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기자회견 열고 서울시 ‘표적수사’ 비판
지도점검표에서 시위 횟수 및 비율 따로 조사
“조사원이 권리중심일자리, 유엔권리협약도 몰라”
서울시 일제조사 중단 요구… 23일 지하철 탄다
서울시가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 횟수와 비율을 조사하는 등 ‘탈시설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2일 아침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청량리 방면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행태를 규탄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7일부터 시청역 승강장에서 서울시의 ‘탈시설 표적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전장연은 “서울시가 조사를 멈추지 않으면 내일(23일) 1호선과 2호선을 중심으로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한다”고 예고했다.
-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시위 몇 번 참여했나’ 집중 조사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2020년 7월 전장연 주도로 서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 사업은 그동안 ‘노동할 수 없는(disabled) 몸’으로 여겨져 온 최중증장애인과 탈시설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이다. 장애인 기본권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경기, 전남, 전북, 춘천 등 전국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다 지난 2일,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는 7일부터 나흘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현장 실사를 진행한다며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 소속 14개 단체에 최근 3년간 자료를 닷새 내로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전권협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지원하는 전국 조직으로, 서울시는 전권협의 업무를 탈시설 관련 사업으로 보고 이번 조사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탈시설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최근 서울시는 전장연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탈시설장애인 전수조사, 활동지원 서울시 추가 수급자 조사,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현장 실사 등을 일제히 진행하고 나섰다. 최근 몇 달 동안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되는 발언을 하고 장애인거주시설을 방문하는 등 탈시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점을 고려하면, 탈시설 추진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려는 모양새다.
비마이너 취재 결과, 서울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도점검표 직무 유형에서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 횟수와 비율을 따로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미화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 장애인일자리팀 주무관은 22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장애인 자립을 도모하고 일자리 참여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인데, 연구용역 결과를 보니 캠페인 활동에 직무가 치중되어 있었다”며 “권익옹호, 문화예술 등을 모두 포함해 현장에서 캠페인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다만 시위에 대해서는 서울시의 불편함을 내비쳤다. 백 주무관은 “캠페인에는 시위도 포함된다”면서도 “시민분들의 불편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관련 민원도 접수되고 있고 (시위 참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그 과정에서) 강제성은 없는지 이런 부분을 좀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부적절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각종 활동을 통해 중증장애인이 권리보장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나서 공공의 가치인 ‘장애인의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또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권리이면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그 자체로 권익옹호 활동이 된다.
그럼에도 유독 시위 참여만 문제 삼는 데에는 해당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장연을 위축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정규 전권협 정책국장은 “서울시가 매년 제출하는 것의 3배나 되는 자료를 요구하면서 조사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조사에 나선 서울시 공무원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조은소리 전권협 사무국장은 “(조사원들이) ‘5분 교육 받고 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뭐냐’고 말하는 등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더라”며 “지난해 점검 당시 우수사례로 뽑혔던 기관이 이번 조사에서는 문제가 있는 기관이라고 지적을 받았는데, 이러한 모순은 현장에 혼란만 가져다준다”고 했다.
김순화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조사원으로 나온 장애인자립정책팀 공무원은 조사 내내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 횟수를 점검표에 기재했다”며 “서울시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변화시키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평가지표를 만들어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장연 내일 오후 1·2호선 지하철 시위 예고
현재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은 매년 공모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해마다 서울시가 사업에 참여할 장애인단체를 공개 모집을 통해 선정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장애인 노동자 입장에선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선정에서 탈락하면 해당 기관에 고용된 장애인 노동자도 자동으로 해고되기 때문이다.
또 최중증장애인 당사자에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 제공이 아니다. 활동지원서비스가 부족했던 장애인은 근로지원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돼 기존에 받지 못한 낮시간 서비스를 채울 수 있으며, 일자리 참여를 통해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다.
이에 전권협은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위탁기관을 공모방식이 아닌 평가 방식으로 바꾸라”고 서울시에 요구해왔다. 별도의 평가지표를 통해 해당 사업이 원래 취지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평가하되, 인권침해·회계부정이 없다면 위탁기관의 사업 안정성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러한 전권협의 요구를 수용해 2021년 서울시복지재단의 연구용역을 통해 실태조사를 한 뒤, 지난해 전권협과 세 차례 논의를 거쳐 평가지표를 개발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부터 시범 적용하기로 했으나, 올해 1월 담당자가 바뀌면서 관련 논의는 중단됐다.
백미화 주무관은 비마이너에 “평가지표 논의가 작년 하반기에 멈춰있는 것으로 안다. 아직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다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우정규 정책국장은 “이번 지도점검은 모든 직무에서 시위 횟수와 비율을 살펴보는 등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서울시 말대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정확하게 집행하기 위해서는 앞서 개발한 평가지표를 통한 권리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전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를 촉구하며 시청 인근 도로에서 'DISABILITY PRIDE PARADE(장애인의 존엄한 행진)'를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표적수사 중단,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중증장애인 일자리 마련, 공모방식이 아닌 평가방식으로 제도 변화 등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한편 장애인 활동지원 서울시 추가 지원 수급자 3,475명을 대상으로 수급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는 서울시의 현장 실사에 대해서도 전장연은 ‘표적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활동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한편 수급자 자격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어 실시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앞선 발언들을 고려하면 서울시의 활동지원 추가 지원 대상자도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비마이너에 “서울시가 표적수사를 멈추지 않는다면 내일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장연은 23일 오후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을 선언하고 서울시청을 지나가는 1호선과 2호선을 중심으로 지하철행동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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