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최옥란 기초생활수급자의 목소리 ④ 박대추
치료 중 의료급여 비급여 항목의 부담
[편집자 주] 최옥란 열사 20주기에 맞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콘퍼런스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콘퍼런스에서는 2022년을 살아가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이 제도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증언했습니다. 비마이너는 이날 발표된 글을 당사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당사자들의 증언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하는 대추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설움과 차별을 메우기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로 차별받아온 학생들은 차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자립생활을 하며 야학에 다니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렇게 자립생활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수급비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됩니다. 중증 신체장애가 있는 학생은 비장애인보다 관절의 통증이나 근육의 경직이 심해 병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병원을 다녀도 의료급여를 적용받는다면 최소한의 병원비를 내고 진료받을 수 있어, 수급비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 학생회장인 장○○ 님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시설의 만행에 시설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탈시설운동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만났고, 현재는 지역사회에서 아주 자유롭게 자립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장○○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손이었습니다. 장○○ 학생의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은 붕대가 아닌 천으로 칭칭 감겨 있었습니다. 저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손가락은 왜 이렇게 감아 놓으셨냐고 질문했고, 장○○ 학생은 아파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장○○ 학생이 손가락을 이렇게 천으로 칭칭 감은 이유는 장애로 인해 손가락 근육 강직이 심해지면 손이 떨리는 증상과 함께 손가락과 손가락이 부딪히고, 그러면서 다른 손에 비해 짧은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들을 심하게 압박하면서 상처가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에 천을 감으면 좀 괜찮아지는 거냐는 물음에, 장○○ 학생은 안 감았을 때보다 훨씬 낫고 붕대보다는 천 재질이 손가락을 훨씬 더 잘 보호해 준다고 했습니다. 천을 감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상처가 심해지면 근육의 경직이 심해져서 힘들고, 사람들이 손에 관심을 쏟으면 손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아 손이 더 떨리고 손가락이 서로 부딪혀 상처 낼 확률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얼마 후 장○○ 학생의 손에 감겨 있던 천이 얇아진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천이 많이 홀쭉해진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냐?’라고 물었습니다.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을 함께 듣게 됐습니다.
좋은 소식은 장○○ 학생의 손가락 경직이 보톡스 주사를 맞아, 근육에 작용해 손 떨림 증상이 많이 좋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좋은 소식은 보톡스 주사가 비급여 항목으로,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보톡스 주사는 보통 1병에 20만 원인데, 장○○ 학생의 증상 완화를 위해서는 2병 정도 맞아야 하고 그러면 한 번에 40만 원을 지출해야 합니다.
장○○ 학생은 앞에서 말했듯이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중증장애인입니다. 생계급여와 장애연금 두 가지를 합쳐서 한 달에 90여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보톡스 주사를 맞게 되면 그달은 총수입의 절반으로만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보톡스 주사를 맞지 않게 된다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니 선택의 여지 없이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용을 위해서 보톡스를 맞는 것도 아니고 정말 불가피하게 보톡스를 맞아야 하는데, 보톡스 주사가 비급여가 되니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되는 상황입니다.
최근 손가락 경직 증상이 심해져 2병 맞던 주사를 3병을 맞아야 이전만큼의 효과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 번 보톡스를 맞는데 60여만 원의 돈이 들고, 주사를 맞은 달에는 30만 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합니다.
장○○ 학생이 앞으로 나이가 들고 몸이 더 안 좋아지면 보톡스 주사의 양이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한 달 수급비를 모두 보톡스 주사에 쓰는 날이 올 수도 있어서 걱정입니다.
의료급여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항목에서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인 경향성을 기준으로 비급여 항목을 선정하고 필요한 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진 않는 현 제도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기초생활보장법의 목적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고통 없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비로 인해 생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기준과 체계 개선이 시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