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 쪽방촌 민간개발, 주민 절반 이상 강제퇴거
투쟁 끝에 영구 임대주택 건설되지만
고작 4평… 최저 주거기준만 겨우 충족
까다로운 입주자격으로 주민 배제하기도

양동 쪽방촌 재개발 구역 11, 12지구 주민들이 서울시 중구청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양동 쪽방 주민회는 9일 오전 11시,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 쪽방 말고 집다운 집 공급하라”라고 촉구했다.

중구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아파트 쪽방 말고 집다운 임대주택 보장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중구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아파트 쪽방 말고 집다운 임대주택 보장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이동현 상임활동가가 ‘양동 쪽방 주민회’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동현 상임활동가가 ‘양동 쪽방 주민회’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투쟁 끝에 얻어낸 영구 임대주택

양동 쪽방촌 재개발 구역은 현재 민간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 중 11, 12지구는 1978년에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무려 40년간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원래 공원 부지였기 때문에 공원이 지어질 예정이었는데, 2017년에 건물을 짓도록 정비계획이 변경됐다. 이때부터 11, 12지구의 개발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러나 쪽방 주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 계획은 없었다.

11, 12지구 건물주들은 쪽방 주민에게 재개발 사실을 숨긴 채 ‘건물이 낡아서 리모델링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업종 변경을 하려고 한다’ 등 갖은 이유를 대며 주민을 사전 퇴거시켰다. 재개발 사실을 그대로 알리면 법에 따라 주거 이전비를 지급하고 임대주택도 공급해야 하는데, 이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11, 12지구 주민 4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쫓겨났다. 중구청은 2021년 1~3월 조사 결과 쪽방 주민이 230여 명이라고 계산했지만 활동가들은 더 적게 추정한다. 시행사의 횡포 또는 빚이나 명의도용 등 여러 이유로 전입신고를 못 하고 있다가 떠난 주민, 개발 과정 중 질병 등으로 사망한 주민 등을 고려하면 남은 주민은 더 적을 거라는 판단이다. 이 과정 중 서울 시민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서울시는 2019년 11, 12지구 주민을 동자동, 후암동 등 인근 쪽방과 고시원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쪽방 주민과 주거권 관련 시민사회 단체는 2019년 말부터 폭력적 민간개발과 책임을 방기하는 지방자치단체를 규탄하며 집회, 문화제, 기자회견 등을 열어 투쟁했다. 2020년 4월부터는 주민 자치 모임도 결성됐다. 그 결과, 지난 6월 11, 12지구의 개발계획이 변경됐다. 쪽방 주민에게 영구 임대주택 182호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중구청은 지난달 10일, 주민에게 개발계획을 공람했고 이달 10일까지 주민 의견을 받고 있다. 이에 양동 쪽방 주민회는 주민 109명이 서명한 의견서를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용명중 위원장이 ‘네 평 평수 너무 작다. 인간답게 살고싶다. - 위원장 용명중’이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용명중 위원장이 ‘네 평 평수 너무 작다. 인간답게 살고싶다. - 위원장 용명중’이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임대주택 준다더니 ‘아파트 쪽방’, 주민 모두 이주시킨다더니 ‘독립생활 가능한 사람’만?

주민들은 우선 임대주택의 면적이 너무 좁다고 규탄했다. 중구청이 발표한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호당 면적은 14㎡(약 4.2평)이다. 이는 주택법 최저 주거기준의 최소 면적기준에 해당한다. 양동 쪽방 주민회는 “이 면적에 주방, 화장실 등을 설치하는 건 욱여넣는 것에 가깝다. 분리된 방, 베란다 같은 구조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용명중 양동 쪽방 주민회 위원장은 “‘아파트 쪽방’으로 이사 가라는 건가. 우리는 쪽방보다 나은 집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집다운 집’을 원한다”고 성토했다.

까다로운 임대주택 입주 기준에서 배제되는 주민이 생기는 것도 문제다.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은 △개발계획 공람일(2021년 6월 25일) 3개월 전인 2021년 3월 24일까지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 △전입신고가 된 사람 △기초생활수급자 △독립생활이 가능하며 관리가 되는 사람 등이다.

한 주민이 ‘전입신고 안 했다고 배제하지 말라! 양동 쪽방 주민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주민이 ‘전입신고 안 했다고 배제하지 말라! 양동 쪽방 주민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우선 전입신고의 경우 현재 민간개발 시행사가 의도적으로 쪽방 주민이 전입신고를 못 하게 막고 있다. 한 주민은 “시행사 쪽에서 전입신고를 못 하게 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물어봤더니 주민등록법 위반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전입신고를 해서 쪽방 주민으로 인정될 경우 주거이전비를 지급해야 하는데 시행사가 이를 아끼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또한 주민 중에는 채무, 신용, 명의도용 등 빈곤에 따른 결과로 인해 전입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도 있다. 양동 쪽방 주민회는 “기간에 관계없이 쪽방에 실거주 중인 주민 모두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강제퇴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떠난 비자발적 퇴거자도 임대주택 입주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자격을 제한한 것은 가난이 ‘증명’된 사람에게만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독립생활이 가능하며 관리가 되는 사람’의 자격은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임대주택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나 생활시설 등에서 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양동 쪽방 주민회는 “건강, 고령, 장애 등의 이유로 독립 주거가 힘든 사람은 활동지원사, 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등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며 이 같은 기준이 사라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주민이 ‘주민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 동네를 만들겠다. 양동 쪽방 주민회’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주민이 ‘주민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 동네를 만들겠다. 양동 쪽방 주민회’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양동 쪽방 주민회는 마지막 요구사항으로 임대주택 건설 과정에서 주민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동 쪽방촌에서 장례위원으로 활동하는 한 주민은 “양동 정비사업은 개발이윤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우리 동네를 짓는 일이다. 우리 주민이 주도권을 갖고 살아갈 동네를 만드는 일이다. 개발 전 과정에서 쪽방 주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우리의 주거공간과 마을을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인데, 건설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동네에 머물면서 주민 활동에 개입한다. 주민 의견서에 서명받는데 ‘너희가 재개발을 아냐’며 주민을 밀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주민 활동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 우리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주거대책 마련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중구청 관계자가 기자회견 현장으로 와서 주민 의견서를 받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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