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HIV,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요구하다

[편집자 주]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장애인복지법상의 등록 장애인이 아님에도, 국립재활원에서 입원 거부를 당한 HIV감염인의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로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HIV감염인 및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는 한계로 남았다.

인권위의 판단은 HIV감염과 AIDS확진 그 자체를 장애로 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적 흐름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보수적이다. HIV감염인은 감염을 이유로 사회적 격리와 분리,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차별은 왜 ‘사회적 장애’로 인정될 수 없는가? 비마이너는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함께 HIV감염인이 의료를 비롯해 생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는 연속기고를 연재한다.

- HIV 감염인의 치료를 거부하는 병원

피해자는 약 10년 전에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이 된 이후에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HIV 감염과 항바이러스제 복용으로 인해 심장 부정맥이 생겼고, 현재 심장박동기를 부착하여 살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HIV 감염인임을 알리지 못한 채 수도권의 한 공장에서 근무해왔다.

피해자는 2020년 9월 19일 밤 9시경에 공장에서 일하던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였다. 직장 동료가 119 구급대를 불러서 피해자는 우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병원이 작아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여 119 구급대원 2명과 피해자 본인 그리고 동승한 피해자의 애인이 구급차 안에서 급히 다른 병원에 연락을 하였다.

빨간 구급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언스플래쉬
빨간 구급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언스플래쉬

수술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던 병원들이 HIV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코로나19로 인해 응급실 사용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하였다. 피해자는 전화로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갔어요. 꿰매주기라도 하면 안 되나요? 병상이라도 내줄 수 없나요?” 계속 호소하였지만, 연락된 병원들에서는 “처치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피해자가 HIV감염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피해자는 HIV감염인을 받아주는 공공병원에 연락을 하였으나, “코로나 사태로 감염병을 전담하고 있어 수술이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당일 밤 10시경에 소독과 진통제만 가능하다고 하여 분당 S병원을 방문하였다. 그 과정에서 분당 S병원 측은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한다고 하면서 소속 구급차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피해자가 너무 힘들어서 병상침대에 잠시 누워있겠다고 하여도 머리 다친 환자들만 누워있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병상침대도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피해자가 신문지 깔고 바닥에라도 눕겠다고 하여도 그것도 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렇게 병원 측과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병상침대를 하나 받아 간신히 몸을 누인 것이 새벽 2~3시경이었다. 손가락 절단 부위가 너무 아파 진통제 주사라도 놔달라고 하여도 제때 해주지 않다가 한참 후에야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피해자는 “봉합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묶어만이라도 달라”고 얘기하였지만, 병원 측은 전혀 듣지 않았다. 피해자는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긴 시간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날 아침인 2020년 9월 20일 오전 9시경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손문수 대표와 통화하였고, 손 대표는 분당 S병원 응급실 담당의에게 책임질 수 있느냐고 따지기도 하였다. 분당 S병원 측은 현재 응급수술 혹은 응급처치가 가능한 인력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해서 시간을 끌었고, 뒤늦게 서울 노원구에 있는 모 병원에 연락이 되어 그곳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응급조치 및 의료거부를 당한 피해자는 현재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굽힐 수 없어 사용불능상태이다. 잘린 손가락 마디를 들고서 20여 개 병원을 찾았지만 연달아 거절당하였고, 피해자는 사고 후 14시간이 지나서야 서울 노원구의 모 병원 수술실에 누울 수 있었다. 응급 처치 시간을 놓친 피해자는 결국 평생 손가락을 굽힐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일자리마저 잃었다.

- HIV감염인의 치료거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금지된 차별 행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 등록여부를 불문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적용을 받는 장애로 해석된다.

항바이러스약의 발달로 에이즈는 더 이상 죽는 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으로서 관리의 대상이 되어 있지만, 일단 HIV 감염이 된 후에는 감염인의 체내에서 끊임없이 면역능력이 저하되고 만성적인 염증이 지속되면서 심혈관합병증, 대사성 질환, 인지기능장애, 암성질환 등의 만성 중증질환의 발생 빈도가 높고, 내성이나 약물부작용의 발생도 높다.

이 사건 피해자는 HIV 감염인으로서 인체의 면역세포 중 CD4+ T 림프구가 서서히 파괴되는 ①신체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통상 10년 이상의 ②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면서 건강한 사람에게 잘 나타나지 않는 각종 감염성 질환이나 악성 종양 등 여러 합병증이 발생하는 상황에 놓여 ③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상태이다. 피해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상정하는 전형적인 장애인에 해당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HIV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의료인이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명백한 차별이다. HIV감염인이 공공시설에서 타인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의료기관에서의 HIV 전파예방을 위한 의료인의 실천수칙으로서 ‘보편적 감염 주의원칙(Universal Precaution)’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에이즈와 같은 감염성 질병이 있다고 해서 특별한 조치나 시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실천해야 하는 일상적인 감염예방 조치와 동일한 방법에 따르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4월 19일, 장애인과 HIV인권단체들이 HIV감염인에 대한 장애인 차별 인정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2019년 HIV감염인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로 인정받은 사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지난 4월 19일, 장애인과 HIV인권단체들이 HIV감염인에 대한 장애인 차별 인정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2019년 HIV감염인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로 인정받은 사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HIV감염인의 의료접근권을 보장하라

HIV감염인의 대부분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약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이기도 하다. HIV감염인에게 건강권이란 건강유지의 차원을 넘어선 생존권의 영역이다. 병원들의 치료거부행위는 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적극적인 조치가 요구된다. 국가는 HIV/AIDS 감염인의 치료를 방해하는 모든 장벽을 제거해야 하며, 의료 접근권 및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

HIV/AIDS 감염인들이 겪는 신체적 기능손상은 그 진행 과정이 예측 가능하고 변경 가능성이 없다. 이들은 장기간의 의학적 치료가 수반되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바,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조의 해석상 이들이 포함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장의 기능부전으로 인하여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을 지속해서 받아야 하거나 신장 기능의 영속적인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경우 신장장애인으로 등록하여 복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장애인복지법과 비교해 보더라도 HIV감염인들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보호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 판단이라 할 것이다.

- 권리를 쟁취하는 방법, HIV감염인을 조직하자

HIV감염은 일상적 신체접촉이 아니라 체액과 혈액에 의해 감염되고, 최근에 HIV를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가 개발되어 조기에 치료할 때에는 감염의 위험성이 현저히 낮아질 수 있어서 일상적인 접촉 또는 의료시술 과정에서 접촉만으로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 의학 발전으로 타인에 대한 감염 위험성을 ‘영(0)’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해도 HIV감염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 인식과 편견 때문에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규정과 같은 차별적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HIV감염 자체만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있다.

HIV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서 기인한 편견은 이들에 대한 차별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낙인-즉,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인식과 에이즈가 성병, 동성애, 성매매라는 용어들과 일치되어 사용됨에 따른, 에이즈 환자는 ‘더러운’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감염인에 대한 불이익과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일상생활의 신체접촉 또는 의료행위 중 에이즈 환자로부터 의료인/환자들에게 전파된 사례는 국내에 아직 없다.*) 지원 대책도 미흡한 실정이지만,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 이훈재, 요양병원 HIV 감염인(에이즈 환자 포함) 입원거부에 대한 검토의견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던 장애인이 2000년대 넘어서 인권의 주체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나서서 끈질기게 장애인권활동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낙인과 혐오의 대상이던 정신장애인도 최근 당사자들이 자조조직을 만들고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입원이 줄어들고 있고, 복지서비스 차별해소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HIV감염인들도 차별과 낙인을 걷어내고 차별 없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 이상 사회에서 숨지 말고 ‘나 감염인이야, 그게 뭐!’라고 하며 당당하게 당사자 운동에 나서야 한다. 권리는 쟁취하는 것이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_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국내 최초의 전업적 공익변호사단체로서 장애인·여성·이주민·난민·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다양한 법률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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