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협약, 시설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 유지해선 안 돼
정부가 시설이냐 지역사회냐 선택할 권한 없어

[편집자 주] 지난 1일 조선닷컴에 탈시설장애인의 죽음과 관련된 가짜뉴스([단독] 넉달만에 욕창으로...脫시설 사업으로 ‘독립’한 장애인의 쓸쓸한 죽음)가 보도됐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지난 12일 JTBC 썰전라이브에서 탈시설을 왜곡했습니다. 비마이너는 세 번에 걸쳐 조선닷컴 기사를 팩트체크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총 4회, 6편의 기사를 통해 탈시설을 둘러싼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① 탈시설 가짜뉴스 조선닷컴 팩트체크  
- 탈시설장애인이 빌라에 홀로 방치되다 사망했다?
- 민주당·전장연이 장애인을 시설에서 내쫓았다?
- 탈시설운동가를 탈시설피해자로 둔갑, 유족 “왜곡 말라”
② 탈시설 예산이 전장연 수익사업?
③ 중증발달장애인은 자기결정권 없으니 탈시설 안 된다?   
④ 거주시설에 사는 것도 ‘선택’이다?

12월 10일 세계 인권의날,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68명이 공동으로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장애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지역사회에서 나(도), 함께 산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12월 10일 세계 인권의날,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68명이 공동으로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장애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지역사회에서 나(도), 함께 산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우리 사회가 이토록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을 최고의 원칙으로 존중한 적이 있던가. 장애인은 학교를 선택할 수 없었고,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고, 이동수단을 선택할 수도 없는 존재 아니었던가. 그런데 유독 ‘시설에서 거주할 선택’에 있어서 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지난 5월 1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 보장 촉구 시위를 둘러싸고,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2차 토론이 JTBC ‘썰전라이브’에서 진행되었다. 이 대표도 이날 탈시설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들며 아래와 같이 ‘선택의 존중'을 피력했다.

- 박경석: 이게(탈시설) 전장연 하나의 단체의 주장이다, 단체 간에 이견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탈시설의 문제는 전장연이 독자적으로 고안해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 따라서 제시되고 있는 기준입니다. 이거는 아시죠?
- 이준석: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강요를 하라고 했습니까?
- 박경석: 그렇죠. 선택하는 거죠.
- 이준석: 그런데 왜 강요를 합니까?

정치인이 모든 사안에 속속들이 밝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토론 담판’에 임한다면 적정 수준의 학습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대표에게 이를 기대해서는 안 됐던 것일까. 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는 책 빨리 읽는다’고도 말했던데, 그 속도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한 번만 읽어봤다면, 토론회 자리에서 위와 같은 말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시설 거주’는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다 

탈시설에 반대하는 이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가장 기본 원칙은 ‘선택’이기 때문에, 시설에 살겠다는 장애인의 선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이 대표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 테다. 그러나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말하는 ‘선택’은 ‘시설을 선택할 자유’가 아니라,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선택지 보장’에 대한 당사국의 의무를 의미한다.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협약 19조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자립생활과 지역사회의 참여)

“이 협약의 당사국은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인정하며,(States Parties to the present Convention recognize the equal right of all persons with disabilities to live in the community, with choices equal to others,)”

협약은 명확하게, 당사자의 선택은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때(live in the community) 보장되어야 하는 것(with choices equal to others)으로 규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협약 조항 이행에 대한 지침과 유권해석을 담고 있는 일반논평을 통해서도 ‘모든 종류의 시설 바깥의 삶’이 19조가 말하는 자립생활임을 강조하며, ‘시설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논란을 잠식시키고자 하였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5(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참여)

“협약 제19조는 협약에서 가장 폭넓고 가장 교차적인 조항이며, 협약의 완전한 이행에 필수적인 항목

“자립적 주거 형태: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내 포용은 둘 모두 모든 유형의 거주시설의 외부 생활환경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특정 건물이나 환경에서의 거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특정 생활 형태와 주거 형태로 인하여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백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규모 시설도, 5~8명이 사는 작은 그룹홈도, 심지어는 혼자 사는 집도 시설 또는 시설화의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면 자립적 주거 형태로 볼 수 없다.

즉, 19조 이행은 ‘좋은 시설 만들기’나 ‘장애인만을 위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바로 지금 이 도시, 이 공동체에서 모든 유형/정도의 장애인이 선택과 자율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협약 이행의 정수라고, 위원회는 선언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통해서도 ‘선택’ 개념이 기만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2021년 한 해 동안 대륙별 지역 순회 간담회를 통해 전 세계 장애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및 사무국,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된 것으로, 아직 초안 상태이긴 하지만 이미 상당한 국제적 합의를 보여주는 문서라고 볼 수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말하는 장애인의 ‘선택’은 아래와 같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탈시설 가이드라인(초안) 

섹션 B 탈시설 과정
13. 장애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고 그들의 의지와 선호를 존중한다.
(중략)
13.2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시설에서 살기로 한 선택까지 확대 해석되지 않는다;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협약, 일반논평, 가이드라인에 이르기까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메커니즘은 지속적이고 명료하게 탈시설의 기준과 목표를 밝히고 있다. 시설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며, 그 유지는 어떤 형태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지일 수 없다.

활동가들이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은 없다. 모든 장애인수용시설을 폐쇄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활동가들이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은 없다. 모든 장애인수용시설을 폐쇄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국내법과 같은 효력 갖는 유엔협약, 한국 정부의 의무는? 

헌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즉,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사는 바로 지금 이 지역사회 내에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장애인의 권리를 명시한 국제협약은 이미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의무는 무엇일까. 이 역시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4조 일반의무

1. 당사국은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하기 위한 의무를 부담한다. 이를 위하여 당사국은 다음의 사항을 약속한다.
(가) 이 협약에서 인정된 권리의 이행을 위하여 모든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를 채택할 것
(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구성하는 기존의 법률, 규칙, 관습 및 관행을 개정 또는 폐지하기 위하여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5(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참여)

“당사국은 모든 시설 환경을 자립적 생활 지원서비스로 대체하기 위하여 장애인 대표 단체와의 정중하고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적절한 일정과 자원을 갖춘 전략적 계획에 돌입해야 한다는 즉각적 의무를 가진다. 당사국이 가지는 재량의 영역은 이행 계획에 관한 것이지, (시설 환경을 자립생활 서비스로) 대체할 것인지 여부에 관련한 것이 아니다

“보호의 의무에 따라 당사국은 가족 구성원과 제3자가 지역사회 내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권리의 향유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 요구된다. (...)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포용될 권리를 완전하게 향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과 정책을 도입/이행해야 한다.”

“당사국은 민간 시설이 ‘지역사회 삶’을 가장하여 설립되는 일도 없도록 해야 한다.”

즉, 정부는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호하고, 이 권리 실현을 방해하는 이들의 개입이나 관행, 법률, 제도를 없앨 의무가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시설 폐쇄가 선결되며, ‘시설이냐, 지역사회냐’를 선택할 권한은 애초에 정부에 부여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은 시설 유지의 변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 오직 이것뿐이다. 

또한, 일부 탈시설 반대론자들이 말하듯 ‘중증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집단적 거주형태가 더욱 안전하고 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는 ‘모든 인간은 평등한 권리의 담지자’라는 인권의 대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출발점인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명제를 ‘그러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장애인 내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모순적 주장으로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에 따라 시설에서 살겠다는 장애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완전히 포용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여당 대표로서는 더더욱 해선 안 될 말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빠르게 과오를 바로잡으면 된다. 앞으로 5년간, 장애인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이 대표가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헌법 정신 수호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필자 소개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국내외 장애계를 연결하는 단단한 다리가 되고 싶어 한국장애포럼(Korean Disability Forum, KD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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