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최옥란 기초생활수급자의 목소리 ② 꺽○·반○○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수급탈락
[편집자 주] 최옥란 열사 20주기에 맞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콘퍼런스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콘퍼런스에서는 2022년을 살아가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이 제도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증언했습니다. 비마이너는 이날 발표된 글을 당사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당사자들의 증언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안녕하세요. 홈리스야학 학생 꺽○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반○○입니다.
[꺽○]
부모님은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살기 위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삿짐센터에서 주로 일하면서 센터에서 먹고 잤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알고 지내는 집사님과 같은 보험에 다니는 아주머니의 소개로 선을 봤습니다. 상대 쪽 집에서는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부모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교회를 꾸준히 다녀서 점수를 높게 받았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같이 영화도 보고, 케이블카 타고 남산 타워도 올라가고, 1년 동안 집에 데려다주면서 데이트를 했습니다. 시집오면 잘해주겠다는 말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1999년, 38살에 옆에 있는 반○○님과 결혼했습니다. 신혼집은 종로구 홍지동 완성빌라 반지하에서 시작했습니다. 전세 900만 원으로 마련했습니다. 무지개 이삿짐센터에 다니면서 월급쟁이로 한 달에 백만 원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먹고살기에는 돈이 너무 적어서 현대 이삿짐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이유는 일한 만큼 받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이삿짐센터에서 부르는 날이 많을 때는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삿짐센터에서 점점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결국에는 한 달에 한 번 나가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일을 기다리면서 모아 놓은 돈을 다 썼고, 복지 지원이 뭐가 있는지도 몰라서 반○○님과 같이 무료급식소나 간식 주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수년을 지냈지만 빚은 없었습니다.
2011년, 종각역 지하에서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을 만났고, 그때부터 아랫마을에서 밥도 먹고,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반○○님이 공공근로를 다녔고, 2015년, 정신지체 2급 장애등록이 되면서 장애연금도 받았습니다. 장애등록은 되었지만, 생계를 위해 공공근로는 계속 다녔습니다. 저는 이 시기부터 허리 통증과 두통에 시달리면서 이삿짐 일을 나가지 못했고, 반○○님 공공근로를 따라다니면서 일을 도왔습니다. 공공근로는 2년 일하면 1년을 쉬어야 합니다. 쉬는 기간은 실업급여와 장애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5개월의 실업급여마저 끝나면 장애연금으로만 6개월 이상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2015년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첫 수급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반○○님과 장모님이 계속 연락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했고, 장모님과 통화해서 재산과 소득을 물어보면 수급신청이 더 쉽다고 공무원이 장모님과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장모님과 통화가 싫었던 반○○님이 그 자리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이후 공무원은 부양의무자인 어머니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받기 위해 통화를 했고, 어머니의 재산과 소득이 높아서 수급신청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다시 공공근로 일하기 전까지 6개월 이상을 30만 원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정말 막막했지만 방법은 없었습니다.
2017년 6월, 일을 쉬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다시 수급신청을 했지만, 부양의무자 재산과 소득 기준 때문에 두 번째 탈락했습니다. 2년 주기로 빈곤이 찾아왔습니다. 2019년도는 탈락할 것 같아 신청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다고 장모님이나 오빠들이 돈을 보내주지는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나 야학에서 대출을 받아 살았습니다.
작년 상반기 공공근로가 끝나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180일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6개월 이상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 결국, 수급신청을 하게 되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생계와 주거급여만 선정이 되었습니다.
한시름 놓긴 했지만,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기준에 가로막혔습니다. 허리와 두통, 안과, 팔이 아파서 엑스레이 찍어보고 싶은데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병원에 가지 못합니다. 매번 다음 급여를 받으면 가야지 다짐만 합니다.
[반○○]
엄마의 재산이나 소득은 우리 집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가끔 죽었나 살았나 안부 정도만 전화통화로 전하고 있습니다. 엄마하고 나하고 사이가 안 좋긴 해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