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지원 도입 당시에도 등장했던 ‘자기결정권’ 논쟁
시설에서의 삶, 자기결정권 가장 크게 침해하는 형태

[편집자 주] 지난 1일 조선닷컴에 탈시설장애인의 죽음과 관련된 가짜뉴스([단독] 넉달만에 욕창으로...脫시설 사업으로 ‘독립’한 장애인의 쓸쓸한 죽음)가 보도됐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지난 12일 JTBC 썰전라이브에서 탈시설을 왜곡했습니다. 비마이너는 세 번에 걸쳐 조선닷컴 기사를 팩트체크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총 4회, 6편의 기사를 통해 탈시설을 둘러싼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① 탈시설 가짜뉴스 조선닷컴 팩트체크  
- 탈시설장애인이 빌라에 홀로 방치되다 사망했다?
- 민주당·전장연이 장애인을 시설에서 내쫓았다?
- 탈시설운동가를 탈시설피해자로 둔갑, 유족 “왜곡 말라”
② 탈시설 예산이 전장연 수익사업?
③ 중증발달장애인은 자기결정권 없으니 탈시설 안 된다?   
④ 거주시설에 사는 것도 ‘선택’이다?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감옥같은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참여와 통합,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감옥같은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참여와 통합,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2020년 12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고 2021년 8월 매우 한계적이나마 정부 차원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 발표됐다. 그 후,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로 대표되는 시설 권력과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라는 일부 장애인 부모 등이 탈시설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여기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출신 이종성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면서 탈시설 논쟁이 심화되고 있다. 탈시설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제시하는 논거들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좀 이상한 것이 있다.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중증의 발달장애인은 탈시설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탈시설의 전제로 삼는다.

이런 주장을 접하면서 나는 뭔가 기시감을 느꼈고,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6년 벌어졌던 활동지원서비스 대상 논쟁이 떠올랐다. 주지하다시피 2006년은 한강대교 오체투지 투쟁으로 상징되는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해였고,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밀려 그해 하반기 서비스 제공 계획안을 내놓게 된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최초 계획안에는 서비스 제공 대상에서 발달장애인과 미성년자가 제외되어 있었다. 그 주요 이유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기에 적합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도 자기결정권의 행사 여부가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의 전제로 등장했고, 이에 대해 일부 자립생활운동 진영까지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첨예한 논쟁이 이어졌다. 이 글의 제목은 당시 논쟁에 참여하면서 한 인터넷 언론에 기고했던 글의 제목을 조금 보완해 다시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1)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식의 주장이 나오는 데에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통념적인, 그러나 매우 심각한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우선 자기결정권은 생존권[생활권](right to life)과 마찬가지로 헌법적 기본권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의 인격권(人格權)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이 전제하는 자기운명결정권에 근거한다. 많은 이들이 발달장애인은 자기결정능력이 낮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이 부재하다고 얘기하는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생존능력[생활력]이 낮은 사람은 생존권이 부재한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만 삶을 마감해주셔야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정부나 사회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요컨대 능력과 권리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권리는 능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될 때만 권리일 수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능력 있는 사람만 누리는 걸 권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해당 권리와 관련된 능력이 부족할 경우, 그로 인해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시스템이 구축되고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도 마찬가지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 상황에 대한 한국의 1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후 2014년 10월 제시한 최종 견해에서, 현재의 성년후견제와 같은 “‘의사결정 대리’(substituted decision-making)에서 당사자의 자율성과 의지, 그리고 선호를 존중하는 ‘의사결정 조력’(supported decision-making)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와 맥락에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거나 제한당하는 상황과 조건은 현실적으로 곳곳에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던 자기결정권의 대법원 판례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것인데, 모든 여성은 당연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성폭력의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불평등한 젠더 관계 속에서이다. 즉, 차별적이고 억압적이며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그녀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무력화’된다.

집회 참가자가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지 말아라!'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집회 참가자가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지 말아라!'라고 쓰여 있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그렇다면 (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무력화되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바로 ‘시설에서의 삶’이라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실시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자발적 의사로 입소한 비율은 14.3%에 불과했다. 스스로 입소를 결정했다고 응답한 이들 역시 지역사회에서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없어 떠밀려온 이들이다. 이런 사태를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가 바로 ‘강제된 동의’(forced consent)다. 그리고 시설에서의 일상은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자기결정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삶이었다. 기상·취침 시간과 식사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각각 55%와 75.4%였고, 현대 사회의 필수품이 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생활인이 71%였으며, 자신의 통장조차 타인에 의해 관리되는 이들이 61.7%였다.3) 

자립생활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자립생활’이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단순히 ‘가족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장벽들을 제거하고, 주거·소득·사회서비스 등 다양한 사회적 지원을 권리로 획득하여,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삶을 향유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확인했듯 자기결정권은 모든 국민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헌법적 기본권이다. 따라서 자기결정권이 존재하는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이 있을 수 없으며, 자기결정권이 더 잘 보장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장애인과 더 많이 제약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이 있을 뿐이다. 즉 자기결정권은 시설 밖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한 ‘전제’가 아니라, 탈시설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다. 전제와 목표를 혼동하지 말자. 그래서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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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도현, 「자기결정권은 전제가 아니라 목표다: 활동보조인서비스(PAS)의 대상과 자립생활(운동)의 주체 논쟁에 부쳐①」, 〈에이블뉴스〉, 2006. 7. 26.
2) 하금철, 「[전문]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유엔의 최종 견해」, 〈비마이너〉, 2014. 10. 8. 
3) 조한진 외,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17, ⅵ~ⅷ쪽.

필자 소개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비마이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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