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홈리스 추모제, 12일부터 열흘간 열려
삶과 죽음 어디서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있다
‘차별’ 아닌 ‘권리’ 기반한 홈리스 지원체계 요구

12일 오후 서울역 광장 남쪽 계단 위로 432송이의 붉은 장미꽃이 깔린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보인다. 꽃 한 송이마다 ‘오늘 당신과 만난 서울역 홈리스·무연고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 모를 이의 죽음은 ‘성명불상’으로 남아 있다. 사진 복건우
12일 오후 서울역 광장 남쪽 계단 위로 432송이의 붉은 장미꽃이 깔린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보인다. 꽃 한 송이마다 ‘오늘 당신과 만난 서울역 홈리스·무연고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 모를 이의 죽음은 ‘성명불상’으로 남아 있다. 사진 복건우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서울역 광장에는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홈리스는 적절한 주거 없이 쪽방에서, 고시원에서, 거리에서, 시설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은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는 홈리스의 하루와 정확히 닮아 있다.

찬 바람에 바깥 기온이 영하 2도를 밑돌던 12일 오후, 서울역 광장 남쪽 계단에는 카펫 위로 432송이의 붉은 장미꽃이 깔린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만들어졌다. 올해에만 432명의 홈리스가 집이 아닌 ‘비적정 거처’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아파도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하고, 볼일이 있어도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새벽이 되면 차가운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자야 한다. 가난에 내몰리고, 거리로 쫓겨난 홈리스의 존재는 ‘무연사’ ‘고독사’ 같은 죽음과 함께 세상에서 지워진다.

집 없이 스러져간 홈리스를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추모제는 올해로 22년째를 맞았다. ‘2022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은 동짓날을 열흘 앞둔 이날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리스 인권과 복지를 촘촘히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12일부터 22일까지 열흘을 ‘홈리스 추모주간’으로 선포하고 추모팀, 주거팀, 인권팀, 여성팀을 꾸려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홈리스 당사자들이 홈리스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붉은 카펫에는 장미꽃과 홈리스·무연고 사망자의 명패가 보인다. 사진 복건우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홈리스 당사자들이 홈리스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붉은 카펫에는 장미꽃과 홈리스·무연고 사망자의 명패가 보인다. 사진 복건우

- 보이지 않는 삶, 누구도 찾지 않는 죽음

홈리스의 죽음을 들여다보면 무연고사가 많다. 이들 상당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가족 관계가 단절된 채 거리와 시설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정부는 제대로 된 무연고사 통계조차 없다. 2014년부터 국회에서 무연고 사망자 관련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보건복지부가 이를 취합해 제공하는 것이 전부다. 추모제기획단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비적정 거처에서 사망한 홈리스는 432명이다. 이는 추모제기획단이 작년에 집계한 395명보다 37명 늘어난 수치다.

어떤 홈리스의 죽음은 부고조차 전해지지 않는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시신 처리 후 지체없이 공고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가족과 지인에게 이들의 사망 소식을 알리고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

홈리스가 존엄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영장례는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공영장례 제도가 없는 지역에서는 ‘무빈소 직장(直葬)’으로 장례가 진행되기도 한다. 이는 중앙정부 차원의 공영장례 제도가 부재한 현실에서 나타나는 ‘애도의 지역 격차’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사망한 장소와 관계없이 누구나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부는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이들의 애도 받을 권리와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애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인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속히 지정하라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홈리스가 주로 살아가는 쪽방촌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도 문제다. 이들은 1년 넘게 답보 상태인 공공개발이 다시 추진될 날을 기다리며 폭염과 한파, 폭우 등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방자치단체, 지방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력해 쪽방 주민을 내쫓지 않는 ‘선이주 선순환’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2020년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2021년 2월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동자동 쪽방촌에 해당 계획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토부와 서울시는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한없이 미루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2월 지구 지정을 완료하고, 올해까지 토지 및 건물 소유주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에는 공공주택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 동자동 쪽방 주민인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는 “국토부와 서울시가 건물주들의 반대를 면피 삼아 사업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쪽방 주민들은 지금도 여름이면 화장실 정화조가 역류해 벽에서 똥물이 새어 나오고, 겨울이면 얼어 터진 방 안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토로했다.

당초 공공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던 쪽방촌 주민들은 건물주의 ‘사전 퇴거’ 조치로 최후의 주거 전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양동(남대문로5가동), 창신동 등 민간개발이 진행 중인 쪽방촌 건물주들은 개발이 착수되기 전 주민들을 모두 쪽방에서 내보냈다. 이는 임대주택 공급, 주거 이전비 지급 같은 보상 책임을 지지 않고 개발에서 추가 이윤을 챙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서울시와 자치구는 공공개발 문제를 사인(私人) 간의 계약 문제로 간주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속히 공급해달라. 집 없이 살다 죽어간 이들의 유언을 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홈리스 당사자인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사진 왼쪽)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홈리스 당사자인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사진 왼쪽)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선별되고 박탈당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그렇게 거리로 내쫓긴 홈리스의 삶은 어떨까. 이들은 자유롭게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도, 공공기관에 출입할 수도 없다. 올해 1월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역 2번 출구 인근에 ‘엘리베이터 내‧외부에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 바랍니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숙인 혐오를 조장하는 해당 게시물이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에는 홈리스 당사자인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노숙인 건강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려 했으나, 별다른 이유 없이 출입을 저지당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출입 절차에 따라 방문 신청서와 신분증을 모두 제출했지만, 행색을 이유로 출입증 발급을 거부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즈마리 회장은 “거리 홈리스는 지금도 철도와 지하철역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과 마주하거나, 행색이 비루하다는 이유로 공공장소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다. 홈리스 정책은 차별이 아닌 권리에 기반한 정책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료급여 자격 조건을 완화하고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홈리스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원하는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2012년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신설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급여 신청 자격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의료급여를 신청하려면 ‘노숙인’에 해당하는 기간이 3개월 이상 유지되어야 하고,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되어야 한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자활시설 입소자, 노숙인종합지원센터장과 주 1회 이상 주기적으로 상담하는 거리 노숙인이 그 대상이다.

수급권자가 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에서 정하는 의료기관에서만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다. 올해 2월 기준 전국의 노숙인 진료시설은 291곳으로, 보건소를 제외한 병‧의원은 60여 곳에 불과하다. 3월 복지부는 코로나19 ‘주의’ 단계 발령 시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한다는 고시를 제정했지만, 이는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차별적 조치라는 게 반빈곤운동단체들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홈리스에게 건강은 일상의 위기”라며 “정부와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우며 복지를 강조하지만 정작 홈리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는 의료급여 자격 조건을 완화하고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해 돌봄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성 홈리스를 고려한 지원체계와 성별 평가체계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복건우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성 홈리스를 고려한 지원체계와 성별 평가체계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복건우

- 여성 홈리스 지원체계 미비… 시설 입소 중심 대책뿐 

홈리스 중에는 그 존재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여성 홈리스다.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1만 4,404명) 가운데 여성은 23.2%(3,344명)로 5명 중 1명꼴이다. 그런데 거리에서 여성 홈리스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여성 홈리스는 주로 찜질방, PC방처럼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곳에서 지내는데, 이들이 거리에 머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홈리스에 진입하는 경로와 그에 따른 경험은 남성과 차이가 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거리에서 노숙하게 된 계기로 남성은 실직(45.9%), 사업 실패(13.5%), 이혼 및 가족해체(11.0%)를 택했지만, 여성은 실직(21.3%), 질병 및 장애(17.0%), 가정폭력(15.2%) 순이었다. 여성 홈리스는 장애 등록 비율(45.0%)과 정신 질환 비율(42.1%)이 모두 남성 홈리스(각각 19.2%, 15.8%)에 비해 높았다.

그럼에도 여성 홈리스를 위한 지원체계는 미비하며, 그마저도 시설 입소가 주를 이루는 게 현실이다. 2017년 기준 전국의 여성 홈리스 자활·재활시설은 서울 7곳, 인천 2곳, 부산·대구·광주·경북 각각 1곳이다. 이들이 한두 달 정도 머물 수 있는 일시보호시설의 경우, 남성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서울역‧영등포역 등 6개소인 반면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단 1개소뿐이다.

최 작가는 “여성 홈리스에게 생리대 같은 보건위생물품을 지원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정부는 이들을 위한 포괄적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성별 특성을 반영한 홈리스 지원체계와 성별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최 작가는 여성 홈리스에게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살아내면서 언니들이 갖게 된 힘과 지혜를 배우고 싶다. 언니들과 더 만나고 싶다. 우리가 계속 찾아갈 테니, 언니들도 우리를 찾아와달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2022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동짓날을 열흘 앞둔 12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리스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2022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동짓날을 열흘 앞둔 12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리스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 열흘간 추모주간 진행, 홈리스 당사자 이야기 듣는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추모제기획단은 오는 14일부터 추모팀, 주거팀, 인권팀, 여성팀으로 나눠 홈리스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한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 14일 ‘동자동 보이는 라디오’를 시작으로 15일에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촉구대회’, 19일에는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가 열린다.

20일에는 ‘창신동 쪽방 실태조사 보고회’,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위한 공개 좌담회’, ‘홈리스의 자리에서 본 빈곤과 차별 금지 집담회’가 진행된다. 21일에는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된다. 동짓날인 22일 서울역 광장에는 열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2022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추모제기획단은 “현재 반빈곤 정책에는 홈리스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홈리스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비로소 이들의 존엄한 삶이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2 홈리스 추모주간’ 주요 일정표.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제공
‘2022 홈리스 추모주간’ 주요 일정표.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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