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투쟁 석 달째지만… 대답 없는 대선 후보들
두 번째 TV 토론회 앞두고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약속 요구
지하철 3호선 타기 투쟁 진행, 열차 20분 지연
장애계 “대선 후보 약속 받으면 중단할 것”

기다란 현수막에 ‘2022 대통령 후보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 쟁취.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촉구 캠페인’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기다란 현수막에 ‘2022 대통령 후보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 쟁취.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촉구 캠페인’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TV 토론회에서 장애인 권리에 관한 예산 보장을 약속하라’고 요구하며 지하철 3호선 타기 투쟁을 진행했다.

토론회는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11일 오후 8시부터 열렸다. 활동가 50여 명은 오후 5시부터 4호선 혜화역에 모여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3호선 충무로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2개조로 나눠 3호선 양방향으로 흩어졌다. 충무로역 근처 지하철역을 천천히 타고 내리며, 토론회에 참석하는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후보를 향해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 약속을 요구했다.

충무로역 환승 통로. 한 활동가가 ‘기재부는 돈장난 하지 말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하민지
충무로역 환승 통로. 한 활동가가 ‘기재부는 돈장난 하지 말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선전전 47일째… 묵묵부답 대선 후보들

장애계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4호선 혜화역 5-4칸 앞에서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선전전을 진행 중이다. 11일을 기준으로 47일째다. 또한 지난해 12월 3일부터는 수시로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천천히 타고 내리며 대선 후보들을 향해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와 대선 후보들 모두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다. 예산 편성 권한이 있는 기재부는 책임을 회피하며 “유관 부처와 조율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탁신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운영비 국비 지원이 기재부 때문에 유야무야 됐는데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4호선 혜화역에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피켓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 강혜민  
4호선 혜화역에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피켓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 강혜민  

주요 대선 후보들 중에서도 혜화역 선전전에 찾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장애계는 각 정당의 대선 후보 윤곽이 드러난 지난해 10월경부터 후보들을 직접 만나 ‘20대 대선 12대 장애인 정책 및 40개 세부정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에 따르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요구안을 참고해 일부 장애인 정책을 다듬어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장애계와 정책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두 후보도 혜화역 선전전이 시작된 이후 장애계와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현재까지 아무런 장애인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19일 장애인 정책 공약을 발표했으나 장애계로부터 “예산 없는 깡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애계는 윤 후보의 ‘개인예산제’ 공약을 특히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언뜻 보면 장애인이 사회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복지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민간 바우처 시장만 확대될 거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대선 후보들은 공약을 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있거나, 엉망인 공약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장애계는 “생방송 토론회 중 전 국민 앞에서 장애인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라”며 지하철 타기 투쟁을 진행했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회장이 발언하다 경찰 및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강경 진압과 시민의 폭언에 한숨을 쉬고 있다. 이 회장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사진이 있는 피켓을 목에 걸었다. 사진 하민지

- “대선 후보들, 장애인 권리예산 약속하면 지하철 투쟁 즉시 중단할 것”

“저희가 거의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시민이 그러더라고요. 장애인이 지하철역에서 리프트 타다가 왜 떨어져 죽냐고, 자살한 거 아니냐 하더라고요. 자살한 게 아닙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죽어라 투쟁해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문제입니다. 장애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함께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대통령 후보들이 약속하십시오.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후보님! 장애인과 만납시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장애인 활동가들은 오후 5시 35분경, 혜화역에서 오이도역 방향 열차에 승차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열차 네 칸을 미리 비워뒀다. 앞 두 칸은 경찰이 타고 뒤에 두 칸은 장애인 활동가들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탔다.

5시 50분경, 활동가들은 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충무로역에 하차했다. 경찰은 방패로 무장해 활동가들을 진압했고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비장애인 시민이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 “장애인 단체 시위 중입니다. 이쪽으로 지나가세요”라고 말했다. 안내방송에서는 “장애인 단체의 불법 시위로 인해 열차가 상당 시간 지연되고 있습니다”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경사로는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이용하기에는 너무 작고 부실하다. 공사 직원들이 발로 잡고 있어도 허술하게 흔들렸다. 사진 하민지
경사로는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이용하기에는 너무 작고 부실하다. 공사 직원들이 발로 잡고 있어도 허술하게 흔들렸다. 사진 하민지

그러나 열차는 시위보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어 지연됐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활동가들은 간격이 너무 넓어 휠체어 바퀴가 빠질 것 같아, 서울교통공사 직원에게 경사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열차와 승강장 사이를 덧대어 휠체어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하는 널빤지 같은 것이다.

공사 직원들이 널빤지를 가져오는 데 5분이 넘게 걸렸다. 경사로는 견고하지 않았다. 휠체어가 지나가는데 경사로가 계속 흔들려서 공사 직원들이 발로 잡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흔들려서 휠체어가 미끄러질 뻔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사이 15분 가량이 지체됐다.

이형숙 회장이 경사로 위에서 이동하지 않고 발언한 건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내방송에선 ‘장애인의 불법시위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계속 흘러 나왔고, 화가 난 시민들은 이 회장의 3분 발언을 견디지 못하고 무력으로 휠체어를 들어내려고 했다. “정신병자 새끼들 또 시작이네”, “장애인들 이거 언제까지 해? 지긋지긋하다”, “소수 장애인 때문에 무고한 시민이 피해 봐야 하나”라는 욕설과 함께. 

이날 활동가들은 충무로역 환승 통로에 모여 토론회를 시청했다. 이형숙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날 활동가들은 충무로역 환승 통로에 모여 토론회를 시청했다. 이형숙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계는 대선 후보들이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하면 지하철 타기 투쟁을 즉각 그만 두겠다는 입장이다. 오후 8시 45분을 기준으로, 장애인 활동가들은 충무로역 환승 통로에서 대선 후보 TV 토론회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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