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시설에서 문을 닫아놓고 저를 때려서 신발을 들고 몰래 밤에 도망쳤어요. 비도 맞고 몸에 멍도 들고 한 저를 경찰서에서 봉고차에 태워 어두운 어딘가로 데려갔어요. 경찰이 데려간 곳이 희망원이었어요. (…) 운동장에 줄을 서서 약을 받아먹었어요. 낮에는 100미리 약 한 알 먹으면 정신이 없었고, 저녁에는 100미리 두 알 먹으니 아예 정신을 못차리니 화장실에 가서 변도 바닥에 누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약도 뱉어버리고 하니 약 안 먹는 정문 지키는 남자가 동마다 돌아다니면서 확인도 했습니다. 계속 계속 잠이 오고 지쳤습니다. 내가 실장이었을 때 입소자들 목욕 시키고… 그때 저도 잘못을 했습니다. 저도 때렸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맞아서 멍이 들었던 것처럼 희망원에서도 그 사람 멍이 들게 때렸습니다. 희망원에서는 서로 맞고 때렸습니다. 때렸던 사람이 생각이 나서 지금도 부끄러워요.”
- 태란향, 2025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전국대회의 발언 중
“저는 종탑에 올라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함께 올라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오늘도 내려오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 ‘위에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우리만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 먹어서 미안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동지는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들었나요? 동지는 어떤 말이 가장 필요한가요? 저는 한국천주교가 드디어 탈시설에 연대하기로 했다는 말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려갈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먼 길을 또다시 걸어갈 용기가 생길 것 같거든요.”
- 박초현, 2025년 4월 20일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김형수에게 보내는 편지 중
“우리 상훈이(가명)가 자립만 할 수 있다면 내 뭐라도 하겠어요. 내가 우리 상훈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사실 이러다가 우리 상훈이 시설에도 못 들어가고, 자립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아요. 서울 와서 휠체어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 보니까 우리 상훈이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 강정숙, 2025년 4월 15일 울산 태연재활원 상습학대사건 규탄대회 발언 중
조씨는 투쟁단과 함께 지난달 7일부터 서울시청, 정부종합청사, 국민연금공단을 돌며 40여일째 노숙농성을 진행 중이다. 엉덩이에 있는 욕창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투쟁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조씨는 10여분 동안 민 활동가에게 또렷한 눈빛과 손짓을 써가며 이렇게 답했다. “가평 꽃동네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이 아직도 생각나요. 같이 나오고 싶어요. 그리고 원하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 기사 ‘장애인도 원하는 곳에서 살자…조선동의 ‘길 위 조선독립투쟁’’ 중1)
이따금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가능한 정확히 쓰는 것은 학문의 주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의 진보가 곧장 HIV감염인의 사람다운 삶을 약속하지 않는 것처럼,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세계 각국의 기후 정의 실현을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부터 내게 학문은 믿을만한 것을 찾는 일이 되었다. 종교는 믿음을 배우는 일이지만, 학문은 연약한 피그말리온들이 모여 믿을만한 것을 따지고 분별하여 정하는 일이다.
지난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도가 아닌 믿음의 붕괴를 느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펼쳐진 빛의 광장은 헌정질서 이전에 ‘헌정적인 것’의 수호를 바랐다.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지켜낸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고, 수정하고, 다시 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믿을만한 것을 따지기 위해 우리가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절망스러운 일을 절망스럽다고 당신과 내가 똑같이 직시하고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를 믿어가기 위해 제도의 한 부분을 손보았을 따름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 권리를 발명해 왔다. ‘A가 B에게 C의 이유로 D를 요구한다’는 말이, 말이 되려면 서로 간에 얽혀 있다고 믿는 공동체가 먼저 있어야 한다. 누가(A) 무엇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지(D), 누가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지(B), 권리가 권리로 주장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C) 모두 공동체의 대화 가능성, 믿음을 창출하는 사회적 역량에 달려있다. 이 대화 속에서 믿을만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고 때로는 그 교훈을 글로 남겨 법으로 정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로 살아가기 위해 믿음의 한 부분을 의심하고, 때때로 손보았을 따름이다.
종교적 대화는 사람을 믿음의 ‘종’으로 만들지만, 성찰적 대화는 사람을 믿음의 ‘볼모’로 만든다. 종교적 대화는 명료하고 안정적인 진리 앞에 스스로를 맡기게끔 해방하지만, 성찰적 대화는 끝없이 불명확하고 불편한 충돌 속에 스스로를 묶어둔다. 서로의 볼모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믿을만한 것은 사라지고 사회는 ‘불신지옥’이 된다. 민주주의가 제도가 아닌 어떤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믿음의 가장자리 즉, 대화가 불필요해진 곳, 그래서 가장 절망적이어진 곳에서부터 물꼬가 트여야 한다.
시설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가해자였음을 인정한 태란향, 부활절을 앞두고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라 기도를 시작한 박초현, 꽃동네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자 장애인서비스종합조사의 거점인 국민연금공단에 드러누운 조선동. 이들의 부끄럽고, 두렵고, 조용한 말 걸기에 ‘태연재활원’을 믿음이라 여겨온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할 때다. 절망스러운 일을 두고 같이 절망하는, 믿을만한 것을 찾으며 같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무언가를 같이 바라고 다시 정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탄핵 이후 사회를 회복하는 일은 여기부터다.
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3312.html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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