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고수하던 중생보위, 회의 공개여부 검토
매년 오류 반복되는 기준중위소득
2~3주면 똑 떨어지는 수급비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수급신청도 포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 회의가 올해도 비공개로 열렸다. 중생보위는 23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76회 회의를 열고 기준중위소득과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전반을 논의했다.
더팩트 23일 보도에 따르면 중생보위는 이번 회의에서 회의 내용 공개 여부를 검토할 거라고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주요 발언 내용을 상세히 정리해 누리집 등에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다만 위원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기초생활 수급자, 쪽방촌 주민 등 가난한 사람들은 중생보위 회의 30분 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준중위소득 현실화 △부양의무자기준 즉각 폐지 △의료급여 개악안 철회 등을 요구했다.
- 매년 오류 반복되는 기준중위소득
중생보위 회의 비공개는 가난한 사람들이 수년간 지속해서 규탄해 온 일이다. 중생보위 위원은 총 16명인데, 모두 정부 측 인사와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가난한 사람의 자리는 없다. 당사자를 배제한 “밀실회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생보위는 70여 개 사회보장제도의 선정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한다. 기준중위소득은 한국 사람 전체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일컫는 말이다. 이 숫자를 기준으로 생계급여, 아이돌봄서비스, 청년월세지원 등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복지제도의 신청자격이 결정된다.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만 우선 월 소득이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여야 한다. 올해의 경우 1인가구 기준중위소득은 239만 2,013원으로 결정됐다. 월 소득은 이 숫자의 32%인 76만 5,444원 이하여야 생계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한 달 생계급여는 소득수준에 따라 저마다 다르지만 1인가구는 최대 76만 5,444원까지 받을 수 있다.
밀실에서 결정된 기준중위소득엔 매년 오류가 있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아래 기초법) 6조의 2에 따르면 기준중위소득은 “통계청이 공표하는 통계자료의 가구 경상소득 중간값에 최근 가구소득 평균 증가율” 등을 반영해 산정한다. 어려운 말이지만 핵심은 “통계청 공표” 자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계청 공표자료와 중생보위가 결정한 기준중위소득 간의 격차가 매우 크다. 같은 정부 자료인데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2018년 기준중위소득은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 중윗값보다 20만 6천 원이 적었다. 이 격차는 점점 커졌다. 지난해 격차는 53만 8천 원이나 됐다.
이 때문에 통계청 공표자료상에선 빈곤층이지만 중생보위가 정한 기준에서는 빈곤층이 아닌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기초법 공동행동)에 따르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비수급 빈곤층은 무려 80만 명으로 추정된다.
중생보위 회의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건 이처럼 80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복지제도에서 탈락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가 회의록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회의 결과를 몇 줄로 요약해 놓은 수준의 자료만 보내왔다.
김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원들이 어떻게 논의했는지, 어떤 의견을 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러면 어떻게 시민이 정부 결정을 신뢰할 수 있나?”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공개를 제안했다. 국무회의 같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도 공개를 논의하는 마당에 복지기준을 결정하는 중생보위는 왜 밀실에 숨어있나?”라고 규탄했다.
- 고기·생선·과일은 남의 일… 가난한 사람들의 호소
기준중위소득뿐만 아니라 부양의무자기준도 중생보위 손에 맡겨져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생계급여에선 완화됐고 의료급여에선 폐지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의 사례가 공개됐다.
올해 90세인 동자동 쪽방주민 김은숙(가명) 씨는 현재 기초연금과 주거급여를 합쳐 월 50만 원 정도만 가지고 생활한다. 생계급여 신청을 세 번 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다.
김 씨는 부양의무자인 자녀들과 관계가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자녀들은 ‘우리 어머니가 그럴(가난할) 리 없다’ 며 금융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주민센터 담당자는 김 씨의 건강보험이 큰아들 직장보험에 포함된 걸 보고 ‘관계 단절로 볼 수 없다’며 생계급여 신청을 받지 않았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부양의무자기준은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며 가난한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몬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전가한다. 한국 복지정책의 큰 걸림돌”이라고 비판했다.
수급 당사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박용수 씨는 “수급비 받고 2~3주가 지나면 다 떨어져서 쓸 돈이 없다. 또한 지금 사는 곳의 관리비는 12만 원인데, 관리비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산 지 벌써 8년이 됐다. 시장에 가서 몇 가지만 사도 몇만 원은 그냥 사라진다. 900ml 우유 한 통에 3천 원이 넘어가고 과일 한 팩에 1만 원이니 사 먹을 엄두가 안 난다”고 호소했다.
기초법공동행동이 올해 발표한 ‘2025년 가계부 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 20가구 중 두 달 동안 육류를 한 번도 사지 않은 가구가 8가구, 생선 등 수산물을 한 번도 사지 않은 가구는 10가구, 과일을 한 번도 사지 않은 가구는 5가구로 나타났다. 1인가구의 하루 평균 식비는 1만 836원에 불과했다.
기초법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올해 1분기 소득하위 10% 가구의 적자 규모가 124.3%로 증가했다. 부양의무자기준과 낮은 기준중위소득은 빈곤층이 적시에 필요한 복지제도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며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해 왔다”며 “이재명 정부는 ‘빈곤층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번 중생보위 결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중생보위는 다음 주 중에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할 거라고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