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전국에서 2500명 집결… 투쟁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 참석
1박 2일 투쟁 성료 후 해단식, 장애인들 “지치지 말자”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위해 삭발·단식투쟁 돌입
전국 각지에서 2500명이 참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1박 2일 투쟁이 마무리됐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2년 투쟁 중 이런 역사는 없었다. 60세가 넘어 이런 광경을 보니 가슴이 뜨겁다”고 말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폭력은 여전했다. 전동휠체어가 망가져 급히 수리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과 면담 요구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다. 장애인권리법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습시위가 아니면 열차에 탈 수 없었다. 탑승을 원천 봉쇄당했다. 행진신고한 도로에서조차 경찰방패로 진압을 당해야 했다. 현수막 한 장을 펼치려다 활동가 두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장애인은 석방을 요구하며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서 시청까지 행진했다.
이처럼 평화시위는 족족 제지당했지만 장애인은 뜨겁게 투쟁했다. 시민권 열차에 탑승해야 한다 외쳤고,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을 거부했으며, 장애인권리예산과 권리법안을 노래했다. 수많은 욕설과 혐오발언 속에서도 꿋꿋이 인간답게 살 권리, 존엄하게 살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21일 오전 8시 회현역과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오전 10시에는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서편 야외무대에서 해단식을 가졌다. 해단식에 앞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쟁취 결의대회도 함께 치러졌다. 이들은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비롯한 권리법안과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를 위해 삭발과 단식투쟁도 불사하겠다고 결의했다.
- 2년 넘게 표류 중인 장애인평생교육법… 상반기 중 삭발투쟁
장애인평생교육법은 학령기를 놓친 장애인이 성인이 돼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책무를 규정한 법이다. 2년 전인 2021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로 발의했다. 지난해 2월에는 조해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대표발의 했다. 그러나 두 발의안 모두 국회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가 장애인 교육권을 외면하는 사이,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심각한 수준을 기록했다. 2019년에 발간된 ‘장애인평생교육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0.2%에 그친다. 모집단을 전체 성인으로 넓히면 숫자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 같은 조사에서 전체 성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36.8%다. 장애인의 184배다.
지난 2월,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를 비롯한 장애계는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를 겨냥해, 국회 앞에서 긴급 농성에 돌입했다. 유금문 전장야협 사무국장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국회 공청회를 진행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이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이는 기재부와 행정안전부다. 유 사무국장에 따르면 기재부는 예산이 들어가서 반대하고, 행안부는 새로 관리해야 할 전달체계가 생기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은 “모든 법안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예산이 있어야 법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법안이 제정될 경우 예산이 들고 새로운 체계가 마련되는 건 당연한 얘기”라고 규탄했다. 결국 기재부와 행안부가 장애인 교육권을 보장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재부와 행안부가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국회 의지가 중요하다. 여야 의원이 각각 발의한 만큼,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킬 가능성도 있다. 합의를 하려면 공청회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 교장은 “다음 해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올해를 넘어가면 국회는 총선 준비한다고 장애인평생교육법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가 마지막이다. 4월 안에 공청회를 개최하고 올해 상반기 안에 반드시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장은 법안 제정을 위해 삭발투쟁을 결의했다. 질라라비야학의 이상근 학생회장과 김재민 부학생회장도 동참한다. 유 사무국장은 이들을 시작으로 상반기 중에 삭발투쟁을 전개하고, 단식투쟁도 함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연주 밀양장애인평생학교 교장도 삭발·단식투쟁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1박 2일 투쟁하며 참 속상했습니다. 정부와 경찰은 장애인을 압박하고 천대하고 바닥으로 내몰더라고요. 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교육권이라는, 아주아주 기본적인 권리일 뿐입니다. 교육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를 아무리 핍박하고 억압해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위해 저 또한 삭발이든 단식이든, 함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이 자리에서 결의하겠습니다. 왜냐하면 1박 2일간 너무 억울했거든요! 원통했거든요! 분하거든요! 열불 나거든요! 동지들도 삭발투쟁과 단식투쟁, 꼭 같이 하입시다이!” (하연주 교장)
신소희 민들레장애인야학 학생은 장애인야학에 다니며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참여, 관계형성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씨의 증언은 기존의 사회관계에서 배제돼 온 장애인에게 장애인평생교육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탈시설하고 민들레야학이란 곳을 만났습니다. 시설에선 할 수 없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 꿈이 배우였는데 야학 연극수업을 통해 배우의 꿈도 이뤘습니다. 학생회장도 해보면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배움을 나눠주는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저처럼 많은 사람이 장애인평생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투쟁하겠습니다.” (신소희 씨)
- 역대 최대 규모 420, 22년 만에 처음… “지치지 말자”
장애인평생교육법 쟁취 결의대회 후 이어진 420공투단 해단식에서는 “앞으로도 지치지 말자”는 격려가 이어졌다.
이석준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장애인권리예산을 무시하고 있다. 이 예산은 우리가 당당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내내 힘들겠지만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했다.
송가영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대표는 “우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과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는 걸 요구하는 것뿐이다. 협약과 헌법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정부는 협약과 헌법을 지키지 않는데 왜 우리에게만 불법이라고 하나. 모든 시민이 우리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함께 외치자”고 강조했다.
박경석 대표는 밝은 표정과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부는 어제(20일)를 43회 장애인의 날로 기리지만 우리는 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기념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투쟁이 22년 됐다는 건데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동지들이 참석했습니다. 2500명 좀 넘었던 것 같아요. 22년 동안 이렇게 3천 명 가까이 투쟁한 역사는 없었습니다. 이런 광경은 22년 만에 처음입니다.
가슴이 뜨겁습니다. 기재부 약속도 안 오고, 국무총리실 면담 소식도 없지만 지치지 말고 투쟁합시다. 우리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민권 열차에 탑승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평등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그날까지 투쟁합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승강장에 선다면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경석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