연구비만 떼먹고 수용시설도 일부 필요하니 유지하겠다고 평가할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황백남 한자연 상임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황백남 한자연 상임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제22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학계, 의료계에서 선정된 민간위원 8명 중 탈시설을 지원해본 경험이 있는 현장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정부가 IL센터를 배제한 채 탈시설 로드맵을 논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백남 한자연 상임대표는 “복지부가 지난 4년 동안 ‘탈시설’과 ‘지역사회’ 중 무슨 용어를 쓸지 논의만 하다가 이런 결과가 나온 거로 안다.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에서 IL운동의 당사자들이 빠져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에서 (탈시설한) 장애인이 활동지원이 없어서 죽는 반복적인 아픔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탈시설’ 용어를 반드시 명시하고, IL센터가 탈시설 전달체계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권달주 한자협 부회장이 ‘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 자유로운삶 시설밖으로’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고, 참여자들이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권달주 한자협 부회장이 ‘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 자유로운삶 시설밖으로’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고, 참여자들이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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