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특집 ③
《 정신건강복지법 특집 》
- ㄱ 씨의 격리·강박 사례1)
일주일 전부터 ㄱ씨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정신의학에서 이른바 ‘환청’이라 부르는 증상이었다.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자신을 비난하자 ㄱ 씨는 점점 불안해졌고, 집에서 계속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ㄱ 씨는 70대 노모와 둘이 거주하고 있었고, 처음에는 어머니가 ㄱ 씨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면서 조금씩 안정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생업이 있는 어머니는 낮에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으며, 불안해하는 ㄱ 씨를 어머니 혼자서 돌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수일 뒤, 일을 다녀온 어머니는 ㄱ 씨가 온 집안을 어지럽히고 구석에서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을 발견하였고, 결국 ㄱ 씨를 데리고 정신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ㄱ 씨는 조현병이 급성 악화됐다는 소견을 듣고 폐쇄병동에 입원 조치 되었다. ㄱ 씨 인생의 다섯 번째 폐쇄병동 입원이었다.
입원 이후, 낯선 환경에 홀로 남겨진 ㄱ 씨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계속 불안해하고 때로 불안감에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간호사들이 혈압을 재기 위해 다가가자, 그는 공포 속에서 의료진을 밀치며 혈압 측정을 거부했다. 주변 환자들 또한 반복해서 ㄱ 씨로 인한 병실 환경 훼손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당직 정신과 의사는 ㄱ 씨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높고, “질병과 관련하여 지나친 자극”을 줄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격리 조치를 지시하였다. 몇 명의 보호사와 간호사들이 ㄱ 씨를 격리실로 이끌었다.
격리실에 이끌려간 ㄱ 씨는 계속해서 불안감을 토로했다. 다행히 입원 수속부터 그를 담당하였던 간호사가 ㄱ 씨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면 ㄱ 씨는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담당 간호사는 ㄱ 씨 이외에도 12명의 환자를 더 돌보아야 했고, ㄱ 씨 곁에서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겨지자 ㄱ 씨의 머릿속을 울리는 비난의 목소리는 다시 커졌고, 불안을 이기지 못한 그는 격리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의료진의 간헐적 중재에도 ㄱ 씨가 두 시간째 문을 두드리자, 간호진으로부터 ㄱ 씨에 대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두 시간째 문을 두드린 ㄱ 씨의 손날에는 피가 맺힐 정도로 상처가 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담당 정신과 의사는 ㄱ 씨의 안정을 위해 (이른바 ‘코끼리 주사’라 불리는) 아티반(Ativan) 2mg과 할돌(Haldol) 2.5mg을 주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ㄱ 씨는 간호진이 들고 온 주삿바늘을 보고 더욱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ㄱ 씨는 더욱 불안정한 모습으로 주사를 거부하며 의료진과 옥신각신하였고, 의료진이 든 주사 키트를 밀치기도 했다. 결국 담당 의사는 ㄱ 씨가 “신체적 제한 외의 방법으로 (자·타해) 위험을 회피”할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ㄱ 씨에게 강박 후 주사제 투약을 지시했다. 보호사들과 간호진이 ㄱ 씨의 팔다리를 묶는 동안 ㄱ 씨의 불안은 더욱 높아졌고, ㄱ 씨의 몸부림으로 일부 보호사들이 다치기도 하였다. 결국 강박이 이루어졌고, 강박된 상태로 아티반과 할돌이 주사된 이후 ㄱ 씨는 이내 잠들었다.
- ‘어쩔 수 없는 격리·강박’이라는 잘못된 믿음
격리·강박은 개인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약함은 물론, 강압적으로 신체를 제압당하는 당사자에게 중대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기기에 위기 상황을 통제하는 최후 수단으로 남겨져야만 한다. 따라서 강압적 조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행 ‘정신건강복지법’과 보건복지부·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발간한 ‘격리 및 강박 지침’에서는 격리·강박이 위험을 방지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 예외적으로 시행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75조 제2호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은 치료 또는 보호의 목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입원 등을 한 사람을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제한을 하는 경우에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뚜렷하게 높고 신체적 제한 외의 방법으로 그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뚜렷하게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제1항에 따른 신체적 제한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대한신경정신의학회 ‘격리 및 강박 지침’2)
- 격리·강박의 시행 조건 및 상황
① 자살 또는 자해의 위험이 높음
② 폭력성이 높아 다른 사람을 해할 위험이 높음
③ 정신적 및 신체적으로 환자 스스로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할 우려가 높음
④ 기물파손 등 병동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음
⑤ 질병과 관련하여 지나친 자극을 줄여 자·타해 위험성을 감소시킬 필요가 높음
⑥ 환자가 스스로 충동을 조절할 수 없다고 느껴 격리를 요구하는 경우
⑦ 환자가 스스로 충동을 조절할 수 없다고 느껴 강박을 요구하는 경우
단, 이러한 모든 경우도 임박한 위험이 예측된 상황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그 위험을 예방하고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에 격리·강박을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병원에서 신체적 제한 외에는 위기에 개입할 수 있는 “다른 방법” 자체가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앞선 ㄱ 씨의 사례 또한 마찬가지이다. 손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격리실 문을 두드리는 ㄱ 씨에 대한 지원이나 개입이 필요했던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ㄱ 씨의 ‘자‧타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의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강박 외에는 없었고, 결국 ㄱ 씨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강박이라는 극단적 신체의 제한을 겪게 된다.
이처럼 법률과 지침이 “다른 방법으로는 위험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격리·강박을 시행하도록 엄격히 명시하고 있더라도, “다른 방법” 자체가 확보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이러한 규정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오직 하나의 위기 대응 수단, 즉 강압만을 선택지로 놓고 격리·강박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정신장애 당사자에게는 정신과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 ㄱ 씨가 겪을 수 있었던 대안적 위기 개입 시나리오들
그러나 대안적 방법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앞선 ㄱ 씨의 정신과적 위기 상황에서 격리·강박 이외에 어떠한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하고는 한다. 환청으로 극도로 불안이 상승하여 자기 손에 심한 상처를 낼 정도로 문을 두드리는 그를 ‘보호’할만한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ㄱ 씨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에만 시선을 국한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섣부른 결론일 수 있다. 격리·강박의 정당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맥락’을 들여다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ㄱ 씨의 지난 일주일간의 순간을 돌아보면, 격리와 강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먼저, 낯선 목소리가 시작되어 불안을 느끼던 일주일 전의 ㄱ 씨로부터 시작해 보자. 정신과적 위기가 막 시작되고 있던 그에게, 믿을만한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은 위기 악화를 막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유일한 돌봄 주체였던 어머니가 ㄱ 씨의 곁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ㄱ 씨의 정신과적 위기는 점점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일주일 전 그의 곁에서 친숙한 누군가가 지속해서 지지를 보내주었다면 어땠을까? 정신장애 동료지원가와 정신장애인 자조모임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면, 혹은 정신건강요원이 충분한 시간 동안 ㄱ 씨의 곁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위기 상황이 조금 더 악화하여 집중적 돌봄이 필요했던 시점에, ㄱ 씨에게 폐쇄병동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 이외의 여러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다른 결론에 이르렀을지 모른다. 평소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 친숙한 동료들이 활동하는 당사자 쉼터가 있었다면 낯선 폐쇄병동에 갇히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아가 ㄱ 씨가 언젠가 자신에게 정신과적 위기가 찾아올 때 어떠한 돌봄을 받을 것인지 가족·전문가와 상의하여 미리 작성해 놓은 계획, 즉 ‘사전정신의료의향서’가 있었다면, 위기 대처 과정에서 ㄱ 씨는 더욱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더욱 집중적인 돌봄과 약물 조정이 필요하여 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그 역할에 맞게 위기에 처한 당사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지지적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돌봄인력이 존재해야 한다. 앞선 사례에서 담당 간호사가 ㄱ 씨의 곁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지지해줄 수 있었다면, ㄱ 씨의 위기는 자‧타해 위험의 발생과 같은 응급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혹은 폐쇄병동에 갇힌 그를 지원하기 위해 절차조력인과 같은 별도의 인력이 지원되었더라면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간호사 1명이 13명의 정신과 환자까지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3) 절차보조인과 같은 별도의 지원 서비스 또한 부재한 현재의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정신과적 위기에 놓인 당사자를 충분히 지원할 인력은 확보되기 어렵다.
-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처럼 강압적 개입이 불가피해 보이는 정신과적 응급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 당사자를 지원하고 질병의 악화를 예방할 수 있는 수많은 개입의 기회들이 있었다. 지역사회에서의 지원과 돌봄, 인권적 위기 대응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로 당사자의 위기는 점점 심화하여 응급 상황으로 변모한다. 응급 상황 이전의 수많은 위기를 적절히 지원하지 않은 채, 위기가 이미 응급으로 치달은 마지막 순간에 당사자의 자·타해 위험을 근거로 강압적 조치를 행하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쩔 수 없는” 강압적 조치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러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 ‘원인의 원인’을 해결하고 개선하는 데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
1) 본문에 소개된 ㄱ 씨의 사례는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격리·강박 상황으로 몇몇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사례들을 조합하여 재구성한 가상 사례임을 밝힌다.
2) 보건복지부·대한신경정신의학회, 격리 및 강박 지침, 2019.3.
3)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제11조 제2항 별표 4 ‘정신의료기관 종사자의 수 및 자격기준’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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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이 올라와있는 환우 분들의 강박을 하기전 충분한 쉼터의 역활을 경험해보시면서
경험담 올려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