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최옥란 기초생활수급자의 목소리 ⑤ 임기헌
적은 수급비가 침해하는 권리
[편집자 주] 최옥란 열사 20주기에 맞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콘퍼런스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콘퍼런스에서는 2022년을 살아가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이 제도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증언했습니다. 비마이너는 이날 발표된 글을 당사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당사자들의 증언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이번 가계부조사를 하면서 만났던 주민은 부산에서 부산반빈곤센터와 함께 하고 있는 ‘내미는마음’이라는 홀로 사는 주민 모임의 회원이며, 5년 이상 공공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분들입니다.
처음에는 2개월 동안 빠짐없이 가계부 작성을 잘해주실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만의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가계부를 작성해주셨습니다.
시작할 때 가계부 작성 방법을 설명해 드리고, 중간에 한 번씩 찾아가서 점검하는 동안에 두 분의 꼼꼼하고 책임감 있는 가계부 작성에 놀랐습니다. 무엇이 도움이 되었길래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가계부 작성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가계부 작성을 통해서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수입, 지출 상황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과 관심사와 일상 모습들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평소에 주민들과 가깝게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것들이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 분은 반려견 2마리를 키우는데 사료와 간식 구입비로 지출을 많이 했습니다. 가족과 같은 반려견을 위한 지출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계부를 쓰면서 사료값보다는 간식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하루 생활을 돌아보며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좋았고, 혹시 빠진 게 없는지 애써 기억해야 하는 것조차도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명목으로 들어오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알게 됐다고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산 시내에 일정한 코스를 정해놓고 걷기를 하시는 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다리가 아파서 계속 걸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생활용품에 관심이 많으셔서 생활용품 구입에 지출을 많았습니다. 조금 과하게 지출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줄여가자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지만 쉽게 전달되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점검을 하면서 잘못 기입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 주민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어서 그냥 영화 한 편 정도 보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영화 보기, 전시회 관람 등 문화생활을 정말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가는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외에도 더 좋은 전시장과 미술관을 소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과 종일 함께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걸으면서 무거운 배낭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왜 물건을 들고 다니는지 주민들의 속마음과 성격을 알 수 있었으며, 자갈치 시장 근처에 반려견 사료와 간식을 싸게 파는 가게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가격이 가장 싼 곳이 이분들의 단골집이었습니다. 알뜰하게 살림을 사는 ‘지혜로운 습관’으로 이런 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생계비로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가계부 아래쪽에 한두 줄 짧게 적혀있었던 글 속에 이분들이 평소에 느끼는 감정과 걱정하는 것 그리고 삶에 어떤 변화를 바라는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매일매일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한 줄의 문장을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반려견 2마리와 함께 실제로는 ‘3인 가구’인 주민의 외롭지 않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현재는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누리는 분이 넉넉한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생계비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딱히 대출받을 수도 없고 쉽게 돈을 빌릴 수도 없는 여건에 계신 분들이기에 생계비 현실화는 더욱 절실합니다. 매달 적자 또는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 애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7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생계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점심식사는 5~6천원 정도로 해결해야 하고, 술을 먹더라도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밖에서 마시지 않고 집에서 마셔야한다’는 말씀에 생계비 상향 조정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눈이 좋지 않아서 좋은 안경을 맞춰야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과 귀가 들리지 않아서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국가에서 지원받는 것은 품질이 떨어져서 추가로 돈을 주고 맞추고 싶은데 가격이 비싸서 큰 부담이라고 했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주민은 사료, 간식, 미용, 동물병원비 등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힘들어했습니다.
이분들의 한숨과 걱정스러움을 걷어내야만 한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될 것입니다. 이것은 생계비를 현실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가계부 작성 활동을 통해서 수입, 지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의 처해있는 삶의 현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필자 소개_임기헌 부산반빈곤센터 운영위원/반상근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