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확인된 장애인 폭행 890건
피해자 29명, 일부는 아직도 태연재활원 거주
피해자 어머니 “따귀 양쪽 왕복으로 맞았다”
정부·지자체, 아무도 해결 않는 인권참사
장애인들, 공대위 구성… 2시간 포체투지
폭력 진압 경찰 뚫고 농성 7일 차
울산시 북구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 ‘태연재활원(사회복지법인 태연학원)’ 학대 사태가 언론에 보도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아직도 태연재활원에 거주 중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해결은커녕 사태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중이다. 울산시는 ‘북구 책임이다’, 북구는 ‘울산시 책임이다’ 하는 사이에 피해자들은 방치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장애인의 자립 지원 필요성이 높아지는 울산 등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확대하겠다” 정도의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장애계는 지난 6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만나 태연재활원 사태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라고 요구했다. 조 장관은 ‘국정조사는 국회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짧게 답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탈시설장애인과 태연재활원 사태 피해자의 가족 등은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참사 고발 및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를 결성했다. 공대위는 지난 8일, 결성을 선포한 직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 피해자 어머니 “따귀를 사정없이 왕복으로… 지역사회 24시간 케어 요구할 것”
지난달, 언론을 통해 태연재활원(현원 185명, 직원 83명) 생활지도원이 장애인을 상습 폭행한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이 확인한 가해자만 20여 명, 피해자는 29명이다.
경찰이 한 달간 CCTV(폐쇄회로텔레비전)를 통해 파악한 폭행은 무려 890건이다. 거실에만 CCTV가 설치됐고 CCTV 저장 기간이 한 달인 걸 고려하면 가해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1988년에 개원한 태연재활원은 40년 가까이 수십억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지자체의 지도·점검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학대 사실이 적발된 적 없었다. 지난해 10월, 골절 진료를 받은 거주장애인의 가족이 항의하면서 참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피해자 ㄱ 씨의 어머니 ㄴ 씨는 8일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공대위 출범대회에서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고 성토했다.
“우리 아들(ㄱ 씨)은 19살에 태연재활원에 들어갔어요. 한 8년 정도 거주를 하고 있었죠. 어느 날 애를 (자동차 안) 제 옆(자리)에 태웠어요. 애가 자꾸 창 쪽으로 넘어지는 거예요. 차 안에서 (태연재활원) 선생한테 전화를 했어요.
‘선생님, 우리 ㄱ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 ㄱ이가 이상하게 웃음도 없어지고 밥도 잘 먹지 않고 자지도 않아요’ 그랬더니 담당 선생이 ‘아니에요. 여기(태연재활원)서는 (ㄱ이가) 잘 자고, 잘 놀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태연재활원 거주(장애)인 한 분이 갈비뼈 두 개가 골절이 됐다는 거예요. 그걸로 인해서 CCTV 확인을 하게 됐는데, 경찰이 저보고 하는 소리가 ‘ㄱ이 어머니, ㄱ이는 폭행을 너무 심하게 당했습니다. 어머니는 CCTV를 안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래요.
그래서 제가 ‘아니요. 저는 봐야 됩니다. 확인을 해야 그 다음에 대책이 이어질 것 아닙니까?’ 했어요. CCTV를 보는데 아(ㄱ 씨)가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생활지도원이) 아 따귀를 사정없이 왕복으로 막 내려치는 거예요.
그거 보고 눈 안 디비질(뒤집어질)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따귀 때리는 그 인간 손모가지를 딱 뿌라가지고(부러뜨려서), 정말 개를 줘도 개는 그 손모가지가 드럽다고(더럽다고) 먹지 않을 거예요. 그게 사람입니까?
장애인이라고 맞고 살아라는(살라는) 법도 없습니다. 저는 정말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 애들 거기서 죽어가도 모릅니다.”
ㄴ 씨는 이제 ㄱ 씨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우리 ㄱ이가 이 지역사회에서 24시간 케어(지원)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저는 요청합니다. 저는 어머님 톡(태연재활원 거주장애인 부모 온라인 대화방)에도 그랬습니다. 우리 애들 자립해서 24시간 케어받아야 한다, 이 기회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얘기했거든요.
대한민국 시민 한 사람으로서 정말 내 자신이 부끄러워요. 대통령도 내가 뽑았는 것이고, 시장도 내가 뽑았는 것인데. 국민을 위해서 일하라고 뽑았는데 왜 이 사태는 아무도 찾아도 안 본단 말입니까?
내 정성이 얼마나 돼서 하늘에 다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연대사람들(공대위)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이번 사건 안 터졌으면 우리 ㄱ이는 (태연재활원에서) 죽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열심히 따라서 하겠습니다.”
- 3만 명 시민 사이에서 2시간 기어간 장애인들
오후 4시경, 출범대회를 끝낸 장애인들은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본 무대까지 포체투지를 진행했다. 장애인 10여 명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태연재활원 사태 국정조사하라”고 외치며 300미터가량을 기었다.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는 주최 측 추산 약 3만 명의 인파가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운집해 있었다. 장애인들은 질서정연하게 운집한 시민 한가운데에서 온몸으로 기었다. 간간이 “누구야?”, “전장연이래, 전장연.”, “왜 저래?”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오후 5시경,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장애인들은 “정청래 의원님! 태연재활원 사태 국정조사 해주십시오! 의원님!”이라 외쳤다.
정 의원에게서 반응이 없자 한 활동가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들고 정 의원 앞으로 갔다. 그는 정 의원을 바라보며 마이크에 대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정 의원의 지지자로 보이는 시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중에…”라고 말했다.
그제야 정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애인들과 대화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국정조사 진행하면 정부서울청사 앞 농성을 그만두겠다 했더니 의원님이 알겠다 하셨다”고 말했다.
포체투지는 오후 6시경까지 계속됐다. 비장애인은 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장애인들은 2시간 동안 기었다. 범국민대회 관계자가 “언제까지 하실 거냐. 집회를 왜 망치느냐”며 따져 묻고 시민 사이에서도 “왜 여기서 이러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장애인이 내려온 휠체어 한 대는 물을 실어 나르는 ‘물차’가 됐다. 체력이 떨어진 장애인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온몸을 늘어뜨려서 쉬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힘을 내서 기어가기를 반복했다. 상의 가슴께가 바닥 먼지로 범벅이 되다가 나중엔 구멍이 나기도 했다.
포체투지를 마친 이들은 다시 휠체어에 탔다. 본 무대 앞으로 이동해 태연재활원 참사 피켓을 높이 들고 시민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 경찰, 스크럼 짜며 농성 시도 폭력 진압… 공대위, 1만 명 서명 운동 진행
본 무대에서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돌아온 후에는 마무리 집회를 열며 농성장을 설치하려 했다. 경찰은 농성장 텐트가 보이자마자 바로 수십 명을 동원해 농성을 저지했다. 스크럼을 짠 경찰은 활동가들을 한 명씩 뜯어냈다.
대치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 활동가들은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경찰과 정부를 규탄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곧이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침해 감시 변호사를 포함해 시민 수십 명이 달려와 경찰을 규탄했다.
오후 7시 20분경, 경찰이 해산하면서 농성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농성은 14일 기준 7일째다.
공대위는 농성장에서 숙식하며 1만 시민의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박주석 전장연 정책국장은 13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1천 명이 넘는 시민이 서명에 동참해 주셨다. 농성은 태연재활원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대위는 태연재활원을 포함해 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참사’ 해결에 동참할 개인·단체를 모집하고 있다.

