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역~서울시청 2시간 동안 4km가량 행진
육교 위 현수막 펼치려던 활동가들 경찰 연행
석방 요구 오체투지, 세상을 멈춰 세운 장애인
[영상]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오체투지 현장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장애인 활동가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장애인 활동가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불구의 몸’과 땅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20일 오후 5시, 서울 삼각지역에서 장애인 권리 보장을 외치며 행진을 시작한 장애인들은 숙대입구역을 지나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에 멈춰 선 행진단은 순식간에 오체투지단으로 모습을 바꿨다. 잿빛 구름의 궂은 날씨에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었다. 30분간 엎드린 채 상체를 일으키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지난 3월 23일부터 이동권 예산, 그중에서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만이라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해달라며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장애인의 존재를 외면하는 정치권력을 향해 전장연은 외쳤다. “우리의 요구는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예산을 보장하십시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행진 도중 길을 막아선 경찰에 항의하며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행진 도중 길을 막아선 경찰에 항의하며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바닥에 깔린 피켓 위로 두 손바닥이 펼쳐진다. 두꺼운 천을 뒤집어쓴 무릎과 흰색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발바닥이 꼿꼿해진다. 서늘한 바람을 막기 위해 피켓 하나를 허리 위에 덧댄다. 무릎 근처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목장갑을 끼고, 숨을 고른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기침 소리가 갈라진다. “멈춰, 멈춰.” 50m 남짓한 길을 기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0분. 장애인 30여 명은 서울광장 앞 횡단보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목을 축였다. 잿빛 하늘에 어스름이 깔리자 도로에는 텅 빈 휠체어 수십 대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동료들이 팔다리를 주무르니 장애인들의 눈이 스르르 풀렸다.

“그전까지 활동지원서비스가 있었나요, 탈시설이 있었나요. 우리는 한강대교를 온몸으로 기어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이뤄냈습니다.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노숙 농성을 하면서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일궈냈습니다. 누구도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차별과 억압을 깨고 장애인의 권리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간사)

장장 4km를 나아갔다. 삼각지역에서 서울역으로 휠체어를 굴렸고, 서울시청에 다다르자 온몸을 내리던졌다. 머리와 팔다리를 아스팔트 도로에 바짝 붙인 장애인들은 22년째 보장되지 않는 한 줌의 ‘권리’를 외쳤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고. 이 처절한 거리의 싸움은 장애인이 마주한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는 싸움이다.

오체투지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강혜민
오체투지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강혜민
한 활동가가 오체투지 도중 힘들어 잠시 얼굴을 파묻고 쉬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 활동가가 오체투지 도중 힘들어 잠시 얼굴을 파묻고 쉬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 활동가들 

행진에 앞서 전장연을 비롯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오후 3시 삼각지역 부근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장애인 권리에 연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울산, 경남, 서울 등지에서 모인 예술가, 활동가, 국회의원들은 정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최진기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어서 가장 먼저 숨진 지역이 바로 경상남도다. 왜 장애인들의 불편은 계속해서 유예되어야 하는가”라며 “어제 도를 상대로 투쟁 선포대회를 열었다. 다들 우리를 불쌍한 존재로 여기지만, 장애인의 외침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그들이 바로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 곳곳에서, 연대 단체에서, 정당에서 많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기념하는 43번째 ‘장애인의 날’을 당당히 거부하고 22번째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았습니다. 지금도 장애인의 권리는 후퇴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목소리는 허공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정치와 권력이 (장애인을) 무참히 배제하고 차별해 온 22년 동안 우리는 외치고 싸웠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겠습니다. 어둠을 헤치는 열차를 타고 나아가겠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윤석열 정부는 2024년도 장애인권리예산을 확보하라!”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47번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177명의 삭발 투쟁, 328번의 출근길 선전전(4월 20일 기준). 그럼에도 세상은 장애인의 권리를 외면했다. 장애인의 현실도 좀체 바뀌지 않았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지하철 철로와 한강 다리를 기었고,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했고, 시설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 똥물을 뒤집어쓰며 싸웠다. 우리는 시혜와 동정을 구걸하지도 않고 이 싸움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복건우
숭례문을 지나는 사람들. 행진 대오가 뒤에까지 늘어서 있다. 사진 강혜민
숭례문을 지나는 사람들. 행진 대오가 뒤에까지 늘어서 있다. 사진 강혜민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 강혜민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 강혜민

행진에 나선 지 30분 만에 장애인들은 숙대입구역 사거리를 멈춰 세웠다. 귀를 찌르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행진단의 함성 소리가 날카롭게 충돌했다. 3분 늦은 사람이 수십 년을 갇혀 산 사람들을 향해 오토바이를 몰고 돌진했다. “빨리 가야 한다고, 빨리!” 멈춰 선 자동차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더니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저분들 지나가셔야죠.” “옆으로 돌아가시면 되잖아요.”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비장애인만 시민의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장애인만 타는 시민권 열차에 장애인도 이제는 탑승시켜 주십시오. (…) 우리는 모두 똑같이 나이 드는 사람들 / 우리는 모두 똑같이 열차 타는 사람들 / 열차여 기다리오 사람이 여기 있소 / 차가운 승강장 앞에서 장애인 권리를 외치고 있소 (…) 평범하게 열차를 타고 싶습니다.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노래 ‘열차 타는 사람들’ 중)

노들야학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들이 함께 ‘열차 타는 사람들’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노들야학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들이 함께 ‘열차 타는 사람들’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활동가 두 명 연행, 장애인들은 석방 요구 오체투지 

6시 14분께 서울역 앞 육교 ‘서울로7017’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행진단 상공에 대형 현수막을 펼치려던 활동가들을 경찰 40여 명이 강경하게 막아섰다. “나오라고! 나오라고! 얘기하잖아!” “야 이 개XX야!” 경찰들이 활동가 서너 명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주저앉은 활동가들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체(현행범 체포)해, 현체해.” 공무집행방해를 이유로 현행범 체포 지시가 떨어졌다. 15분 뒤 현장에 도착한 활동가 측 변호인 3명이 책임자를 찾았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강하게 반발했다. “불법성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셔야 하고, 책임자 나오셔서 경과 설명해주세요. 근거 없는 과도한 행위, 모두 다 증거로 남습니다. 무슨 근거로 사람을 끌어갑니까.” “공무집행 중”이라는 경찰들은 활동가 두 명을 경찰서로 연행했다.

서울로7017에서 대형 현수막을 내리려다가 경찰들에게 현수막을 빼앗기고 폭력적으로 진압 당하는 활동가들. 이 현장에서 두 명이 연행됐다. 이들 뒤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복건우
서울로7017에서 대형 현수막을 내리려다가 경찰들에게 현수막을 빼앗기고 폭력적으로 진압 당하는 활동가들. 이 현장에서 두 명이 연행됐다. 이들 뒤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복건우
신고된 경로대로 행진하고 있음에도 장애인 활동가들을 방패로 막아서는 경찰의 뒷모습. 사진 강혜민

그리고 ‘비천한 자’들이 몸을 던졌다. 이마와 명치가 오톨도톨한 바닥에 파이고 쓸렸다. 질질 끌리는 무릎과 두 손끝은 검게 물들었다. 빗물로 끈적해진 바닥은 장애인의 근육, 혈관, 뼈마저도 잡아당겼다. 긴다는 것은 장애인을 배제하고 나아가는 비장애인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행위다. 가장 ‘약한 몸’이 강인함을 보여주는 행위다. 잠깐이지만 장애인들은 도로를 멈춰 세웠고, 장애인을 배제하고 나아가는 세상을 멈춰 세웠다.

전장연은 오후 7시 서울시청 서편 도로에서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문화제를 열었다. 온몸을 내던진 그 바닥에서 1박2일 노숙 농성도 이어질 예정이다. 420공투단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삼각지역과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도심 곳곳에서 20~21일 이틀간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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