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HIV,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요구하다

[편집자 주]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장애인복지법상의 등록 장애인이 아님에도, 국립재활원에서 입원 거부를 당한 HIV감염인의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로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HIV감염인 및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는 한계로 남았다.

인권위의 판단은 HIV 감염과 AIDS 확진 그 자체를 장애로 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적 흐름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보수적이다. HIV감염인은 감염을 이유로 사회적 격리와 분리,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차별은 왜 ‘사회적 장애’로 인정될 수 없는가? 비마이너는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함께 HIV감염인이 의료를 비롯해 생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는 연속기고를 연재한다.

- 장애 개념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국가는 장애인을 왜 분류할까? 국가가 장애인을 분류하여 무엇인가 줄 것이 없다면, 사회적으로 장애인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굳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를 겪으면서 가족의 상호부조에 의한 장애인지원이 어려워지자 현대 복지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장애인복지제도라는 새로운 제도가 나타나게 되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장애를 분류하고 측정하는 이유는 자원 재분배를 위한 자격평가, 기회균등의 달성, 장애출현율과 같은 경향에 대한 파악 등이 있다. 장애를 측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목적은 장애정도를 측정하여 차별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급여제공을 위한 목적 외에 장애차별을 근절하기 위하여 장애차별금지의 대상이 되는 장애인을 정하는 목적의 측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가 장애인의 삶의 전반을 살펴서 국가정책의 중요한 자료로 삼기 위한 장애인의 실태조사와 장애인의 삶에 대한 경향 분석을 위한 측정 목적도 있다.

그런데 국가별로, 동일 국가에서도 시대별로, 측정 목적별로, 장애 개념과 이를 측정하는 방법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장애를 질병의 일종으로 바라보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1980년 이후 장애는 질병 유무, 질병 이름과는 상관없이 신체구조와 기능의 손상으로 정의되었다. 이후 사회적 기능의 제한으로 설명되었고, 조금 더 사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여 손상에 대해 우리사회가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함에 따라 나타나는 차별, 배제, 억압과 같은 현상을 장애로 정의하게 되었다.

지하철과 승강장의 단차로 전동휠체어 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사진 박승원
지하철과 승강장의 단차로 전동휠체어 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사진 박승원

예를 들어 어려서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다리 기능에 어려움이 생긴 사람의 경우 장애를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질병 이름으로 장애를 설명하여 ‘소아마비 증후군’이라고 장애를 명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이전까지 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고, 장애를 질병으로 보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 ‘장애를 앓고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둘째,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으로 장애를 설명하여 ‘지체장애’ 특히 ‘하지 지체장애’로 명명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서 사용하는 측정 방법으로 장애유무, 장애유형 및 장애정도를 의학적 기준인 신체 구조와 기능에 의해 평가하는 방법이다. 셋째, 사회적 기능으로 장애를 설명하면 ‘이동장애’로 명명할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인 사회적 기능 중 하나인 이동이 되지 않으면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용도 안 되고, 소득도 없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장 원초적인 사회적 기능에 따라 장애를 설명하는 것이다. 넷째, 사회정치적으로 설명하면, 하지 지체 기능의 손상에 대해, 이동의 어려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함에 따라 나타난 차별, 배제, 억압을 받는 사람으로 장애인을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장애 개념이 바뀌는 이유는 이에 따라 관련 정책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장애를 질병으로 보게 되면 장애는 치료되어야 한다. 즉,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우리 몸속에서 빨리 없애야 한다. 장애를 신체 구조와 기능 손상으로 보면 손상된 기능이 정상성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재활을 해야 한다. 즉, 다리 기능이 정상 기능에 가깝도록 물리치료를 하고 다리 운동을 열심히 하여야 한다. 장애를 사회적 기능의 어려움으로 보면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데, 이동의 어려움이 있으니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장애인주차장, 경사로, 엘리베이터, 장애인콜택시, 저상버스 등의 지원이 필요하게 된다. 또 장애를 사회정치적으로 보게 되면 이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바꿔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배제, 억압을 없애야 한다.

- ‘HIV감염 질병 자체’를 장애로 판정한다면?

대부분의 복지선진국에서는 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관점에서 시작해서,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으로 보다가, 현재는 사회적 기능의 어려움과 사회정치적 의미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복지법에서 신체 구조와 기능 손상에 따라 장애인을 정의하지만,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등 장애인복지서비스는 점점 더 사회적 기능을 측정하고 있다. 종합조사표에서 일상생활정도(ADL)와 수단적 일상생활정도(IADL)를 측정하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 예시로, 신체 구조와 기능 손상, 사회적 기능의 제한을 혼합하여 장애를 정의하고 측정한다.

이처럼 장애 개념이 변하다 보니,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를 특정 개념으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전문을 보면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 제1조를 보면, “장애인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과 동등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손상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사회정치적인 의미인 사회적 장벽에 의한 차별, 배제, 억압을 강조하면서도 장기간의 손상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손상의 원인이 되는 질병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결국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개념은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 ‘사회적 기능의 제한’, ‘사회적 장벽에 의한 차별, 배제, 억압’을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의한 장애 정의에 따를 경우 HIV감염인은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HIV감염증과 같은 질병으로 장애를 판정하는 것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개념에 맞지 않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자폐성장애라는 질병 자체를 하나의 장애 유형으로 보고, 정신장애도 질병 이름으로 장애를 정의하다보니, HIV감염 자체를 장애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치료·재활보다는 사회적 지원, 사회적 장벽 제거를 정책 목표로 하여야 하기 때문에 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왼쪽에 의사가, 오른쪽에는 팔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사람이 있다. 사진 픽사베이 
왼쪽에 의사가, 오른쪽에는 팔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사람이 있다. 사진 픽사베이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백반증, 투렛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등 각종 질환자들의 장애인정 요구에 따라 개별적으로 장애인정질환을 확대하고 있다. 또 15개 장애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에 적합하지 않은 질환도 다수 나옴에 따라 2021년 4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15개 장애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에도 장애인복지서비스 대상자로 인정하는 예외적 인정기준을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 즉 기존에는 장애정도만 심사하던 장애정도심사위원회의 기능을 더욱 확대하여 사례별로 장애여부도 판단하여 장애로 인정하는 절차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HIV감염증도 장애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개념 및 선진복지국가들의 추세를 볼 때, 이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 선진국, 질병 상관없이 ‘사회적 기능’에 어려움 있으면 ‘장애 인정’

복지선진국의 경우 에이즈 환자, 암 환자 등도 장애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복지선진국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개념을 위반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복지선진국도 HIV감염증 자체, 암 질환 자체를 장애로 보지는 않는다. 질병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질병에 의한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에 따라 사회적 기능의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사회적 장벽에 의해 차별, 배제, 억압을 받으면 장애로 판정한다. 즉 암환자라고 해서 바로 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암의 후유증으로 인해 고관절 부위 림프에 부종이 생겨 다리의 기능에 어려움이 있고, 이로 인해 이동의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차별받을 가능성이 높으면 장애로 판정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의한 장애 정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HIV감염인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장애인등록 제도를 유지할 경우 등록을 위한 장애 측정을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손상에 따라 얼마나 사회적 기능에 제한이 있는지를 측정하면 된다. 현재까지 많은 국가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일상생활정도(ADL)와 수단적 일상생활정도(IADL)를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장애인활동지원, 보조기구지원 등을 위해 종합조사표에서 이를 측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장애인등록 제도를 유지하고자 할 경우 장애인등록을 위한 측정 방법을 손상의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기능의 제한으로 측정하면 된다. 이럴 경우 현재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HIV감염인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장애인등록 제도를 폐지하고 장애인복지서비스, 소득보장서비스 등과 같은 서비스 유형별로 별도 기준을 만들고, 이때 기준으로 사회적 기능의 제한, 즉 일상생활정도(ADI)와 수단적 일상생활정도(IADL)를 사용하면 된다. 이 경우 손상에 대한 측정이 거의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HIV감염인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한 장애개념도 더 확대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장애는 보다 폭넓게 규정하고 각종 복지급여를 받지 않아도 차별금지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HIV감염인은 차별금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HIV감염에 대한 차별의식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다.

장애인 주차장에 장애인 표식이 있다. 사진 픽사베이 
장애인 주차장에 장애인 표식이 있다. 사진 픽사베이 

- HIV감염인의 장애 인정은 장애 개념을 바꾸는 일이 될 것

결론적으로 HIV감염인이 장애인으로 인정받는 방법은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서 바라보는 장애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HIV감염 질병 자체를 장애로 인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장애 개념과 정책과의 관계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장애를 신체 구조와 기능의 손상에 따라 발생한 사회적 기능의 제한 또는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차별, 배제, 억압과 같은 현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장애 자체의 개념을 바꾸고 이에 따라 장애인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노력은 누가 해야 할 것인가? 물론 모든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상호부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비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긴 인생의 주기에서 나도 장애인이 되어 상호부조를 받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범위를 넓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보험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이 장애인의 범위를 확대하는데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애인의 범위를 넓히자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극적 반대를 안 할 뿐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범위 확대 아젠다를 주장하고 형성할 사람들은 현재 장애인과 장애인의 범위에 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함께 아젠다를 형성하여야 한다. 그런데 기존 장애인들이 HIV감염인도 동일한 장애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일부는 전체 장애인복지 자원을 나누어 갖는 게 싫어서, 일부는 더 많은 편견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동질 집단이 되는 게 싫어서, HIV감염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장애 개념을 질병이나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의 제한으로 바꾸는 것이 더 필요해진다. 질환으로 볼 경우 편견이 작동할 수 있지만, 사회적 기능의 제한으로 볼 경우 편견이 작동할 가능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확장되고, 이에 따라 장애인복지의 전체적인 지원의 양을 함께 확대할 수 있어 기존 장애인들도 반대할 근거를 잃게 된다. 따라서 장애 개념을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의 제한 또는 사회적 장벽에 의한 차별, 배제, 억압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 장애인들과 HIV감염인 또는 장애인 범위 확대가 필요한 모든 사람과 함께 ‘장애인 범위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 필자 소개

이동석.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일반대학원 장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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